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의사: “어떤 일로 오신 거죠?”
산모: “젖가슴이 짓무르고 살이 다 헤져서 소독하러 왔어요.”
의사: “출산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산모:” 한 달쯤이에요.”
의사: “일단 진찰해 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독을 끝내고 나서
의사: “우측 유방의 1 / 3 정도 조직이 괴사 되어 이미 소독을 한다고 해도 피부가 정상적으로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산모: “알고 있어요. 출산하고 치료하던 병원에서도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의사: “그런데 어쩌다 이런 상태가 된 겁니까?”
산모: ”출산하고 한 1주일쯤부터인가 젖몸살로 붓고 아파서 출산한 병원에 갔더니 별일 아니라고 하면서 양배추를 덮어 주더라고요.”
의사: “양배추요?”
산모: “네. 양배추가 젖몸살을 줄여주고 항염 작용도 있어서 그렇게 하면 된다고 했어요.”
의사: “물론 양배추나 감주나 인삼 같은 음료가 젖을 좀 줄여주는 효과는 있어 민간에서 간혹 쓰기도 하지만 이건 정도가 심한데요?”
산모: “그래서 낮지 않고 점점 심해지고 피부도 짓물러지고 해서 젖 말리고 항생제도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는데 그래도 양배추만 고집하시더라고요.”
의사: “그때 좀 일찍 약을 쓰고 조치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산모: “제가 직업이 간호사라 저도 이상하고 걱정이 되어서 계속 그렇게 물었는데 막무가내로 그렇게 말씀하시길래 저는 믿고 그렇게 하다가 그만 이 지경이 되었어요.”
의사: “이젠 약만으로 하기는 어려운 상태 같고 대학병원 가서 상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산모: “저도 그렇게 하려고 대학병원에서 수술받기로 했는데 얼마간 소독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해서 이리 왔어요. 소독을 좀 하려고요.”
의사: “알겠습니다. 항생제 적어드릴 테니까 드시고 며칠 소독하고 빨리 가서 수술받으시기 바랍니다.”
위 글은 몇 년 전에 내가 진찰했던 어느 산모와 나눈 대화록이다. 유방 조직이 너무 많이 상해서 약만으로는 회복시킬 수 없는 안타까운 산모였다. 그때 그 산모는 그렇게 며칠 소독하고 대학병원으로 가면서 더 이상 보지는 못하였다. 의사는 환자나 산모에 대하여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높은 수준의 신뢰를 얻고 있고 의료 정보나 경험도 훨씬 많이 가진 사람이다. 젖몸살에 양배추를 처방한 의사가 그렇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양배추를 처방하여 큰돈을 벌려고 한 것도 아닐 것이다. 그 담당 의사는 주변에서는 따스한 마음씨로 산모들께 평판이 좋은 의사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내가 알기로도 그런 분이었다. 다만 담당 의사가 민간 처방에 지나치게 몰입되지 말고 교과서에 따른 올바른 의학적 권고를 산모에게 해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많이 남았다. 그래서 나는 의사란 차가운 머리와 따스한 가슴이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차가운 머리만 있는 사람도 문제지만 그 의사처럼 따스한 가슴만 있어도 문제다. 그 산모는 아마도 유방 피부 이식을 하였겠지만 상당히 넓은 부분에 흉터가 남는 것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유방은 드러내 놓고 다니는 부분은 아니라서 얼굴의 흉처럼 매번 신경이 쓰이진 않겠지만 유방은 여성성의 상징 중 하나라서 그저 단순한 피부나 지방 덩어리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름다운 유방을 가지기 위해 많은 여성들이 유방 성형수술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1. 탄력 있고 팽팽할 것.
2. 너무 커서도 안되며 모양은 반구형일 것.
3. 유방의 융기된 부위의 위치를 본다면 3번 갈비뼈와 6번 갈비뼈 사이에 위치할 것.
4. 유두의 위치는 5번 갈비뼈보다 약간 아래에 위치할 것.
5. 유방 하부에는 주름이 없고 유두의 간격이 앞에서 보아 20㎝ 이상일 것.
6. 좌우 유두는 마치 사이가 나쁜 자매들처럼 반대편을 바라보고
7. 크기는 자신의 두 손으로 완전히 유방을 감출 수 있는 크기일 것.
위 목록은 시트라츠라는 사람이 내세운 아름다운 유방의 조건이다. 과연 이런 기준을 만족할 수 있는 여성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이런 조건에 완벽히 일치하는 것은 밀로의 비너스라고 불리는 조각상의 유방 정도가 될 것이다. 비록 조각상이지만 현대의 많은 여성들이 꿈꾸는 유방의 모습이다. 이런 유방의 모습을 가장 많이 그린 화가 중 한 명은 오귀스트 르누아르다.
