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나는 여자가 아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by 팔랑심

진통할 때 통증이 심해 무통 마취 혹은 진통제를 원하는 분들이 있다. 그럴 때 실제와는 좀 다르긴 하지만 산모분이 이해하기 쉽게 아주 단순하게 비유해서 촉진제는 자동차의 엑셀러레이터, 무통 마취는 브레이크라고 말씀드린다. 액셀러레이터인 촉진제는 통증은 심해지지만 대신 빨리 출산을 마무리할 수 있고 브레이크인 무통 마취는 통증은 덜해지지만 수축이 약해져 출산 과정이 더 느려진다고 말해 준다. 그렇게 말하면 대부분 산모는 무통 마취를 선택하고 길게 아프기보다 좀 아프더라도 빨리 진통 과정을 끝내고 출산하는 것을 선택한다. 물론 우리 병원은 자연스러운 출산을 원해서 오시는 분이 많아서 그럴 것이고 다른 병원은 무통 마취를 원하는 분들이 많다고 알고 있다. 여하튼 길고 오래 진통하든 짧고 강하게 진통하든 출산 진통의 총량에는 변화가 없다. 나는 이것을 “진통 총량 동일의 법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오래전 산부인과 전공의 시절 어느 병원에 당직의사로 아르바이트를 나갔을 때 일이다.

10시간가량 진통하던 초산모가 출산이 임박하여 분만대에 누웠다. 아기 머리가 어피어링 (appearing, 질구 끝까지 아기 머리가 내려와서 힘을 주면 머리가 조금씩 보이는 상태) 단계를 지나서 거의 크라우닝 (crowning, 힘을 주면 아기 머리가 질 입구에서 빠져나오기 직전으로 질이 왕관 모양으로 아기 머리를 두르고 있는 상태) 단계가 되어 회음부 절개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옆에서 출산을 돕던 간호사가 무통 분만을 할 것인지를 산모께 물었다. 무통 분만이란 진통을 줄여주는 약을 쓰거나 처치를 하는 분만을 의미하는데 요즘은 산모의 척추에 바늘을 꽂아 마취제를 투여하는 경막외 마취법이 주로 쓰인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아직 경막외 마취법의 무통 분만은 쓰이지 않던 때였다. 대신 회음부를 절개할 때 수면 마취제를 투여하여 잠시 수면 상태에 들어 가게 하는 것을 그때는 무통 마취라고 부르는 병원들이 있었다. 사실 크라우닝 상태에서는 곧 아기가 나오니까 자궁 수축으로 인한 심한 통증은 곧 없어질 상황이다. 또한 회음부 절개 시에는 국소 마취를 하기 때문에 진통을 할 때처럼 많이 아프지 않다. 다만 산모 입장에서는 현재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모르니까 그렇게 질문을 하면 무통 마취를 하겠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래는 그때의 상황을 대화체로 적어본 것이다.


간호사: "무통 분만하시겠어요?"

산모: (진통으로 신음을 하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얼마...인데요?"

간호사: "5만 원이에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산모: (역시 신음 소리 내며 통증으로 중간중간 말이 끊어지면) "아악.... 바깥에 있는 남편한테… 아악... 물어봐 주세요."

간호사: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분만실 밖으로 나가면서) "과장님. 잠깐 남편한테 물어보고 올게요."

나: (잠시 머뭇거리다가) “예. 물어보고 오세요.”

간호사: (남편에게 묻는 소리가 멀리서 작은 소리로 들린다.) "무통 분만을 하실지 남편분께 물어보라고 하는데 무통 분만하실 거예요?"

남편: "얼마인데요?"

간호사: "5만 원이에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남편: (잠시 생각하는지 대답이 없다가 한참 후에 말소리 들린다.) "다른 분들은 보통 어떻게 하나요?"

간호사: (급한 듯 짜증을 내며) "대부분 많이 하세요. 빨리 말씀해 주세요."

남편: "그럼 아내한테 물어봐서 아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주세요."

간호사: "예 알았어요."

간호사: (다시 들어와서 산모께 묻는다.) "남편분은 산모 분 원하시는 대로 하라고 하세요. 무통 하시겠어요?"

산모: (신음 소리의 강도는 점점 세진다. 잠시 숨을 고르며) "효과는… 아아아… 좋나요? 아악"

간호사: "통증은 모르고 그냥 잠깐 자는 거예요."

산모: "아악. 그럼 해주세요."

간호사: “과장님. 지금 약 투여할까요?”

나: “예. 정맥 주사로 10CC 천천히 주세요.”


