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어떻게 할 거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러게 내가 피임 확실히 하라고 했잖아."
"미안해."
"어쨌든 이제 어떻게 책임질 거야?"
"나야 뭐......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 나는 따라갈게."
"그래? 그럼 알았어. 낳아야지 어떻게 하겠어. 대신 나랑 한 가지는 약속 해."
이상의 대화는 아직 결혼 전인 커플이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해서 나눈 가상의 대화가 아니다. 오래전 셋째를 임신했을 때 아내와 내가 나눈 대화 내용이다.
둘째 아들이 8살이던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물국수를 먹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는 원래 국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웬일로 입맛이 변했나 싶었는데 혹시나 해서 검사를 해 보니 셋째를 임신해서 나타난 입덧이었다. 당시 위로 딸과 아들 두 아이가 있어서 더 낳을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 계획에도 없던 셋째를 임신하고 출산할지 말지 고민이 많이 되었다. 결국 낳기로 결정하면서 아내가 나에게 다짐받은 내용은 두 가지였다.
첫째. 병원 경영을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쪽으로 책임지고 잘할 것.
둘째. 분만 시 쓰는 흡입기는 내다 버릴 것.
당시 개원해서 운영하던 병원은 그럭저럭 운영은 되어서 먹고는 살았지만 자녀 교육과 노후를 생각해 저축할 정도는 아니었다. 세 아이를 키워야 하는 입장에서 양육비나 교육비를 생각하면 아내는 현재의 경영 태도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두 번째 조건에 있는 흡입기는 난산으로 아기 머리가 골반에 끼어 나오지 않을 때 자연 분만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항상 하게 되는 고민이 있다. 언제 이 그림을 그만두고 완성작으로 서명을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다. 그림이라는 것이 수학처럼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끝내야 하는 지점이 정해져 있지 않다. 화가에 따라서는 평생을 두고 못 끝내는 그림도 있는 반면 어떤 화가는 그리다 만 상태가 분명해 보이는 상태로 끝내기도 한다. 특히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랬다. 대충 그렸다는 느낌을 준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는 어떤 기자는 원숭이도 그릴 수 있는 그림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누가 봐도 그리다 만 것이 분명했다. 사실 모네의 그 그림은 끝까지 그릴 수가 없다. 해가 뜨는 잠시의 시간 동안 그림을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림을 화실로 들고 가서 마무리를 천천히 할 수 있지만 평론가들도 나중에 화실에서 완성한 작품보다 야외에서 급하게 그린 그림들이 오히려 더 생동감이 있어서 좋다고 평가했다.
내가 전문 화가의 마음을 알기는 어렵지만 화가들도 더 이상 손을 댈 곳이 없는 완벽한 작품을 그렸다고 생각해서 붓을 놓는 작품을 남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화가 윌렘 드 쿠닝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그리려고 해도 계속 그리다 보면 어느새 추한 인상으로 변해 버린다."라고 농담 삼아 고백했다. 물론 그는 실수로 그렇게 그린 것이 아니라 일부러 실제의 모양을 일그러뜨리고 숱하게 지우고 덧칠하는 과정을 통해 대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얼핏 보면 아니 자세히 봐도 마찬가지지만 그리다 만 것 같거나 아주 솜씨가 없는 화가가 그린 것처럼 보인다. 사실 그가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는 수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전시회에 출품하기 직전까지도 붓을 놓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이 올린 작품 "여인 1"도 1950년에서 1952년까지 3년에 걸쳐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여인 시리즈의 작품은 아무리 봐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솔직히 말하면 가슴과 샌들 비슷한 신발로 추측할 뿐 여인인지도 잘 모르겠다. 여인이든 아니든 그가 그림을 통해 추구한 것은 아름다움은 아닌 듯하다. 완벽함도 물론 아니다. 그는 그림을 위해 이렇게 힘든 수고를 기울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더 이상 빼고 더할 것도 없이 완벽한 삶이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산부인과 의사도 출산 과정 중에 그런 고민을 하는 때가 있다. 난산이 되어 흡입 분만을 시도하는 경우다. 출산이 워낙 힘들고 난산이 많아서 출산을 도와주는 도구들이 종종 개발되어 사용되었다. 겸자라고 하는 것이 그중 하나인데 손잡이가 달린 타원형의 주걱 같은 쇠가 양쪽으로 벌어진 모양을 하고 있다. 그중 가장 성공적으로 잘 만들어져 실제에 사용된 겸자는 1630년 프랑스의 샹베를레느 챔벌린이라는 이가 개발하였고 그의 가문은 대대로 100년에 걸쳐 겸자를 독점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100년이 지나 그 가문에서 겸자의 제작과 사용 방법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나서부터는 겸자를 사용하여 출산을 돕는 사례들이 많아졌다. 겸자는 남성 이발사 겸 외과 의사만이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남성 의사가 출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남성 의사의 개입은 점점 늘어났지만 이후 여러 단점으로 하여 겸자는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도구를 이용한 질식 분만에는 겸자 분만 외에도 진공 흡입기를 이용한 흡입 분만이 있다. 흡입기는 아기의 머리에 진공 흡착기와 같은 기구를 붙여서 아기를 외부로 끄집어내는 시술이다. 어느 CF에 보니 두 개의 진공청소기를 빌딩의 벽에 빨판처럼 교대로 붙여 가면서 높은 빌딩을 올라가는 것이 있었다. 그만큼 강력한 진공 작용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상이라고 생각한다. 흡입기는 아기 머리에 붙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강력한 진공을 만들지는 않는다. 흡입기를 이용한 최초의 분만은 1705년 제임스 영이라는 영국의 외과 의사가 사용례를 보고 하였으나 정상 출산에는 실패하고 한동안 사용된 사례가 없었다고 한다. 흡입기가 실제 의료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다. 1970년대부터는 분만 겸자를 대체하기 시작하여 미국의 경우 1992년부터는 기구를 이용한 자연 분만에서는 겸자를 앞서게 되었다.
