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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울 Oct 15. 2023

하느님의 엄마를 찾아서

 하느님은 늘 내 주변에서 얼쩡거렸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보시기에  하느님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나 하는 부랑자였다. 얼마나 싫었으면 '하 씨' 성을 가진 사람까지도 싫어했을까. 아스라한 기억 속에 고함소리가 들린다. 예수쟁이가 되면 그날로 집안은 거들 나는 것이야.

 엄마는 교회의 종소리만 들으면 한없이 맘이 편해진다고 했다. 그야말로 무엇에 홀린 듯 끌려갔다. 나는 빵과 우유를 얻어먹으려고 엄마의 치맛자락에 숨어서  따라다녔다. 하느님을 만나러 가려는 엄마와 막으려는 아버지의 신경전은 창과 방패의 싸움이었다. 그렇지만 양은 냄비처럼 끓어오르던 엄마의 마음은 한 해를 채 넘기지 못했다.

 나는 천주교 재단이 세운 학교에 배정되었다. 중학교와고등학교까지 내리 육 년을 복음에 젖어 있었다. 그렇지만 사육신의 자손답게 절개를 지켰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살짝 흔들린 적도 있었다. 레이스가 달린 미사포를 쓴 친구의 모습이 예뻐서 세례를 받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체를 모시는 시간이 되면, 뒷줄에서 비아냥거리는 거로 나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하느님은 참 이기적이야. 저 봐라, 떡 조각도 자기들끼리만 먹잖아."

 그렇게 시시덕거리며 나는 하느님 뭉개기에 앞장섰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던가. 삼십 년 동안, 하느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밀려왔다 쓸려가기를 반복하더니 급기야 나에게 항복을 받아냈다. 세례명 요안나. 그렇다고 내가 온전히 하느님만 믿는 건 아니다. 수시로 부처님에게도 가서 엎드린다. 속된 말로 양다리를 걸치고 여기저기 넙죽넙죽 고개 숙인다.

 사십 년. 모교를 다시 방문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여고 동창생을 만나면 추억담을 나누긴 해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한 공간이었다. 진저리 치도록 아픈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요, 애달프도록 가보고 싶은 추억이 담긴 곳도 아니었다. 가도 그만 안 가보아도 그만. 이게 더 문제였다. 무덤덤함은 사람을 무심하게 만드나 보다.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었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등굣길 선생님의 호통 소리에 내달렸던 언덕길도 수련이 요염하게 목 내밀던 연못도 보이지 않았다. 갈팡질팡 허둥대는 나를 놀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자기 모교도 못 찾냐, 학교에 제대로 다닌 거 맞아? 흘겨보는 나에게 그는 한 마디 더 보탰다.

 "껌 씹고 다닌 언니였던 게 분명해."

  그 바람에 그는 매를 한 대 벌었다. 졸지에 나는 길 잃은 여행객이 되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어르신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하느님은 껌 씹는 언니를 더 좋아하시지."

  연못은 동상이 서 있는 저 자리가 되었고 성모상은 그대로 있다고 말해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 시절, 나는 성모상 앞에서 얼마나 애타게 매달렸던가. 기도의 내용은 비굴했다. 대학에 합격만 시켜주면 하느님이 원하는 대로 무조건 다 하겠습니다.

 학력고사를 백일 앞둔  날이었다. 신자였던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우리 성모 당에 기도하러 가자. 기적의 동굴이래."

 '기적'이라는 말에 꽂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거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학교 담장 너머에 있다는 말에 당장 가자고 했다. 예수님의 엄마가 동굴의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함부로 나대다가는 천벌을 받을 것만 같았다. 친구의 행동을 곁눈질하며 성호를 그었다. 무릎도 꿇었다.

 사십 년 뒤, 나는 다시 무릎을 꿇었다. 때마침 미사 시간이었고 성체를 모시고 있었다. 동굴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프랑스 루드르 지방 동굴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성모 당이다. 평범하고 얕은 동굴인 마사비엘의 동굴은  성녀 '베르나데트' 덕분에 유명해졌다. 그녀가 동정녀 마리아의 발현을 목격한 이후 매년 육백만 명 이상이 찾아오는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동굴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던 친구가 떠올랐다.

 '베르나데트'는 소박하고 신앙심이 깊은 소녀로, 한 푼 없는 방앗간 집 딸이었다.  고작 열네 살이었을 때 마리아는 지역 방언을 사용하여 베르나데트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에게 바닥에 구멍을 파라고 명했다. 그 말에 따르자 소녀는 샘이 솟아나는 것을 발견했으며, 마리아는 그 샘에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교회 당국은 그녀를 면밀히 심문했으나 그녀의 주장에서 흠을 찾을 수 없었다. 이 명백한 기적이 소문을 타자 순례자와 환자들이 고통을 치유하려는 희망에 이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베르나데트'는 수녀원에 은거하여 서른다섯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쳤다.

 1864년, '베르나데트'가 보았던 모습을 기초해서 만들어진 마리아상이  동굴에 세워졌다. 성모 당은 마사비엘 동굴을 그대로 본떠 만든 지 백여 년을 훌쩍 넘겼다. 그때 마리아가 성녀 '베르나데트'에게 내린 명은 이러했다. 사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곳에 예배당을 세우라 말하라. 이리로 행렬이 향하도록 하여라. 나도 무릎을 꿇고 성모를 올려다보았다. 성모 당 동굴의 마리아가 나에게 명령을 내린다면 어떤 내용일까. 가만히 두 손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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