화가 르누아르는 "만일 여인의 유방과 엉덩이가 없었더라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 중에는 여성의 유방을 강조하여 드러낸 그림이 많다. 목욕하는 여인들, 앉아 목욕하는 여인, 햇빛 속의 누드 등등. 만일 여성의 유방을 그리면 안 된다는 법이 제정되었다면 르누아르는 작품 활동을 못했거나 했더라도 지금과 같은 명성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유방이나 또는 엉덩이를 드러낸 여성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은 아름답고 은근한 섹시미를 주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그의 그림 중에 거의 유일하게 섹시미와는 동떨어진 그림이 하나 있다. 바로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라는 그림으로 그 그림에서는 전혀 그런 섹시함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 그림은 그의 아내가 얼마 전 출산한 자신의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아내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그리면서 섹시하게 그려서 다른 사람들의 끈적끈적한 눈길이 가기를 의도하고 그리는 화가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 그림을 그릴 때의 르누아르에게도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산부인과 의사인 나에게 있어서 아름다운 유방은 그렇게 모유 수유를 하는 여성의 건강한 유방이다. 밀로의 비너스의 유방이 아니다. 임신한 여성의 건강한 유방, 수유를 위해 아기에게 물린 유방이 나는 제일 아름답게 보인다.
사실 아름다움이란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시대나 문화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 지금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유방의 모습이 과거에도 아름답게 보였던 것은 아니다. 중세 시대의 그림들에서 미인상은 지금의 기준으로는 비만 체중에 속하는 여성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심지어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고 불리는 조각상은 지금의 기준에서는 도저히 비너스라고 이름을 붙이기조차 어려운 조각상이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조각상은 오스트리아의 빌렌도르프 근교의 구석기시대 지층에서 발견된 약 11cm 크기의 조각상이다. 지금으로부터 2만 2000년에서 2만 4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조각상으로 유방은 지나치게 크며 허리는 굵다. 배와 엉덩이는 임신이라도 한 것인지 불룩 나와 있다. 이 조각상이 당시에 아름다운 여성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왜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구석기인들이 동굴 벽에 힘들게 그려서 남긴 그림이나 흙을 빚거나 돌을 깎아 만든 조각은 모두 어떤 염원을 담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 조각상도 그것이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든 다산을 바라는 소망을 담은 것이든 그 시대 사람들이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는 것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내 여동생의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은 가슴이 너무 작아서 콤플렉스가 심했다. 아예 없다시피 해서 체육 시간에 달리기를 하고 나면 브래지어가 목에 걸려 있어 창피해했다고 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여동생의 친구 브래지어 이야기까지 듣게 되었는지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내가 의과 대학 다닐 때 들었던 이야기이니 특별히 유방에 대하여 관심이 있던 시절도 아니었다. 그때 동생의 친구는 결혼은 했는지, 아이를 낳았는지, 낳았다면 모유 수유는 잘했는지 궁금하다. 출산하고 나면 커졌던 유방은 오히려 더 작아지거나 물렁물렁해져서 탄력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점으로 오히려 더 고민하게 된 건 아닌지 소식을 듣지 못해서 알진 못한다. 물론 내가 걱정할 바는 아니다. 다만 요즘처럼 비만이 문제 되는 시대가 오래 지속이 된다면 그런 A컵인 여성의 유방이 아름다운 유방으로 대우받는 날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임신부를 진료하고 출산을 돕는 것이 주인 산과 의사지만 동시에 10년 이상 유방 진료도 병행했다. 하루 최소 한분 이상의 유방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10년 이상을 보냈으니 영상 의학과 의사나 유방 외과 의사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도 꽤 많은 여성의 유방을 본 셈이다. 초음파 검사실은 어두컴컴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유방의 대략적인 크기와 모양은 알 수 있다. 그래서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여성들의 유방은 흔히 방송 매체에서 본 연예인들처럼 큰 유방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짐작하기로는 A컵 정도인 분이 대부분이고 아니면 B컵 크기로 보였다. C컵이나 D컵 크기인 분은 많이 보지 못했다. 물론 내가 만난 얼마 안 되는 분들에 대한 느낌이라 실제와는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나 2015년도 국가기술 표준원 통계를 보면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통계에 따르면 AA컵이 35%, A컵이 32%, B컵이 21%, C컵이 8%, D컵이 3% 였다고 한다. 참고로 AA컵은 컵 높이가 7.5cm, A컵은 10cm, B컵은 12.5cm, C컵은 15.0cm, D컵은 17.5cm이다. 한마디로 A컵 이하가 10명 중 6명이라는 이야기다.
어떤 유방이 아름다운 유방이라고 정의되어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나는 이런 유방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말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크기로만 따졌을 때 임신 중이 아닌 시기의 평균적인 유방은 흔히 여성 자신들이 기대하는 것보다는 작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 여성의 유방은 소녀기에는 작다가 사춘기를 거치고 성장하면서 점점 커진다. 임신 중이나 수유 중에도 유방이 자연스럽게 커진다. 모유 수유라는 생물학적 목적 때문이다. 보형물이든 약이든 여러 방법을 통해서 커졌으면 하고 많은 여성이 그리고 남성이 그토록 바라면서 애쓰는 그 유방이 저절로 커진다는 말이다. 물론 수유가 끝나면 원래의 크기로 다시 돌아간다. 생물학적 목적이 없어 저절로 커지지 않는 유방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강제로 키우는 것, 그리고 크기에 아름다움의 기준을 두는 것에 대하여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그 절대적 크기에 가치를 두는 삶은 그리 평온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유방이든 키든 혹은 돈이든. 더불어 어느 한 가지에 너무 몰입하여 맹종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삶에는 관심을 두면 좋을 것들이 그것 말고도 아주 많다.
-여기 실은 그림-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