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아내: "심상. 내가 아는 분인데 태아 성별 한번 알려주면 안 돼?"
심상: "무슨 소리야. 성감별 금지되어 있는 것 몰라?"
아내: "아는데 내가 잘 아는 분이라 부탁을 거절하기가 좀 그래."
심상: "안돼."
아내: "한 번만. 심상.
심상: "곤란하게 왜 이래."
아내: "내가 당신이 의사라고 해서 무슨 부탁 한 적 있어? 엄마 아플 때도 당신 보고 병원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적 없잖아. 그러니까 이번 한 번만 내 부탁 좀 들어줘."
심상: "그런데 왜 알려 달라는 거야?"
아내: "딸만 하나 있는데 시어머니가 그렇게 아들아들 하는 모양이야."
심상: "아니 아들이고 딸이고 다 팔자인데 그걸 미리 알아서 뭐하게?"
아내: " 그분이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어. 그런데 수술은 두 번만 할 수 있다고 알고 있어. 그래서 이번에 꼭 아들 낳아야 한다는 거야."
심상: "딸이면 안 낳겠다는 이야기인 거야? 그럼 더더욱 감별하면 안 되지. 병아리 감별하는 것도 아니고 뭐야."
아내: "아니 그 엄마는 딸이라도 낳을 거래. 그런데 딸인지 아들인지 알고라도 있으면 시어머니 구박을 좀 견딜 수가 있을 것 같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
심상: "시어머니한테 가서 그렇게 말하라고 해. 성감별은 출산 전에 절대 금지되어 있어서 의사가 함부로 알려줄 수 없다고. 그리고 제왕절개 2번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아내: "이미 이야기했지. 그런데 그 엄마가 좀 심각해. 이대로는 출산도 하기 전에 지레 말라죽을 것 같다는 거야."
심상: "지금 몇 개월인데?"
아내: "한 6개월인가 되었을 거야."
심상: “6개월? 그럼 다 컸네. 임신 초기도 아니고 그 시기에 수술하면 산모도 위험해. 그냥 편히 생각하고 잊어버리고 낳으시라고 해."
아내: "아니 낳지. 낳고 말고. 그 엄마 절대 수술할 분 아니야. 본인도 딸이라고 수술하고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어."
심상: "그런데 아들이면 다행이지만 딸이면 어떻게 할 거야? 그 스트레스는 견디실 수 있겠대?"
30여 년 전 군 복무 대신으로 3년간 지방에 근무할 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내의 지인이 내가 산부인과 의사인 것을 알고 성감별을 부탁한 모양이었다. 여기서 심상이란 아내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다. 내가 수련하던 대학 병원에서는 전공의들끼리 서로서로 그렇게 이름 두 글자로만 부르는 것이 관행이기도 했는데 아내도 나를 그렇게 불렀다. 오빠나 남편이라는 간질간질한 호칭도 좋은데 나는 아내에게서 그런 호칭으로는 한 번도 불려 본 적이 없다. 형이라거나 심상이라는 호칭이 아내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여하튼 오래되어 대사 하나하나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런 뉘앙스의 대화를 나누었던 건 사실이다. 성감별은 지금은 임신 32주 이후에는 해 주어도 되는 것으로 법이 바뀌었지만 그 당시는 임신 전 기간 동안 감별이 금지되어 있었다. 성감별을 금지한 이유는 낙태를 막기가 어렵다 보니까 아예 성감별을 금지해서 낙태를 막고자 한 것이었다. 지금이야 원하는 성별이 아니라고 해서 낙태를 하는 분들이 많지는 않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남아 선호 사상이 심해서 남녀 성비가 차이가 많을 때였다. 초등학교에서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한 팀이 되어 짝이 되어 자리를 앉았는데 그때 여자 짝꿍 없이 남자아이들끼리만 앉아야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결국 나는 아내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며칠 후 그분을 진찰했고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런 내 결정으로 한 아기가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그저 딸이라는 이유로.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교훈 하나를 나는 그때 배웠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마음이나 몸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착각이다. 몸은 몰라도 자신의 마음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변할 수 있고 연약하기 그지없으며 사람의 마음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원래 생물학적으로 정상적인 남녀 성비는 105:100 정도다. 남자가 약간 더 많은데 그 이유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나라 남녀 출생 성비는 1990년 117: 100, 2000년 110:100, 2010년 107:100, 2020년 106:100이다. 그러나 이건 전체 성비이고 셋째 아이인 경우는 심각한 적이 많았다. 1993년 셋째 아이의 남녀 성비는 심지어 203:100이었다. 남자아이 2명에 여자 아이 1명이라는 의미다. 다행히 2013년부터는 전체 성비나 셋째 아이의 성비나 자연적인 남녀 성비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다. 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최근의 통계가 중국이 115:100, 인도가 112:100, 베트남이 111:100으로 남아가 여아보다 상당히 많다. 중국이나 인도는 아직도 남아 선호 사상으로 여아의 낙태가 횡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과거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렇게 특정 성별의 태아를 낙태하거나 태어난 아기를 살해하는 것을 젠더 사이드 (gendercide)라고 한다. 주로 여성에 대한 인권이 낙후된 지역에서 여아에 대한 살해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젠더 사이드는 인종간 살인을 뜻하는 제노사이드 (genocide)에서 파생된 말이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60년대부터 이십여 년간 정부가 인구 억제 정책을 펼치던 시절에 유행하던 구호다.
