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드르륵.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앞에 앉아 있던 피디가 시야에서 멀어져 간다. 그녀가 카페를 나서자마자 13인치 남짓한 랩탑 모니터에 가려졌던, 아니 어쩌면 붙잡고 의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몸의 힘이 와르르 무너져버린다. 균형을 잃는다. 어떡하지. 머리가 무거워진다. 공모전 발표날만 해도 선명했던 미래가 저 멀리 아득해진다. 당선만 되면, 작품만 인정받으면 모든 게 풀릴 줄 알았던 나의 안일함이 오늘따라 안쓰럽다. 다 잘 될 줄 알았는데. 비 오는 날 열어둔 창가에 한 방울, 두 방울 빗물이 새어 들어오듯 후회가 차곡차곡 쌓인다. 아니, 사무친다. 잠시 후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든 후회 속을 뚫고 벨소리가 울린다. 엄마다.
"어. 밥 먹었지, 그럼. 시간이 몇 신데. 회의 중이었어."
밥은 무슨. 회의는 무슨. 피디가 갑자기 약속시간을 바꾸어 후다닥 나온 탓에 하루 종일 쫄쫄 굶었는데 천연덕스럽게도 이제 제법 거짓말과 연기가 늘어간다. 서울에 올라와 혼자 산지 3년이 넘어가는데도, 이제 곧 서른이 되는데도 엄마에게 나는 아직도 철없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물가에 내놓은 천둥벌거숭이다.
"응... 엄마, 근데 나 좀 바빠. 응, 이따 전화할게, 응, 안녕."
바쁘기는. 그럼에도 바쁘단 핑계 없인 잘 지내는 척하기 힘들 것 같아 급하게 전활 끊는다. 바쁘다는 말은 엄마에게 '나 잘 지내고 있어'라고 안도감을 주는 또 다른 말이니까. 엄마와 눈을 맞출 수도, 손을 잡을 수도, 안아줄 수도 없이 멀리 있는 딸이 줄 수 있는 안도감이란 오늘도 겨우 바쁘단 말 한마디뿐이다. 엄마는 자신의 딸이, 정시에 출근해 정시에 퇴근하며 월급 제때제때 따박따박 나오는 대기업 회사원이 되길 바랬다. 드라마에 나오는, 큰 로비를 또각또각 구두 소리 내며 정장 차림으로 당당히 출근하는 그런 회사원이 되길 바랬다. 하지만 딸이 그런 드라마 속 직업이 아닌, 그런 드라마를 쓰는 직업을 선택했을 때 엄마는 처음으로 나에게 실망했다. 그리고 걱정했다.
경상도 엄마들은 왜 그런지, 걱정이 될 때면 괜히 화를 낸다. 예전엔 화를 내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힘든 건 난데, 힘들다는 말을 할까 말까 갈등하다 겨우 한번 말해봤는데 그럴 줄 알았다며 나의 선택을 비난하는 엄마가 미웠다. 그런 엄마가 어느 순간 안쓰러워 보이는 건 내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것일까, 엄마가 그만큼 늙어간다는 것일까. 딸이라서, 멀리 떨어져 있어 더욱 놓을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 눈이,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린다는 걸 느낀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내 꿈을, 그리고 나를 온전히 이해해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떠나왔으니까. 내가 두려운 만큼 엄마도 두려우니까. 무언가 결정되기 전까지 엄마는 계속 걱정할 수밖에 없고, 나는 괜찮다고 할 수밖에 없다.
스타작가의 이름에 빌붙어 입봉을 해야 할지, 뜻 맞는 제작사를 다시 찾아야 할지 고민이 길어진다. 어떤 선택이 되든 오랫동안 쓰고 싶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그리하여 엄마의 자랑스런 딸이 되고 싶다. 그뿐이다. 머그잔에 남아있던 차갑게 식은 커피를 들이킨다. 고민은 오늘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