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원의 세계

처음 쓰는 #요가일기

by PAKi

오늘 요가수업에서 부장가아사나(코브라 자세)를 할 때였다.



선생님께서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몸 앞면은 일차원. 몸 뒷면은 이차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옆면을 삼차원이라고 했다. 사람은 일상생활을 하며 대부분 몸 앞면을 이용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몸 뒷면을 사용할 일이 적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일수록 몸 뒷면을 잘 쓴다고 했다. 또 반대로 얘기하면 몸 뒷면을 잘 쓸수록 자기 확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얼굴, 가슴, 배, 등등.. 삶에 활용되는 부위는 다 앞 쪽에 있다. 팔도 주로 앞으로 뻗고, 발도 앞으로 내딛으며 걷지 않는가. 밥도 뒤통수로 먹는 게 아니듯, 모든 것이 다 내 앞 쪽으로 펼쳐져 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는데 정말 그랬다. 어쩌면 사람들은 눈앞에 보는 것에만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평생 내 뒤에 무엇이 있는지, 나의 뒷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은 채 이 인생을 살다가는 지도 모른다. 이유는?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까.


sketch1699586548110 (2).png 부장가아사나 대충 이렇다. (그림: 내가 직접 그림)


요가를 하다 보면 등 뒤를 쓰는 경우가 많다. 후굴이라고 하는데, 부장가아사나 말고도 아주 갖가지 자세가 많다. 누워서 허리를 들어 올린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도 그렇고, 낙타자세라고 하는 우스트라 아사나도 그렇다. 낙타가 허리가 강한 동물이라고 한다. 아무튼, 동작들을 해보면 내가 얼마나 뒤집힐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아사나를 완성하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 뒤로 가다 보면 엉덩방아를 찧거나, 목이 다칠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에 중도에서 그칠 때가 있다. 몸이 준비되면 아사나가 완성될 것 같지만, 몸이 가능하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아사나를 완성할 수 없다. 나에게 확신이 들어야 한다. 요가란 그런 운동이다.



나 같은 겁쟁이들한테는 요가는 좀 버거운 면이 있다. 동작을 하다 보면 몸을 이렇게까지 한다고? 이거 뼈 나가는 거 아니야(?) 하는 이상한 아사나도 꽤 있다. 누누이 말하지만, 시르사아나 사(머리서기)도 처음 뒤집혔을 때 너무 무서웠고, 세상이 어떻게 되는 줄로만 알았다. 내 몸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다. 발로 서든, 머리로 서든, 내 몸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었다.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 역시 내 허리가 C자처럼 꺾일 수 있다는 믿음? 전혀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어'가 너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참 신기하게도 수련을 거치고, 몸을 단련하다 보면 마음도 서서히 준비가 되어간다. 요가는 마음과 몸이 따로 있지 않다. 코어에 힘이 생기고, 허벅지가 탄탄해져 가면, 내 마음에도 근육이 생긴다. 나는 할 수 없어에서 할 수 있을 거야로 서서히 변한다. 나는 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불안감이 사라졌다. 견갑골을 조이면서, 척추기립근에 힘을 주면서, 나도 몰랐던 미지의 영역을 깨웠던 덕분일 것이다.



확신이라는 것은 참 모호하다. 인생에 확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나는 늘 3-40퍼센트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일을 해왔다. 일하는 업계 특성상 유동성과 변화가 너무 큰지라 그 정도의 확신도 어찌 보면 대단히 큰 퍼센티지다. 일의 결과는 수치상 좋게 나온 적이 별로 없고, 그로 인해 우울하기도 했고, 좌절하기도 했다. 같은 일에 참여한 사람들끼리 다독이며 오지 않을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지는 일이 많았다. 몇 년간 그런 반복을 겪다 보니 참 지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어느 것 하나 확신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될지 몰라, 그게 내 입버릇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요가를 통해 내 몸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떨쳐내며 이차원에 세계에 진입하듯이, 내가 만약 다음 일을 맡게 된다면 내가 전혀 몰랐던 영역을 일깨워보리라.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은 그저 내 앞에 있지 않았을 뿐이라고, 내 뒤에 있었기 때문에 몰랐을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조금의 확신을 더 가져보리라. 내 앞에 산적해 가는 일더미에서 헤맬 것이 아니라 가끔은 뒤집어보고 가끔은 거꾸로 서 보면서 나의 뒤를 확인해 보리라. 무엇인가를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공포와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으므로. 그렇게 나의 확신을 키워보리라.



하지만 나는 나를 안다.

아주 그렇게는 되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반드시 한 번은 그리 해보리라.



나도 그 정도는 해볼 수 있는 사람이야.

나는, 이차원의 세계를 아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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