"한 부모에 한 아이 이웃 간에 오누이”
좀 더 강력한 인구 억제 정책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1980년대 초부터 정부가 내세웠던 구호다. 1983년은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이 2.1명 이 된 시기다. 이 수준은 적정 인구를 유지하는 최저 선임에도 계속 인구 억제 정책을 펴다 지금은 세계 최저 합계출산율을 가진 저출산 국가가 되었다.
"자녀에게 가장 큰 선물은 동생입니다."
2000년대 들어와 정부가 내세운 구호다. 전에는 명령조의 구호이던 것이 존댓말을 쓰는 것부터 구호가 상당히 공손해졌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인구란 정부가 조절한다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인구 정책이란 수자원 정책이나 에너지 정책과는 다르다. 사람은 물이나 전기 같은 무생물이 아니며 여자도 아이를 생산하는 도구가 아니다. 한 국가의 인구란 줄이기도 쉽지 않지만 늘이는 것은 더 어렵다. 출산이란 개개인의 여러 사정에 따라 좌우되는 것으로 정부가 나서서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항간에는 딸 둘을 낳으면 100점, 딸 하나 아들 하나면 80점, 아들만 둘이면 0점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남아 선호 사상이 사라지는 것은 다행이지만 사실 그 말도 옳은 말은 아니다. 하나가 되었든 둘이 되었든 부부의 가족계획에 따라 낳아서 잘 기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딸이 되었든 아들이 되었든 건강하게 잘 키우면 되는 것이지 다 나은 성별이란 없다.
위로 두 명의 여자 아이가 있는 분이 셋째를 임신해서 오게 되면 왠지 긴장이 된다. 혹시 아들을 낳으려고 해서 셋째를 임신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서다. 물론 대부분은 아이를 여럿 키우는 것을 좋아해서 임신을 하게 된 분들이지만 간혹 아들을 낳으려고 해서 셋째까지 임신한 분들이 없지는 않다. 그럴 경우 임신 초기인 3개월부터 태아 성별을 알기를 원해서 묻고는 한다. 그러나 나는 법으로 허용된 32주 전에는 성별을 알려주지 않는다. 나는 얼굴에 미소가 없는 무표정한 인상 때문에 무뚝뚝한 의사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 단점에 더하여 임신 32주 전에 태아 성별을 알려 주지 않는다는 점도 고지식하고 무뚝뚝한 의사로 보이게 하는 한 요인이다. 심지어 몇 년 전에는 성별을 알고자 하는 부부에게 법에 의거하여 성별을 알려 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옥신각신 한 적이 있다. 결국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한 남편이 "뭐 이런 의사가 다 있어. 에이 재수 없어." 하고 말하면서 진료실 문을 발로 쾅 차고 나가시는 분도 있었다. 의사는 법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키라고 하는 법을 지켰는데 항의를 하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프랭크 웨스턴 벤슨은 미국 태생의 화가다. 명작을 남긴 대부분의 화가들이 굴곡진 인생을 산 경우가 많은 것에 반해 그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평온한 삶을 살며 비평가와 일반인 모두에게 사랑을 받은 화가였다. 딸 3명과 아들 1명을 두고 아내와 함께 평생 해로하다가 89세에 죽었다고 한다. 동양화를 생각나게 하는 수채화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그런 그림들은 인기가 많아 미처 그림이 마르기도 전에 팔렸다고 한다. 평생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고흐에 비하면 행복한 화가다. 여기 실은 그림 "여름"에서 뒤를 돌아보는 나이 든 여자는 화가의 아내이고 젊은 세 여자는 화가의 딸들이다. 그는 흰색을 좋아해서 아내나 딸들의 옷은 거의 모두 흰색으로 그렸다. 흰색을 좋아하는 것이 그와 내가 유일하게 닮은 점이다. 그에게는 아들도 한 명 있었는데 "조용한 아침"이라는 제목의 그림에 아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딸을 모델로 해서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아마 딸 바보가 아니었을까 싶다.
웨스턴 벤슨의 그림에 나오는 세 딸의 모습은 밝은 파란 하늘과 어울려 그녀들의 앞에 펼쳐진 삶이 얼마나 즐겁고 희망적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고 그런 자녀들의 모습을 담는 화가의 얼굴에는 흐뭇한 아빠의 미소가 서려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딸 셋을 낳아서 슬퍼하거나 아쉬워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 그림을 보여 주고 싶다. 물론 아들만 셋을 낳은 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아들 셋을 담은 그림을 보여 주고 싶지만 찾지 못했다.
-여기 실은 작품-
프랭크 웨스턴 벤슨의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