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의사: "자 이제 자궁문 다 열렸습니다. 힘을 주세요."
산모: "끙"
남편: "여보 힘내."
의사: "자 진통 지나갔으면 이제 심호흡하세요."
산모: "후."
남편: "그래 잘했어."
산모: "배가 또 슬슬 아파져요."
의사: "자 그럼 다시 숨을 깊이 들여 마셨다가 힘을 주세요."
산모: "끄응."
의사: "좀 더. 세게. 대변보듯이 밀어내세요."
산모: "끄응"
의사: "자 아기 머리 나왔어요. 힘 빼세요."
산모: "후"
남편: "수고했어. 자기야."
의사: "이제 회음부 봉합할 거니까 움직이지 말고 아기 잘 안고 계세요."
산모: " 많이 파열되었나요?"
의사: "아니 조금 파열되었습니다. 국소 마취하고 꿰맵니다. 예민한 부위라 마취해도 조금은 아플 겁니다."
산모:" 예쁘게 꿰매 주세요."
의사:" 예."
의사:" 자 봉합은 끝났고 이제 태맥이 멈추었으니 탯줄 자를 겁니다. 남편 분이 자를 거니까 남편 분은 일어서세요."
남편: "예. 어디를 자르면 되죠?"
의사: "제가 가위 드릴 거니까 제가 잡은 부분을 자르시면 됩니다."
남편: "예."
그때였다.
그렇게 출산이 끝나고 남편이 가위를 잡고 탯줄을 자르려던 순간 갑자기 남편이 가위를 손에서 놓더니 쿵 소리와 함께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의식을 잃고 기절을 한 것이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당황스러웠지만 탯줄 절단 등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아서 남편을 분만실 바닥에 잠시 눕혀 두었다. 탯줄 절단과 소독 등 후처치를 끝내고 남편을 보니 호흡은 정상인 채로 그대로 눈을 뜬 채 누워 있었다.
괜찮으시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잠시 갑자기 어지러워서 그랬다고 말을 한다. 조금 더 그대로 누워 계셨다가 일어 나시라고 말씀드렸다.
산모의 경우 기립성 저혈압이라고 해서 임신 중 혹은 출산 직후 갑자기 일어서다 쓰러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늘어난 혈관으로 혈액이 일시에 쏠리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그리 드물지 않다. 그러나 남편이 그렇게 쓰러지는 경우는 흔히 보지는 못했다. 그 후 산모와 아기 남편 모두 아무 문제없이 회복하고 퇴원하였다.
남편에게 과거에도 그렇게 갑자기 쓰러진 적이 있냐고 물으니 없다고 한다. 아마도 분만실에서 긴장한 상태였다가 아기 탯줄을 자르기 위해 일어서면서 일시적인 의식 상실이 발생한 모양이었다. 이런 경우는 그리 흔한 것도 아니고 별 문제는 아니지만 남편이 분만실에 들어와 진통 순간을 날 것 그대로 지켜보는 것에 대하여는 걱정을 하는 경우들이 간혹 있다.
과거에는 산모가 출산할 때 남편이 멀리 있거나 출산하더라도 분만실에 함께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남편은 최소한 병원 내에 있거나 우리 병원처럼 가족 분만실이라고 해서 아예 분만실에 산모 옆에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출산하는 순간 남편이 옆에 있는 것에 대하여 얼마 전 모 신문사와 이메일 인터뷰를 하였다.
일부 산모들은 남편이 분만실에 들어와 분만 과정을 보면 나중에 ‘자신을 여자로 안 볼까 걱정이다’ 이라거나 혹은 '차후 성관계에 부정적 영향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을 하기도 한다.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다음과 같다.