흡입 분만은 진공청소기처럼 아주 강력한 흡인력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오래 사용하다 보면 아기에게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래서 흡입 분만을 언제 중단할지 판단하는 것은 의사에게 있어 매우 중요하다. 교과서에서는 흡입기 사용의 중단 시점을 아래와 같이 정해두고 있다.
• 3번의 연속된 흡입으로도 출산이 되지 않았을 때
• 태아 두피 손상이나 두혈종이 뚜렷할 때
• 흡입기가 3번 이상 태아 머리에서 떨어졌을 때
그러나 막상 흡입 분만을 시도하게 되면 중간에 중단하기가 쉽지 않다. 흡입 분만을 시도하다가 중단하고 제왕절개 수술을 하게 되면 그 또한 시간 지체로 위험할 뿐 아니라 이중으로 고생하게 된 산모나 가족으로부터 원망을 들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예이지만 젊은 사람의 심폐 소생술을 하는 경우에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젊은 나이의 자녀를 갑자기 잃게 된 부모들은 안타까움에 심폐 소생술로 살려 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심폐 소생술의 중단 시점은 가족들이 그만해도 좋다고 포기를 선언하는 순간이다. 그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심폐 소생술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흡입 분만은 중간에 그만해도 좋다고 포기하는 가족이 없다. 언제 중단해야 하는지 전문가가 아닌 가족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의사가 판단을 해야 하는데 의사도 중단 결정을 내리기가 솔직히 쉽지 않다. 중단 시점이 정해져 있지만 일말의 희망을 놓을 수가 없어서 심폐 소생술을 포기하지 못하는 가족처럼 의사도 그런 마음이 된다.
흡입기를 이용한 분만은 성공하고 아무 문제가 없으면 다행이지만 흡입기 때문이든 다른 이유 때문이든 결과가 나빠 아기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분쟁으로 연결되기 십상이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그때도 의료 분쟁이 발생하면 산모나 가족에게도 비극이지만 의사에게도 심각한 문제였다. 많은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거나 폐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산부인과 의사는 흡입기를 사용하는 것을 꺼린다. 아내의 요구처럼 아예 흡입기를 내다 버린 의사도 많다. 흡입기를 사용하여 병원이 얻는 득은 거의 없는데 비하여 감수하여야 할 잠재적 위험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흡입기를 고려해서 출산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말고 제왕절개 수술을 하라는 조언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동안 흡입기를 이용한 분만을 필요에 따라 사용하고 있었다. 제왕절개 수술을 피하고 산모가 자연 분만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기 위해서였다. 그런 내 모습을 병원에서 함께 일하면서 보는 아내로서는 많이 걱정스러워했다. 그래서 셋째를 출산할 무렵 내게 그런 다짐을 받으려 한 것이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시인 이형기 님의 낙화라는 시의 일부다.
내가 지켜야 할 조건이 달리기는 했지만 우리 부부는 셋째를 출산했다. 그 아이가 내게 하는 말 중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됐거든. 아빠는 몰라도 돼"라는 말일 정도로 다 큰 숙녀가 되었다. 그리고 나를 닮아 엄청 까칠하다. 셋째를 낳았으니 그렇다면 나는 흡입기를 내다 버리고 병원 수입을 올리는 방안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켰을까? 그 대답은 알려드리지 않겠다. 말하자면 열린 결말로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긴다.
-여기 실은 그림-
윌렘 드 쿠닝의 "여인 1"
-함께 보면 좋은 그림-
모네의 "해돋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