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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KCHIC Nov 23. 2017

01

<카페에서>

2014, IKOVOX, Itaewon, Seoul


아이스 플랫화이트와 아인슈페너를 시켰다.


 싸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간만의 데이트라 좋았고, 맛있는 걸 먹었고, 평소 오고 싶었던 카페에 왔다. 여느 때처럼 익숙하게 상대의 허벅지 위에 두 다리를 올리고서 서로의 시간을 탐닉하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둘 사이의 틈이 크게 벌어진다. 크레바스. 들어가는 입구뿐이고, 나오는 출구가 없어 동행자의 로프 없이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그것. 누가 헛디뎌 빠진 이인지, 밖에서 로프를 쥐고 있는 이인지도 모른 채 자가당착에 빠져 있는 상황. 사실 싸움은 사소한 어긋남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의 입으로 하여금 듣고 싶은 말을 '직접' 내뱉게, 끊임없이 다양한 각도에서 한 스푼, 또 한 스푼 떠보는 욕심. 애석하게도 그 욕심은 숨겨지지가 않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원인 모를 고단한 시간만 내어줄 뿐이다. 조금의 의문이 들면 꼭 모두 알아야 하는 뾰족한 성격이 오늘도 우리의 관계에 제동을 건다.


"왜 그랬어?"

"미안해, 몰랐어."

"왜 몰라."

"모르는 걸 왜 몰랐다고 하면 내가 뭘 어떻게, "

"말해줬잖아. 아팠다고, 그래서 힘들었다고."


 요란했던 전 연애의 잔해가 저 밑바닥에 있는 듯 없는 듯 깔려 있다, 지금 연애의 갈등의 순간순간마다 스멀스멀 올라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속았고, 속여왔단 걸 알게 됐고, 그 뒤로 원치 않는 의심들이 생겼고, 한 순간에 와르르 신뢰가 무너져 헤어졌던 전 연애의 상흔이 다시금 발갛게 부어오른다. 끝나지 않은, 아니 제대로 끝맺지 못해 괜히 떠안고 있는 이 통증이 일시적인 근육통인지, 싸움이 번질 때마다 의례적으로 겪어야할 성장통인지 알 수 없다. 결국 또다시 나는 포기란 이름으로 당장의 상처를 회피한다. 


"이제 너한텐 좋은 것만 말할게."

"미안해, 자기야... 다 얘기해줘..."

"다 말해도, 다 말하지 않아도 자긴 모르잖아."

"......"

"먼저 일어날게."


 소파 위 널브러졌던 코트와 가방을 급하게 챙기고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진동으로 남은 커피가 조금 출렁인다. 시야 밖의 너도 출렁인다. 나는 왜 너처럼 '그냥'이 안되는지. 왜 그렇게 뭐든 알아야 하는지. 사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그냥' 일어난다. 뚜렷한 인과관계없이 그냥 벌어지고, 그냥 무마된다. 그러한 그냥이 쉬운 사람이 있고, 그 무엇보다 어려운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 사람이다. 세상 일에, 사람 일에 죄다 퀘스쳔 마크를 달고서, 그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들었을 때 그것이 진실이라 믿는 사람이다. 정작 퀘스쳔 마크를 단 이유는 '그냥'이면서. 


 카페를 나서기 전 문 앞에 멈춰 서서 잠시 뒤돌아 연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풀이 죽은 듯 두 어깨가 한없이 처져있다. 상처를 아는 이와 모르는 이의 그 간극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상처를 모르는 이는 상처를 몰라줬단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너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구나'란 심란한 억울함에 힘이 빠진다. 자괴감에 빠져버린다. 그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상처를 아는 이는 상대의 미안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또르르 눈가에 맺혀 있던 흐릿한 무언가를 손으로 훔치며 밖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오늘은 도망칠 수밖에 없다. 밤하늘이 답답하게 구름으로 덮여있다.


#공간그리고사람 #BYPAKC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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