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그녀는 어머니가 아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by 팔랑심

어느 날 경의선 책거리 길을 걷고 있는데 아이를 안고 가던 어떤 분이 내 앞을 막으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진오비 산부인과 원장님 아니세요”?

“예. 맞습니다만 누구신지….”

“저. OO맘이에요.”

“OO맘이요?”

“아참 그건 홈페이지 아이디라 잘 모르실 테고 저 진오비에서 출산한 김OO 산모예요.”

“네. 이 동네 사시나 보군요?”

“이 동네 살다가 지금은 경기도로 이사 갔어요. 친정에 왔다가 옛날 생각나서 산책 나왔는데 오늘 운 좋게도 여기서 원장님을 뵙네요.”

“그렇군요. 아이는 아들이죠? 씩씩해 보이네요.”

“아니에요. 원장님. 딸이에요. 낳을 때 3.8kg나 돼서 워낙 크게 낳아서 그렇게 보이나 봐요. 그래서 일부러 여기 머리띠도 했는데.”

“아 아… 그러네요. 제가 못 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또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언젠가 아내가 나 몰래 점을 보러 갔더니 이 사람은 구설수에 휘말리기 쉬우니 말을 조심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는데 결국 오늘 또 저지르고 말았다. 주워 담을 요량으로 던진 말은 결국 내 밑천을 드러내는 최악수가 되었다.

“아직 못 걷나 보군요? 안고 다니시려면 힘드시겠어요. 아직 돌 안되었죠?”

보통 빠른 아이들은 돌 전에 걷기도 하지만 대부분 돌이 지나야 걷는다는 내 얄팍한 지식을 활용했다.

“어머 원장님. 전혀 기억 못 하시네요. ㅎㅎ. 저 재작년에 낳았잖아요. 벌써 20개월이에요. 걷다가 다리가 아프다고 안아 달라고 해서요.”

“아 죄송합니다. 20개월이군요”

“많이 컸죠?”

그때 아이가 깨서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쿠 빨리 가셔야 하는데… 저도 그럼 볼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안녕히 가세요. 건강하세요. 원장님.”


그 자리에 더 있다가는 얼마나 내 무관심이 더 들통 날지 몰라서 뭐가 감사하다는 것인지 생뚱맞은 말만 남기고 허겁지겁 자리를 피했다.

이 동네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진료하던 환자나 산모를 만나기도 한다. 어느 여름에 한 번은 길거리에서 막대 하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걷다가 아직 출산 전이라 산전 진료 중이던 산모를 만나기도 했다. 먹던 하드를 버릴 수도 없고 좀 민망했던 기억도 있다. 뭐 하드 먹다 들켰다고 민망할 것 까지야 있을까 싶지만 진료실에서의 내 모습을 본 분들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일 것이다. 온갖 폼은 다 잡은 무섭고 까칠한 원장님이 반바지 입고 길을 걸으면서 하드를 쭉쭉 빨면서 가는 모습이라니…

그래서 그전까지는 길을 걸으면서 하드도 먹고 공원 벤치에 앉아 크림빵도 먹고 그랬었는데 그 후에는 길을 걸으면서 하드를 먹지 않는 것은 물론 과자나 빵도 먹지 않는다. 혹시 나를 아는 사람이 보면 좀 그럴 것 같아서다. 일개 조그만 병원 운영하는 원장도 이 정도인데 연예인들은 정말 생활이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하튼 그때 만난 산모는 누군지 사실 잘 몰랐다. 기억력이 나쁜 탓도 있지만 내가 사람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않기 때문에 길에서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한다. 이런 점 때문에 거리에서 내게 인사하고 갔는데도 받아 주지도 않아 서운했다고 나중에 고백한 산모의 말도 들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거만하다는 인상을 줄까 봐 걱정이다.