마취제 투여 후 5분도 안되어서 아기는 출산되었고 산모는 수면 상태에 들어갔다. 그리고 회음부를 봉합하는 1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산모는 수면 상태에 있다가 얼마쯤 시간이 지나서 깨어났다. 당시 옆에서 그 상황을 보면서 내가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전공의 수련 중에 아르바이트로 당직을 서기 위해 간 것이라 분만을 돕는 외의 나머지는 권한이 없었다. 당시에도 그랬고 기억을 떠올려보는 지금도 답답한 느낌이 든다. 그 아픈 출산의 순간에 조차 비용을 걱정하고 남편에게 물어야 하는 상황도 안타까웠다.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는 여성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져서 그렇게 묻는 산모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지금은 무통 분만을 하는 병원에서는 무통 마취를 할지 말지를 출산 순간이 아니라 미리 신청을 해서 파악해 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아마 그 당시 병원은 미리 물어보면 안 하는 분들이 많아서 아픈 순간에 묻는 것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또한 진통을 하면서 이미 고통은 고통대로 다 겪었고 이젠 회음부 절개와 봉합만 남게 되는 상황인데 그때의 통증이야 산통에 비하면 아주 작아서 진통이랄 것도 없는데 무슨 무통 시술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래전 만났던 그 산모처럼 돈에 대한 고민으로 그 아픈 순간에도 밖에 있는 남편에게 물어야 하는 상황은 그리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무통 마취를 해서 아내가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해 주세요라고 남편이 말하면서 훈훈하게 마무리하는 모습도 아주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불가피한 경우 외에는 그것이 무통 마취든 촉진제든 그 외의 수술적 의료 개입이든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연적인 과정에 맡기는 출산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의사로서는 얼굴이 후끈거리고 진통하는 산모에 대하여는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때 산모가 설사 무통 마취를 하지 않아서 진통이나 회음부 봉합 시에 통증을 심하게 느꼈다고 해도 그 통증이 산모에게 트라우마로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치 있는 것을 얻는 과정에서 잠시 동반되는 고통이 트라우마든 다른 것이든 나쁜 흔적을 남기는 것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나는 출산을 해 본 적이 없는 남자 의사라서 진통과 출산에 따르는 통증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다. 진통 산모를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어렴풋이나마 대충 어떨 것이다 하고 짐작할 뿐이다. 아마도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보다 몇 배 또는 몇 십배 더 아플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또한 출산 진통 못지않게 회음부 봉합으로 인한 통증도 사실 적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첫째를 출산하고 봉합한 회음부를 진찰대에서 소독하고 내려오면서 엉거주춤 걷는 산모를 보면서 내가 한 말은 그랬다.

“그 심한 진통도 잘 이겨내시고 아기도 순산했는데 회음부 통증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때 산모가 한 대답은 요즘 말로 하면 현타가 오는 말이었다. (참고로 현타는 젊은이들이 만든 조어로 “현실 자각 타임”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헛된 꿈이나 망상에 빠져있다가 자신이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의미한다.)

“원장님은 여자가 아니잖아요.”

그렇다. 나는 여자가 아니었다. 여자가 아닐뿐더러 출산을 해 본 적도 없고 해 볼 일도 없는 남자다. 그 산모의 말을 듣고 나서 막연히 좀 아프겠지 생각했던 회음부 통증이 출산 진통 못지않은 통증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더불어 무통 마취도 개인적으로는 단점이 많아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만 있다면 무통 아니라 더 한 것이라도 하고 싶어 하는 산모들이 많을 것이라는 점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으니 그런 것으로 얻는 득과 손해는 잘 판단해서 해야 하겠지만.

그때 심한 회음부 통증 때문에 약간 웃으면서 말했던 그 산모는 그 후 아이 둘을 더 낳았다. 물론 무통을 하지 않는 우리 병원에서 말이다. 그 산모가 둘째 그리고 셋째를 낳았을 때는 나는 같은 실수를 하지는 않았다.

“둘째는 첫째 출산할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라는 말을 혹시 내가 했다면 그 산모는 그때도 “원장님은 여자가 아니잖아요.”라고 대답했을 것 같다.


장 뒤뷔페는 프랑스 출신으로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피카소를 잇는 현대 미술의 대가로 여겨지는 화가다. 와인 사업을 하다 41세의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림에 대한 열정이 넘쳐나서 40년 동안 5000 여점이나 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그림은 그림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허물어 트린다. 대신 거칠 것이 없고 원시적인 모습으로 대상을 표현했다. 그래서 그를 아르 브뤼의 화가라고 부른다. 브뤼는 프랑스어로 날 것이라는 의미이며 아르 브뤼는 우리말로는 원생 미술이라고 한다.

그의 그림에서 사람은 얼굴이나 눈 코 입은 비례도 맞지 않고 세밀한 묘사와도 거리가 멀다. 아이들과 같은 그림 스타일은 장 미셀 바스키아와도 닮았지만 바스키아의 그림이 무서운 느낌을 주는 것에 반하여 뒤뷔페의 그림에 공포와 혐오는 없다. 여기 올린 그림 "출산"도 전혀 무섭거나 끔찍해 보이지 않는다. 온갖 장식과 기교로 그림을 실제와 다르게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기존의 화가들을 그가 따르지 않았듯이 나도 수많은 의료적 개입으로부터 산모를 최대한 보호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날 것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위하여…

그것이 비록 여자는 아니지만 아니 여자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그녀들을 돕는 방법이다. 통증과 두려움으로 고통받는 산모들에게 필요한 것은 약과 시술이 아니라 격려와 용기다.



-여기 실은 그림-

장 뒤뷔페의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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