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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아 PORA Apr 20. 2022

남국의 아홉 번째 밤 09, 마지막 밤

그리고 이윽고 더운 나라에는 비가 내렸다. 

태양의 열기가 세상의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이 계속 되었던 것처럼 

비는 마치 영원히 모든 것을 물 속에 잠 재울 듯이 계속될 것 같았다. 

더운 나라는 이제 더운 나라가 아니었다. 

모든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숨죽여 

비가 내리고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비는 어느새 고난이 되었다. 

매는 희미하게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를 쪼며 앉아있었다. 

비에 대한 생각은 이미 잊혀진지 오래였다. 

오로지 매는 허기와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이미 죽은 지도 모르지. 나는 굶어서 죽은 새, 나는 굶어서 죽은 새…

- 잠깐 비 좀 피하다 가겠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눈 앞에는 토끼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색이 바랜듯한 희끄무리한 털들이 토끼가 살아온 긴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 영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군? 

- 당신도 마찬가지야. 

- 아니야, 아주 달라. 나의 경우는 말이지, 아주 자연스러운 거야. 그런데 자네는… 

   글쎄, 좋지 않아. 무언가를… 잃어버렸나? 아니, 뭐든지 장담하지 말기로 하지. 아직은 아니야. 

-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어. 그저 난 죽어가고 있을 뿐이지 . 

- 참고로 말해두지. 난 무지 질겨! 난 맛탱이가 간 노인네 토끼일 뿐이네. 뭐 그냥 그렇다는 거야. 

   꼭 잊지 말길 바라네. 

토끼 노인은 크게 몸을 부르르 떨면서 사방에 물기를 튕겨 버렸다. 

수십 개의 물방울들이 매의 날개에 와 닿았다. 

토끼노인은 힐끗 매의 눈치를 보았다. 

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사실 매는 몸에 튄 몇 개의 물방울이 꽤나 상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나는 이제 슬슬 나가보려고 하는데, 자네는? 

- 무슨 말이지? 

- 나랑 같이 나가지 않겠나? 

매는 예의 표정 없는 얼굴로 토끼노인과 세차게 비가 내리는 바위틈 밖의 풍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 비가 오지 않으면 무지개도 없다네. 

토끼 노인은 마치 즐거운 일이라도 만난 마냥 깡총거리며 동굴 밖으로 나섰다. 

매는 축 늘어져 있던 날개를 슬며시 올려 보았다. 

아직 토끼노인이 물방울을 튕겼던 때의 느낌이 남아 있었다. 

매는 마지막 힘을 다해 가까스로 양쪽의 날개를 들어 올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 서두르게나, 무지개가 저기 뜨고 있다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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