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1인 가구 비율이 약 30%를 넘어서 이제는 가장 많은 주거 형태라고 한다. 가족 단위로 식사하는 사람이 줄어 패밀리 레스토랑은 사양길에 접어든 지 오래다. 이젠 혼밥과 혼술이 익숙한 문화가 되었다. 과거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결혼하면 아기를 반드시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결혼은 선택이고 출산은 파업이라고 할 정도가 되었다. 이런 현상이 단 기간에 변할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혼밥이나 혼술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아가 이제는 밥뿐 아니라 잠을 포함하여 모든 생활을 혼자 하는 삶도 흔하다. 그렇게 살다가 죽을 때는 또 아무도 곁에 없이 혼자 죽는다. 한마디로 삶 전체가 혼자인 삶이다. 혼삶이라고 부르면 적당할 것이다.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던 아니면 혼자 살면서 자기 생활을 오롯이 만끽하던 개인의 자유다. 어떤 것이 낫고 어떤 것이 못하고 한 것은 없다. 태어날 때부터 문제를 안고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지 정답 또한 있을 수가 없다. 사람마다 개인 취향과 철학이 다르니 어떤 이는 결혼과 출산을 통해 삶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그 반대의 상황이 더 행복할 수도 있다. 삶을 사는 방식에서 모든 사람이 같을 필요는 없다. 한 가지 방식만이 최선이라고 할 수 없다. 혼자 사는 삶이든 더불어 사는 삶이든 스스로가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해서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면 된다.
다만 굳이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혼삶보다는 더불어 사는 함삶을 권하고 싶다. 때로 간섭으로 귀찮고 갈등으로 힘들고 이럴 거면 차라리 혼자가 좋았겠다 싶은 순간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기쁠 때도 그렇지만 특히 슬프거나 아플 때는 혼자 보다 둘이 있으면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을 출산을 돕는 산부인과 의사로 살면서, 한부모 가정 임신부의 출산을 도우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결혼할 때 "나는 당신을 아내/남편으로 맞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병들 때나 항상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일생을 함께 할 것을 맹세합니다"라는 맹세를 한다. 슬플 때나 기쁠 때, 아프고 괴로울 때 혼자 있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몇 년 전 한부모 가정 임신부의 진료와 출산을 얼마간 도운 적이 있다. 사실 한부모 가정 임신부를 진료하는 것은 다른 일반 산모들 진료하는 것보다는 어려운 점이 있다. 우선 정기적 산전 진료를 받지 못한 산모가 대부분이라 내가 그녀들의 산전 진료를 보게 되는 시기는 거의 임신 8개월 이후인 경우가 많았다. 그 이야기는 산모와 아기의 상태를 잘 모른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산모들 거의 대부분은 심한 빈혈 상태고 영양 불균형인 경우가 많았다. 지나치게 마르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비만했다. 임신해서도 제대로 자신의 몸을 관리할 정신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들의 진통 과정은 다른 일반 산모들보다 대체로 더 힘들게 보였는데 아무래도 아기 아빠가 없이 혼자서 진통과 출산을 겪다 보니 고통을 더 심하게 느끼는 것으로 보였다. 고통과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는데 나누지 못한 반은 전부 산모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빈말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나는 산부인과 의사다. 오늘도 한 생명을 만났고 방금 태어난 어떤 아기는 처음 부모를 만났다. 이 세상이 어머니의 뱃속처럼 편안하고 어릴 때 읽었던 동화처럼 재미있기만 한 세상은 아니겠지만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곳에 왔다고 마음속으로 축하해 준다.
산다는 것은 결국 만나는 일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도 있다시피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많은 사람과 만났다가 헤어진다. 모든 일의 시작도 만남에서 시작한다. 저녁이 있는 삶도 좋지만 만남이 있는 삶은 더 좋다. 그리고 그 만남이 사랑으로 시작하는 것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이 좋다.
나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길 바란다. 특히 남자와 여자가 서로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기를 바란다.
종교 지도자라서가 아니다. 박애주의자라서도 아니다. 내 직업이 산부인과 의사이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해야 임신을 하든 말든 할 것이고 그렇게 해서 출산도 해야 내가 할 일이 생겨서 먹고살 수 있다. 내 존재 의미도 생긴다.
몇 년 전에 경기도가 중소기업 미혼 근로자의 살의 질 향상을 위한 기획으로 혼밥, 혼술 대신 함밥, 함술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다. 성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태의 흐름이란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니 일과성의 캠페인으로 끝나고 크게 효과를 보았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 해도 나는 출산 현장을 지키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혼삶 보다는 함삶, 혼자 낳기보다는 함께 낳는 것을 권하고 싶다.
이 책에는 임신이 40주인 것에 맞추어 40개의 그림을 실었다. 더불어 출산을 돕는 산부인과 의사 생활을 하면서 내가 느낀 소소한 생각이나 에피소드를 담았다.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출산 순간부터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세상이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좀 더 강하게 느끼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책 이름을 "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라고 지은 이유는 보는 사람에게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을 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러나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책도 막상 읽어보면 아주 재미가 없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삶의 모습과도 닮았다. 삶이란 대체로 지루하고 재미없고 피곤하고 힘들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모습 전부가 아니다. 임신 40주도 여러 가지로 불편하기 짝이 없다. 몸도 무겁고 활동도 부자연스럽고 초기에는 입덧으로 후기에는 요통으로 힘든 시절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임신의 전부가 아니다.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이 40개의 글에서 재미없고 지루하고 어려운 부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숨어 있는 다른 것들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을 찾을 수 있다면 재미없고 힘들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여러분의 삶에서, 불편하고 짜증스럽기만 했던 임신 40주에서도 같은 것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추어 작가가 쓴 문장도 엉성한 이 글들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었다면 삶에서 그것을 찾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임산부들의 순산과 모든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기원한다.
2021.09.04
심상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