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역시 처음은 늘... 힘들다.
난 회사에서 육아 휴직 제도를 사용한 첫 아빠다. 어린 딸과 친해지고 싶어서, 휴학 한번 없이 대학/대학원에 직장생활로 지칠 때로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해 주자는 이유를 들어 큰 마음을 먹었다. (사실 육아휴직을 쓰기만 하면 그래도 조금은 쉴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다. 못 쉰다. 아빠들!! 쉬는 건 포기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더라. 그렇지만... 힘든 만큼 못 보던 것들이 많이 보이고 느껴진다. 강추드린다!!!!)
마침 담당하던 과제들을 모두 운 좋게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내 일을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가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탈출한 시기였다. 물론 과제를 성공, 그것도 여러 개 성공했으니 이 정도는 해주겠지란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아빠가 육아휴직을 사용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나마 여성분들의 육아휴직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회사 분위기였지만, 남자는 또 다른 것이 현실이었다. 사내에서 남자가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첫 케이스인 상황.
팀장님을 어렵게 설득해 결재를 올렸지만, 임원에서 막혀 사장님께는 올라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지속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임원이 자기가 왜 무리해서 결재해야 하냐며 보류 중이셨단다. 무척 좋은 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역시 사람은 직접 겪어봐야 진면모를 알 수 있다.
한두 달쯤 지났을까.... 이젠 결심을 내려야 했다. 결재를 회수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회사를 다닐 것인가. 이런 불합리함에 대한 항명의 뜻으로 사직서를 제출할 것인가. 사실, 내 컴퓨터에는 늘 사직서가 작성되어 있다 (날짜만 수정하면 된다. 아주 빠르게 내던질 수 있도록). '남자가 무슨 육아 휴직이냐', '진급 안 할 거냐' 같은 류의 이야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워드 내 프린터 마크를 마구 클릭할 셈이었다.
이렇게 보면 참으로 호기로웠다. 하지만 내면은 아내에게도 말 못 할 혼돈의 상황이었다. '그만 두면 뭘로 벌어먹고 살지?' 란 걱정이 한가득이었는데, '무엇인들 지금 시작하면 늦지는 않겠지' 하는 이상한 자신감이 한편으로 또 가득했다.
이 와중에 갑자기 조직개편이 진행됐고, 담당 임원이 변경되었다. 악재였다. 지금까지 알던 사람도 설득하기 어려운 일을 새로 부임한 사람에게 설명하고 설득시켜야 하는 상황이야 말로 한숨이 절로 나올 일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회사 아닌가! 하지만 이게 웬일? 우리 팀 업무의 특성을 잘 알던 분이 해당 임원으로 발령됐다. 막혀있던 결재를 보자마자, 그동안 고생했으니 아이랑 좋은 시간 보내고 오라는 격려와 함께 일사천리로 결재 완료!! 무신론자인 내 입에서
"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누구든 상관없이 우와!!! 감사드립니다." 란 말이 탄식처럼 흘러나왔다.
그렇게 벚꽃이 흐트러지게 피어 있던 날. 어린 딸아이의 볼에 스치는 바람이 조금은 날카로워 조심스러울 수 있었을 그날을 시작으로 7개월간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누군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따뜻했던 날을 꼽으라면, 난 주저 없이 딸과 함께한 지난 휴직 기간을 꼽으리라. 특별함 없이도 충분히 따뜻했고, 그 아이와 나눈 눈빛이 어느 순간보다도 반짝거렸기 때문이랄까.
지금 보니, 육아 휴직 시작부터 참 다사다난했다. 있는 제도도 이렇게 쓰기 힘들어서야... 이럴 거면 뭐하러 사규에 육아 휴직은 만들어 놓은 건지.... 쳇이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