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와 실무자의 간극

퇴사하기 딱 좋은 날이군.

by 설온우


어느덧 9월이 됐는데, 지구도 이를 아는 걸까? 하늘은 가을빛으로 바뀌었고, 바람은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음..... 퇴사하기 딱 좋은 날이군.' 비 오고 우중충한 날 말고, 되도록이면 이렇게 화창하고 햇볕 좋은날 퇴사하고 싶은데,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뭔가의 마침표는 너무 검고 짙지 않았음 하는 바람이랄까.




이상하게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은 동일한 연구원임에도, 책상에 앉아서 입으로만 일하는 관리자와, 실제 필드에서 연구하는 실무자로 나뉜다. 업무의 특성 때문일까 싶겠지만, 이 때문이 아니니 문제다. 약간 뭐랄까...... 신분의 차이라고 비유하는 게 적절하겠다. 더 압권은 실제 연구 경험이 풍부하지 못한 사람들이 주로 책상에 앉아있다는 것이고, 이렇다 보니 이 두 신분 간의 불화가 끊이질 않지만, 변화할 기미도 없다.


앉아있는 소수의 인원이 하는 일은 대략 이렇다. 실무자들이 결정한 사항에 늘 태클을 걸고, 이들을 감시하고 험담하며, 자기편과 아닌 사람을 나누려 노력하고 (하지만 늘 실패한다) 분란을 조장한다. 책임져야 할 일은 필드에 있는 연구자에게 미루고, 책임이 필요한 의사결정은 팀장에게 미루며, 실무자들이 힘들게 만들어낸 결과로 생색내기. 아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 신입사원이 연구원들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스케줄 관리.

(아...... 그들이 하는 일을 나열하다 보니.... 갑자기 현타가...... 오늘은 유난히 퇴사하기 좋은 날이군.)


사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때가 많다. 그래서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공개해달라고 팀장에게 여러 번 요청했지만, 그럴 생각도 없어 보인다. 우리 연구소가 FBI 정도 되는걸까? 비밀요원이 너무 많다. 제발 비밀 미션만은 꼭 성공해주길.....


아무튼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실무자들과 그들 간에 건너지 못할 만한 간극이 생겨버렸지만, 그들은 실무자들과는 급이 다르다며 그 간극을 신분의 차로 단정했고, 이로 인해 당사자들은 괴롭지만, 팀장은 이 간극이 불편하지 않을뿐더러 관심도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시스템이 있는 회사가 좋다. 보통 실무를 잘하는 사람이 책상에 앉기 마련이고, (우리 회사는 제외다) 이 사람이 '관리'라는 일까지 잘한다는 확인 없이 보통 그 역할을 담당하기에, 이를 시스템이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감이나 연줄을 믿지 말고.


그리고 아니다 싶으면 변화시킬 수 있는 관심과 결정도 필요하다. 요즘 세대들이 공무원에서 대거 퇴직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일 테다. 불공정하지만 변화는 없고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도 없는 조직. 업무가 힘든 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그래...... 이건 솔직히 답이 없다.


이렇지만, 오늘도...... '하..... 퇴사 하기 딱 좋은 날이군'이라는 주문을 외우며 출입증을 찍었다. 어떻게 해야 변화라는 희망이 찾아올 수 있을까. 아마도 희망을 보기 전에 손가락이 먼저 사직서를 클릭할 것 같지만, 그래도 오늘처럼 화창한 날이면 '출근하기 딱 좋은 날이군'이란 농담 한 번쯤은 해볼 수 있게 좀.....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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