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쓰는 #요가일기
나는 고통에 취약하다.
고통에 능통한 사람이 어딨겠냐만은 나는 다가올 고통에 대해서 지레 겁까지 먹는 스타일이다.
눈 위의 작은 쥐젖이 내내 거슬려서 찾은 피부과에서 눈가 피부는 약해서 많이 아플 수도 있다,라는 말에 바로, 다음에 하겠다고 뛰쳐나왔다. 그리고 그다음은 오지 않았다.
반영구 아이라인을 주변에서 다들 하던 시절, 아프다는 말 한마디에 해서는 음, 안 되겠다, 일찍이 단념했다.
그 때문일까.
자전거를 배우는 것도 매우 느렸다. 성인이 되어서야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넘어지는 것이 그토록 겁이 났다. 넘어지면? 아프잖아! 그러나,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탈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결국 넘어지는 대신 몇 년의 시간이 더 걸렸고, 그 결과 자전거 타기를 점진적으로 습득하게 되었으나 현재 겨우 페달을 밟고 나가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때 나의 목표는 자전거를 마스터하겠다는 것이 아닌 넘어지지 않겠다, 였는지도 모른다.
육체적인 고통 외에 심리적인 고통에도 예민하다. 나는 과거를 잘 들춰보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실패, 실수, 오류, 잘못, 서투름의 기억은 여전히 낯을 달구고, 번뇌의 재료가 된다.
나에게 과거를 떠올리는 것은 애써 빠져나온 구덩이에 도로 들어가 앉는 것과 비슷하다. 가능한 한 멀어지고 싶다. 작은 점으로 만들고 싶다. 그러나 알고 있다. 영원히 작아지기만 할 뿐,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고통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요가를 수련할 때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신다. 잠시 고통에 머물러 보세요. 정말로 고통스러운 아사나(자세)가 있다. 단 1초도 버티기 힘든 고통에 깜짝 놀라 아사나를 바로 풀어버리곤 한다.
나도 이 고통을 이겨내고 아사나를 완성하고 싶지만 이 아픈 걸 무작정 참아낼 순 없지 않은가. 너무 힘들다. 못 참겠어. 나에게 이 자세는 힘들 거야. 아마 되게 아플 거야. 조금 살살해야지.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배우겠다는 심보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요가를 조금씩 더 수련할수록 나는 그 심보를 고쳐 먹기로 했다. 고통에 머물러 보라는 말을 내가 이제야 제대로 알아들은 것이 맞다면 고통을 이겨내라는 것도 아니고, 고통을 참아내라는 말도 아니다.
그 말은 그저 가만히 어디가 아픈지, 얼마나 아픈지, 한번 지켜보라는 뜻에 가깝다. 잠시 한번 있어보는 거다. 이 고통의 순간에. 그 말은 영원히 고통스럽지는 않을 거라는 타이름이기도 하다.
무릎 뒤 햄스트링이 찢어질 것 같은 이 고통에 잠시 머물러본다. 고통을 참아내거나 이겨내는 것이 아닌, 잠시 고통을 받아들여보는 것. 호흡한다. 어차피 세 숨. 길어야 다섯 숨이다.
고통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는 순간 더 깊은 고통에 빠져들 때가 있다. 고통을 외면하려고 할수록 끈질기게 내 뒤꿈치에 따라붙을 때가 있다.
그럴 땐 고통을 잠시 인정해 보는 것이다. 아무리 어른이 되었어도 넘어지지 않고는 성장할 수 없다. 이쯤에서 한번 무릎 한번 까져주고 생각보다 아프지 않네, 생각보다 견딜만하네, 이런 생각이 든다면 얼마나 마음이 가뿐해지겠는지.
삶에도 아사나가 있다. 고통 없이 아사나를 완성할 순 없겠지만 고통을 받으며 아사나를 완성할 필욘 없다. 그런 아사나는 아름답지도, 편안하지도 않다.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닌 고통에 머무른다면 오히려 불안과 강박에서 벗어나는 작은 비상구가 보일지도 모른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 그 유명한 구절처럼 고통은 아무리 길어도 세 숨, 길어야 다섯 숨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