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96번 올빼미 준비되었습니까?"
"96번 올빼미 하강 준비 끝"
"하강"
"엄마"
위 대화는 막타오에서 뛰어내리기 직전 구조물의 끝단에 섰을 때 빨간 모자를 쓴 유격 교관과 훈련생인 내가 나눈 대화다. 막타오 훈련은 지상 11미터 높이에서 몸에 밧줄 하나 묶고 뛰어내리는 훈련이다. 오래전 군의관 대위로 예편하기 전 3개월간의 군사 훈련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올빼미라는 호칭은 그중 유격 훈련 때 훈련생들을 부르는 단어다. 훈련장에서 교관들은 훈련병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각자에게 부여된 2자리 혹은 3자리의 번호로만 부른다. 이렇게 자신의 이름이 아닌 의미 없는 숫자로 된 호칭으로 불리는 곳은 군대 말고 한 군데가 더 있는데 바로 교도소다. 이름을 부르지 않고 번호로 불린다는 것은 개개인의 고유한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인격을 가진 대상이라기보다 훈련이나 교정이 필요한 대상물로만 본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이 박탈된다는 것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는 적지 않다.
조선 시대, 남성보다 인권이 열악했던 여성들에게는 아예 이름이 없거나 있더라도 공식적으로 불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5만 원짜리 지폐에까지 얼굴을 올린 신사임당은 이름이 무엇인지도 알려지지 채 그저 그분이 거주했던 거처의 이름인 당호로만 알려져 있다. 사임당이라는 이름은 요즘으로 치면 부산댁, 목포댁 하고 부르는 호칭에 해당할 뿐 고유의 이름이 아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가장 빨리 배우는 말은 엄마이거나 모유를 뜻하는 맘마다. 태어나 얼마 되지 않은 아기의 말은 부정확하기 때문에 아기의 첫말이 엄마라는 단어인지 맘마라는 단어인지 사실 구분하기는 좀 어렵지만 사실 그 둘은 같은 의미다. 엄마가 곧 맘마다. 사람이 태어나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엄마라는 말이라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자신의 이름이다. 가장 많이 하거나 듣는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단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도 있다시피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자신의 이름을 짓는 일이다. 이름은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부모나 조부모가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 때문에 일 년에 개명하는 사람이 십수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내 여동생의 이름은 영자다. 글에서 가족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오빠가 글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동생의 과거 이름을 공개하는 정도는 용서해 줄 것이라고 믿어 본다. 물론 그 이름은 과거의 이름이고 그 이름 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다가 다 큰 성인이 되어서 이름을 바꾸었다. 이름을 바꾸는 것은 지금은 비교적 수월해졌다고 들었는데 과거에는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사유가 타당해야 법원의 개명 결정을 받을 수 있었다. 바꿀 수는 있다고 해도 태어나면서 받은 이름을 바꾸는 일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고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래서 SNS 가 발달한 요즘은 마음에 드는 의미를 담아서 자신의 실명보다는 아이디를 주로 자신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한다. 내가 직접 지을 수 있는 이름이 과거에는 호였다면 지금은 인터넷 상의 별명 즉 아이디다.
이름의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 평생, 아이디의 경우도 마음이 변해 바꾸기 전에는 거의 대부분 수년 이상 사용한다. 사용 기간에 제한이 없다. 반면 사용 기간에 제한이 있는 호칭들이 있는데 요즘은 별로 쓰이지 않지만 아이들 때 부르는 아명이 그렇고 임신한 동안에 부르는 태명이 그렇다. 태명을 정하지 않는 부모들도 있기는 하지만 요즘 보면 거의 대부분 부모들이 태명을 지어준다. 그저 단순히 아가야라고 하는 것보다는 특정한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이 정서적으로 더 교감이 잘 되기 때문 아닐까 싶다. 상대방을 너 혹은 당신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는 것처럼 뱃속의 태아도 듣지는 못하겠지만 아마 싫어하진 않을 것이다.
태명의 유래에 대하여는 아직 일관된 학설은 없다. 일본이나 중국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외국에서 이렇게 뱃속의 아기를 위해 태명을 쓴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태어나면서 1살이 되는 것도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임신하고 있는 10개월을 한 생명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짐작이 된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태아에게도 인격을 부여하고 존중해 주는 문화가 있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고 즐거운 생각만 하도록 하는 태교도 이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문화다.