"특별히 감수성 예민하고 성적인 것에 대하여 보수적 경향이 있는 분들이라면 참여로 얻는 득 보다 실이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런 문제가 없다면 저는 출산 과정에 남편의 참여를 적극 권하는 편입니다. 여자로 안 볼까 걱정이라는 말은 저도 듣기는 했는데 출산 과정을 보았다고 여자로 안 보아지고 안 보았다고 여자로 보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남편이 해외에 나가 있는 경우라서 갑자기 시작된 진통에 오지 못한 경우나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중요한 업무 때문에 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들은 사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산모도 크게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기의 아빠가 없는 경우에는 아무래도 허전할 수밖에 없다. 한부모 가정으로 혼자서 출산하는 산모들이 그런 경우다. 지금은 하지 않고 있지만 십여 년간 한부모 가정 산모의 출산을 도운 적이 있다. 그런 경우 아직 결혼 전이라 남자 친구가 함께 오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산모 혼자서 출산을 감당한다. 남자 친구와 이미 헤어진 상태에서 출산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남자 친구는 아예 산모가 임신한 것도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의 출산에서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 다만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산모가 느끼는 진통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심해 보이는 경향이 있다. 엄살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아무도 옆에서 함께 나누어 주는 사람이 없이 혼자 진통을 겪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기를 산모가 직접 키울 형편이 못되어 입양을 보내기로 이미 결정한 산모들도 있다. 그런 산모의 출산을 도울 때면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다. 나도 남자지만 자신의 유전자도 반이 섞인 아기를 낳는데 남자로서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출산 때 남편이 없다고 해서 출산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노래 중에 "혼자서도 잘해요"라는 노래가 있던데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이 모든 경우에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어머니는 나를 어느 반지하방에서 혼자 낳았다. 여름날이었고, 사포처럼 반짝이는 햇빛이 빳빳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때 윗도리만 입은 채 방 안에서 버둥거리던 어머니는 잡을 손이 없어 가위를 쥐었다. 창밖으로는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다리가 보였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어머니는 가위로 방바닥을 내리찍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난 뒤, 어머니는 가위로 자기 숨을 끊는 대신 내 탯줄을 잘라주었다.
그때 아버지가 어디 계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항상 어딘가에 계셨지만 그곳이 여기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늦게 오거나 오지 않았다.--
위문장은 김애란 작가의 단편 소설 "달려라, 아비" 중 일부다. 작가가 태어났던 1980 년도는 내가 의과대학 1학년생이던 시절이다. 이 글이 그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면 1980 년도의 일일 테고 그때만 해도 병원 출산 못지않게 가정 출산도 꽤 있던 시절이었다. 물론 출산 때 남편이 옆에 함께 있는 경우도 드물었다. 출산 환경에서 있어 지금이 그때보다 나아진 것이 있다면 두 가지다. 하나는 남편의 참여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거의 모든 산모가 전문가인 산부인과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불경 중 하나인 숫타니파타에는 무소의 뿔 이야기가 나온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은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어리석음을 버리고, 속박을 끊고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런 식으로 매 문장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문장이 후렴구처럼 붙어 있다. 그러나 그렇게 이어지는 여러 문장 중에 단 한 문장에는 혼자서 가라는 문장이 없다.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얻었다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리니,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가라.”는 문장 단 하나에만 혼자서 가라는 후렴구가 없다.
화가들마다 그림의 소재로 좋아하는 대상이 다르다. 세잔처럼 사과를 좋아한 화가도 있고 터너처럼 구름을 주로 그린 화가도 있다. 스페인 출신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는 고향 발렌시아의 바닷가의 밝은 모습을 많이 그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내와 자신의 아이들을 포함해 아이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그는 두 살 때 부모가 모두 콜레라로 사망해 이모집에서 자란 탓에 포근한 가정에 대한 그리움이 컸을 것이다. 소로야는 세 아이를 두었다. 나처럼 첫째는 딸이고 둘째는 아들 그리고 막내가 딸이다. 여기 소개한 그림은 그의 막내딸이 태어났을 때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의 아들이 어떤 연극배우를 짝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그녀의 초상을 그리게 되었을 때 두 점을 그려 한 점은 아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들에서도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런 사례만 봐도 따스한 마음을 가진 아버지가 틀림없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중 하나다. 그리고 나는 두 아이의 출산 때 달려라 아비의 아비였다.
-여기 실은 그림-
호아킨 소로야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