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탕의 추억

아이때문에 밥 먹다 울었다.

by 더딘

아내와 집안 일과 주 양육자의 역할을 바꾼지 6개월 정도 시간이 흘렀다.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집안일과 육아에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덕분에 일에 조금 더 집중 할 수 있게 되었다.


대신 아이에게 유했던 아내는 조금씩 날카롭게 변했다. 아이도 자라면서 말을 잘 듣지 않거나 장난이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혼나는 시간은 밥 먹는 시간이었다. 아이는 밥 한 숟가락 입에 넣고는 자리를 이탈했다. 주로 장난감을 가지러 가지만 이유가 없이 자리를 떠나는 경우도 많았다. 자리는 떠나지 않지만 밥을 먹지 않고 장난만 치는 경우도 많았다.

이로 인해 아내의 잔소리는 점점 심해졌고, 나는 참다 참다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배가 안고픈가보지, 안 먹으면 그냥 치우자."


내 말을 들은 아내는 그 뒤로 잔소리를 조금씩 줄였다. 세번 정도 아이에게 얘기한 후, 그래도 먹지 않으면 치우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식사 시간이 조금은 편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아이는 변기에 응가하는 연습을 시작했고,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3일에 한 번씩 보던 때였다. 그러니 정말 배가 안 고팠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뒤로 아내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적은 돈이지만 대가도 받았고,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외식을 하게 되었다. 메뉴는 갈비탕. 나를 위한 아내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우리 세 식구는 자리에 앉아 갈비탕과 냉면, 만두국을 함께 주문했다.


식사가 나오기 전, 아내와 아이는 작은 분쟁을 시작했다. 아이는 공룡 영상을 보여달라고 떄를 썼고, 아내는 밥 잘 먹으면 보여주겠다고, 회유했다. 결국, 아내의 승리였다.


식사가 나오고 나는 야무지게 갈비탕과 냉면을 번갈아 가며 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도 먹지 않은 아이는 다시 영상을 보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아직 남아있는 밥을 가르키며, 이것만 먹으면 볼 수 있다고 다시 회유했다. 엄마와의 분쟁에 지쳤는지, 아이는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들, 자리에서 잘 먹어야 공룡 영상 많이 볼 수 있지."


내가 말했다. 그러자 아이가 나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아빠가 먹여주는게 제일 좋아서 왔어."


순간, 나는 숟가락에 밥을 떠올리다 울컥하고 말았다. 아이는 그저 엄마를 피해 나에게 온 것일 수도 있지만, 아이의 말이 내게는 너무 큰 의미가 있었고, 너무나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한창 내가 밥 떠먹여주던 아기였던 아이가 내 옆에 앉아있었다. 갈비탕의 추억이 생겼다.


사회에서 나는 강하지 않은 존재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커다랗고, 강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음을 느꼈다.

아이와 함께한 36개월. 그 전에는 성악설을 어느 정도 믿었던 나였지만 지금의 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개구쟁이 천사처럼 느껴진다.


앞으로도 아이가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고 싶다. 강한 햇빛을 대신 맞아주며,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고 싶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