출산한 지 날짜가 좀 지나면 얼굴은 잊어버려도 임신부의 아이디나 태명은 기억이 오래 남는다. 제일 많이 들어본 태명은 사랑이라는 태명이고 기쁨이라는 태명도 꽤 많이 들었다. 밤의 속껍질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밤톨처럼 잘 자라는 의미의 보늬, 바르게 자라라는 의미의 바름이, 아들이면 대통령 시키겠다는 의미로 통령이, 흔한 것으로 지어야 아이가 오래 건강하다는 의미로 개똥이, 그리고 의미를 잘 모르는 것이지만 랑이, 봄봄이, 세븐이, 소울이 등등. 이런 태명은 진료하면서 물어보아서 아는 것은 아니고 저희 병원에서 드리는 산모 수첩에 태명을 적어 놓아서 알게 된 것도 있고 산후 맘 모임에서 알려주어서 알게 된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태명이 없는 아기보다는 태명이 있는 아기가 기억하기 더 쉽다. 그런 점에서 나는 태명을 짓는 것을 장려하는 의사다. 물론 태명이야 출산과 관련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순산 체조를 강조하는 것처럼 의지를 가지고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내에게 잘하지 못한 것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그중에는 이름과 관련된 것도 있는데 연애할 때 빼고는 아내의 이름을 불러 준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결혼하면서 얼마 안 되어 큰 딸이 태어났고 그 이후 아내를 부를 때면 큰 딸의 이름을 붙여 민O이 엄마라고 불렀다. 지금은 아예 아내를 민O아하고 부른다. 아내는 결혼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렸다. 큰 딸과 함께 지내던 시절에는 이름을 부르면 아내와 큰 딸이 동시에 대답하곤 했다. 요즘 아내는 등산 동호회 활동을 부지런히 하는데 그곳 사람들은 이름은 아니지만 아내를 아이디로 불러 준다. 다행이다.
어떤 사람에 대하여 그 대상이 산모이든 아이이든 혹은 뱃속의 태아이든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해 준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은 너무 많이 알려진 시이니 내가 굳이 여기 그 시의 전부를 올리지는 않겠다. 대신 일부만 올리면서 단어 몇 개를 바꾸었다. 시인의 시에 있듯이 어떤 것에 이름을 부여하는 순간 그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세포 덩어리, 핏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생명이 되었다.
초상화를 그린 화가 중에는 자신의 작품에 모델의 이름을 다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모델이 왕이나 왕비 혹은 유명한 사람일 때는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고 모델이 무희 거나 세탁부와 같은 하층민일 때는 거의 대부분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유명인이 아님에도 자신의 그림에 이름을 붙인 화가들이 있다. 그런 그림의 모델은 대부분 화가의 어머니나 아버지다. 특히 어머니인 경우가 많다. 알브레이트 뒤러의 “바바라 뒤러”, 에두아르 마네의 “오거스트 마네”, 앤디 워홀의 “줄리아 워홀라”등이 그런 예들이다. 어머니를 그린 화가들은 많지만 대개는 이름을 넣지는 않았다. 이름을 넣었던 이유는 자신의 어머니는 왕이나 어느 유명인 못지않게 화가에게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음악에 문외한이라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음악가 중에 자신의 어머니의 이름을 담아서 작곡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런 점에서는 화가가 좀 나은 것 같다.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인 어머니를 돌아가신 후에도 그림으로 영원히 남겨 둘 수 있으니 말이다.
그중 여기 실은 그림 “앤 컨스터블”은 구름을 주로 그린 풍경 화가 존 컨스터블의 어머니의 이름이다. 존 컨스터블은 윌리암 터너와 더불어 영국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화가다. 컨스터블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 근처의 풍경을 주로 그렸다. 고흐처럼 그도 39세가 되기 전까지는 단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다. 죽기 불과 13년 전인 48세에 그린 건초 마차라는 작품이 살롱전에서 금메달을 받기는 했지만 살아생전에는 고국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가 활동했던 당시에는 장엄하고 웅장한 그림을 선호하던 분위기가 있었는데 그의 그림은 그저 주변에서 흔히 보는 평범한 풍경, 그리고 구름 따위를 별다른 꾸밈없이 소박하게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이름을 붙인 여러 화가의 작품 중에 존 컨스터블의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그림 자체가 내 취향에 맞아서라기 보다 고흐처럼 인정받지 못한 긴 세월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 때문이다.
-여기 실은 그림-
존 컨스터블의 “앤 컨스터블“
-함께 보면 좋은 그림-
컨스터블의 "건초 마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