그러나 변명을 하자면 출산하기 전 부른 배로 펑퍼짐한 임부복을 입고 있던 분과 출산하고 나서 원래의 몸으로 돌아온 모습을 한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이런 무성의함 혹은 무뚝뚝 인상을 좀 줄여볼 생각도 있고 출산만 하고 끝내기에는 아쉬운 마음도 있어서 순산 모임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임신 중 순산 체조 교실, 토요 출산 교실을 병원 내에서 운영하였는데 그때 함께 참여한 분들이 나중에도 만남을 이어 갈 수 있도록 주선해 드렸다. 처음의 한두 번 모임을 내가 주최하면 산모분들께서 자발적으로 모임을 이어 나가는 식이었다. 2013년도에 출산한 분들의 모임은 순 3, 2014년도에 출산하신 분들은 순 4라고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2년째 체조 교실을 열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순산 모임을 그 후에는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형성된 순 3, 4 , 5, 6 ,7 분들이 각각 기수별로 모이시어 함께 병원으로도 놀러 오시기도 하고 주변 식당에서 모이면 나를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출산하고 나서의 산모와 내가 출산을 도운 아이들을 만나는 기회가 종종 생긴다. 꼭 순산 모임이 아니더라도 돌이 되었다고 돌떡 선물을 주러 오시는 분들도 있다. 그래서 출산 전 모습과 출산 후 모습이 극명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는 일은 내게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들의 달라진 모습은 사실 몸매보다 행동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출산 전 산전 진찰 시 산모들에게 나는 말도 편하게 건네기 어려울 정도로 정도 없이 무뚝뚝한 의사의 모습으로 비친다고 한다. 그러나 출산하고 아이를 안고 오는 그분들의 모습은 더 이상 무뚝뚝 대마왕 앞에선 연약한 산모가 아니다. 나를 대하는 태도도 훨씬 적극적이고 당당하다. 그렇다고 출산한 산모들을 대하는 내가 변한 것은 아니다. 나는 변한 것이 없지만 그분들이 변했다. 그것은 힘든 출산을 무사히 마쳤다는 것에서 오는 자신감일 수도 있고 내게 부탁할 것도 도움받을 것도 없는 데서 오는 당당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힘든 임신과 출산 과정을 겪고 나서 얻은 자신감은 어떤 군인이 가진 훈장보다 더 빛이 났다. 그러나 내 생각에 아마도 그녀들을 그렇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그녀와 함께 있는 아이의 존재다. 아이와 함께 있는 엄마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 그래서 여자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뜨거운 불과 차가운 물의 담금질이 아니라 그녀가 손잡고 있는 바로 그 아이다.


눈동자가 없고 갸름한 얼굴에 긴 목을 한 여인의 모습을 많이 그렸던 화가 모딜리아니는 아내 잔느 에뷔테른을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잔느는 모딜리아니와는 모델로 만났지만 연인이었다가 아내가 된 여인이다. 그는 총 25점이나 될 정도로 많은 그림을 그녀를 모델로 그렸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모딜리아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35세 되던 해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죽었다. 그리고 잔느는 모딜리아니가 죽은 다음 날 5층 건물의 창문으로 뛰어내려 투신자살했다. 둘 사이에는 두 살 난 딸이 하나 있었고 잔느가 둘째를 임신한 지 8개월, 그녀의 나이 22살 때였다. 천국에서도 모델이 되어 달라는 남편과의 약속은 지켰지만 자신을 위해서나 두 살 난 딸, 그리고 태중에 있는 아기를 위해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어머니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강해져야 하고 실제로도 대부분 그렇다. 잔느와 같은 경우가 있지만 그런 일은 흔한 일은 아니다. 질병이든 우울증이든 혹은 사랑의 상실이든 인간을 굴복시키는 것은 많다. 그러나 어머니를 굴복시키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새 생명인 아기가 태어나면서 강한 여성이자 어머니도 함께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잔느는 어머니였다기보다 그저 한 남자의 아내일 뿐이다.


한 아이 혹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혹은 안고 거리를 걷는 어머니의 모습보다 더 당당한 모습을 나는 보지 못했다. 그녀들은 명품 백에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걸친 어떤 여성들보다 의연해 보인다. 간혹 육아에 지치고 생활에 찌든 모습이 고단하고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주에 묻은 흙일뿐이다. 무른 진흙으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것, 침범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는 잠시 빛이 나지 않더라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아니 부서지지 않아야 한다.



-여기 실은 그림-

아마데오 모딜리아니의 "잔느 에뷔테른의 초상"



16_Modigliani_Portrait_of_Jeanne_Hebutern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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