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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아 PORA Apr 20. 2022

남국의 아홉 번째 밤 08

어머니 말은 연신 더운 숨을 내쉬었다. 

잉태했던 망아지가 세상으로 나왔지만 고통은 계속되고 있었다. 

배가 부른 채였다. 

어머니 말은 알고 있었다. 

300번이 넘는 해와 달이 뜨고 지는 동안 자신의 몸 안에는 여러 개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어머니 말은 마지막 순간에 이런 모습을 떠올렸다. 

살과 가죽 밑으로 셀 수 없이 많은 핏줄이 뻗어 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자신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급류를 이루며 빠른 속도로 흘러 탯줄을 지나 

작디작은 두 심장에 도달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막 태어난 망아지 앞에는 또 다른 막 태어난 망아지가 있었다. 

뜨거운 아지랑이에 흔들리는 서로의 모습이 눈동자에 비쳤다. 

두 망아지는 어머니 말도 아버지 말도 알지 못하고 거의 태어나자마자 각각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큰 저택으로 옮겨진 망아지는 많은 사람들의 세심한 손길을 받으며 자랐다.

회색빛이 돌던 몸은 어느새 새하얗게 변했는데 오로지 이마에만 검은 달의 문양이 덩그러니 떠 있었다. 

모두가 그를 검은 달이라고 불렀다. 

검은 달은 언제나 천천히 그리고 아름답게 걸었다. 

큰 들판 위의 오두막으로 옮겨진 또 다른 망아지는 어느 목수와 함께 단 둘이 지내기 시작했다. 

회색빛이 돌던 몸은 어느새 검은 빛을 냈는데 오로지 이마에만 하얀 별의 무늬가 떠올라 있었다. 

목수는 그를 하얀 별이라고 불렀다. 

하얀 별은 언제나 빠르게 그리고 아름답게 뛰었다. 

도시의 삶은 검은 달을 점점 지치게 했다. 

모두가 검은 달을 우러러 보았지만 검은 달은 자신이 검은 달인 것이 싫었다. 

다른 이들이 바라는 검은 달로 사는 것은 끝도 없는 공허 속을 사는 것 같았다. 

하얀 별은 지루한 시골 생활이 싫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 넓은 들판을 할 일 없이 걸어 다닐 때면 이 세상에 오직 자신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멀리까지 뛰어 보아도 외로움이라는 거대한 공간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 날은 막 비가 그치고 다시 더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젖었던 사막은 뜨거운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너울거리는 아지랑이를 피워내고 있었다. 

사막의 서쪽 끝에 있는 검은 달과 사막의 동쪽 끝에 있는 하얀 별은 아주 우연히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사막의 아지랑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기억의 경계 저 멀리에 보이는 모습을 떠올렸다. 한 번 소환된 기억은 사라질 줄 몰랐다.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서로의 모습이 눈동자에 각인되어 있었음을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었다. 

멀리 보이는 사막은 항상 아름다웠다.

하지만 사막 속으로 들어가 그의 일부가 되자 사막은 험하고 이상하고 두려운 것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너무 넓었다. 서로를 만나지 못했던 그 시간의 크기같이 넓었다.  

마른 목초들과 기괴하게 생긴 돌들을 지나 도마뱀과 여우를 만나고 모래 바람 속에 갇히기도 했다. 

검은 달은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며 걸었다.

하얀 별은 낮에 뜬 하얀 달을 보며 걸었다.

이미 해와 달이 몇 번 뜨고 졌는지 셀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 희미하게 파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막의 끝, 남쪽 바다가 보였다.  

검은 달과 하얀 별은 그렇게 만났다. 

- 검은 달. 

- 하얀 별.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만나 함께 하기로 약속했던 것처럼 나란히 뛰기 시작했다. 

같은 심장을 나누어 가진 것처럼 아주 똑같은 심장박동이 검은 달과 하얀 별 모두의 몸 가득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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