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거미는 곤충이 아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by 팔랑심

원장: (멀리 바퀴 벌레 한 마리가 슬금슬금 기어가는 것을 보더니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한다.) …

원장: (일단 도망가기 전에 멀리서 안 보는 잡지를 던져서 깔려 죽게 한 후 큰 소리로 외친다.) 아무도 없어요?

직원: (대답이 없다.)....

원장: (더 큰 소리로) 한 사람 여기 잠깐 와 볼래요?

직원: (대답이 없다가 잠시 후 멀리서 작은 목소리로) 왜요? 원장님.

원장: (역시 큰 소리로) 누구 거기 있어요?

직원: (멀리서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저 미O인데요. 왜요 원장님?

원장: 3층 복도에 잡지 떨어져 있으니까 가서 치워요.

직원: (소리가 아까보다 가깝게 들린다.) 원장님이 치우시면 되잖아요.

원장: (몰래카메라 찍는 기분으로 속으로 웃으면서) 나는 빨리 올라가 봐야 해서 그래요.

직원: 알겠어요.

원장: (안쪽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을 보고 서둘러 자리를 피하면서) 그럼 난 올라가니 잘 치워요.

직원이 떨어진 잡지 쪽으로 가는 사이 잠시 침묵이 흐른다.

직원: 아악....... 원장님!!!

원장: (자리를 피해 도망가면서) 잘 치워요.


위 에피소드는 몇 년 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벌레를 무척 싫어했던 당시 직원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이런 나를 보고 직원들은 불만이 많다. 그러나 남자라고 해서 벌레를 안 무서워할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책을 던져 잡는 것까지는 내가 했으니 치우는 건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 공평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대체로 여자들이 벌레를 더 무서워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집에서 아내와 함께 지낼 때도 벌레는 아내가 잡는 편이다. 큰 딸은 벌레를 엄청 싫어해서 파리만 봐도 질겁을 한다. "다리가 2개 이상인 애들은 모두 이 집에서 나가"라는 말을 외치면서 산다. 그런 큰 딸이 특히 무서워하는 벌레는 그리마다. 흔히 돈벌레라고도 하는데 다리가 30여 개나 될 정도로 많다. 그러나 유독 거미는 좋아해서 내가 알기로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 타란툴라 거미다. 그래서 나는 싫어했지만 전에 살던 집 거실 벽에 헝겊으로 만들어진 타란툴라 거미가 걸려있었다.

사람들이 왜 벌레를 무서워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독충을 피하는 방어기제로 그런 심리가 있다고 하는데 사실 사람에게 위험한 벌레는 그리 많지 않다. 흔하게 보는 모기나 파리도 위험하다기보다는 그저 귀찮을 뿐이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거미도 독을 가진 것은 35,000 종의 거미 중 30여 종이라고 하니 0.1%에 불과하다. 독거미로 알려지고 큰 딸이 좋아하는 타란툴라 거미도 대부분 독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거미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가는 몸통에 긴 다리, 새까맣고 튀어나온 눈이 있는 데다 몸통에 털까지 있는 등 공포감을 불러오는 요소를 많이 갖추어서 일 것이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191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100세로 사망하기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 여성 작가다. 그녀의 대표작은 90살에 만들었다고 하는 "마망"이라는 거대한 청동 거미 조각이다. 그전에도 이미 거미 드로잉을 그리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커다란 거미 조각을 만들고 나서부터다. 마망은 우리나라 말로는 엄마에 해당한다.

“거미는 나의 어머니께 바치는 송시입니다. 엄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죠. 거미처럼, 내 엄마는 베틀에서 베를 짜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타피스트리 복원 사업을 했고 내 엄마는 공방의 책임자였어요. 거미처럼, 내 어머니는 매우 영리했습니다. 거미는 모기를 잡아먹는 친근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모기가 질병을 퍼뜨린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거미들은 우리를 돕고 보호하는 거지요, 내 엄마처럼 말이에요.”

그녀의 고백처럼 루이스 부르주아에게 거미는 자신의 엄마를 대신하는 상징물이었다.


모든 자식이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저출산은 의사로서의 역할이든 병원 수입이든 줄어들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다. 국가적으로도 문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젊은이들이 자녀를 낳지 않는 것에 따르는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아이를 낳아 보지 않고는 자신을 낳고 키운 부모님의 마음을 완전히 그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꼭 너 같은 아이를 낳아라. 그러면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런 말을 들어 본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루이스 부르주아가 언젠가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그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은 물론 어머니가 돌아가신 1932년이다. 그리고 그녀가 결혼한 날과 두 아들이 태어난 날도 중요한 날로 꼽았다. 그녀가 두 아들을 낳은 것은 1940년과 41년으로 그녀 나이 30세 정도일 때고 거미 그림과 조각은 그녀의 나이 80세 이후 인생 후반기에 그리거나 제작한 것이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도 그녀가 엄마가 되면서 비로소 구체적으로 형상화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거미나 벌레를 싫어한다. 물론 본다고 해서 몸에 두드러기가 나거나 호흡이 빨라지는 공포증 정도는 아니다. 나에게 있어 공포증이 있다면 벨소리 공포증이다. 휴대전화든 일반 전화든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면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난다. 전화기가 울리면 나는 응급 산모에 관한 것이거나 입원하고 있는 산모나 아기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전화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불안감이 밀려온다.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가족들은 나에게 전화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꼭 필요하면 문자를 하거나 직접 만나서 말로 전한다. 직원들에게도 아주 중요하고 급한 일이 아니면 전화하는 것은 피하도록 지시해 두었다. 이런 공포증이 언제 생겼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산부인과를 전공하면서 생긴 것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내게 벨소리 공포증은 일종의 직업병이다.

내가 전공 분야로 산부인과를 선택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는 많이 말리셨다. 그 이유는 아마 산부인과라는 직업이 가진 이런 고단함을 자식이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는 점이 안쓰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부모님의 걱정 혹은 조언에도 불구하고 결국 산부인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30년째 산모와 아기 두 생명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마음 졸이면서 산다. 나의 부모님도 이런 내가 걱정스러울 것이고 자식을 셋이나 둔 나도 아이들의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거미 엄마도 가슴에 품은 알이 떨어질까 봐 매일 마음 졸이면서 기어 다닐 것이다. 세상은 온갖 걱정 투성이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누구에게나 엄마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 실은 작품-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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