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뽀뽀한다고 임신되는 건 아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by 팔랑심

아득한 순간을 지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 앞에 시꺼먼 것인지 시퍼런 것인지 알 수 없는 강이 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고개를 들어 보니 한강보다 강폭이 대략 5배 정도 넓어 보인다.

왜 이곳에 서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이 강을 건너야 할 숙명이라는 것은 머리 속에 명확히 각인되어 있다.

내가 가야할 곳은 무지개처럼 저 너머에 있다는 것을 이것에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 하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가슴은 사정없이 두근거린다.

이전까지 누구도 성공한 적이 없는 히말라야 K2 정상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 가려고 몸을 살짝 앞으로 굽힌 산악인 안드르제이 바기엘의 마음이 이랬을까?

그도 등정과 스키 하강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사라진 많은 이들의 모습이 떠올랐을까?

희미하지만 중간 중간 썩은 나뭇가지도 있고 바위도 보인다. 결코 그저 평범한 강이 아니다. 더군다나 중간부터는 강은 두갈래로 갈라진다.

왼쪽의 강줄기와 오른쪽의 강줄기 중 어느 쪽에 내가 원하는 것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제대로 방향을 택했을 경우 내게는 생명이 이어지지만 틀린 방향을 택했을 경우 나의 삶은 여기서 끝이다. 확률은 정확히 반반이다. 어찌 생각하면 큰 확률이고 어찌 생각하면 끔찍한 확률이다. 치사율 50% 정도의 치료법을 택하는 사람들은 어떤 심정일까?

그러나 과연 그 갈림길까지 갈 수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다.

사위는 어둡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이제 나는 출발해야 한다.

검은 물 속으로 나를 던지며 꼬리를 힘껏 젓는다.


생명의 시작이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순간이라고 하는 이도 있고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되는 순간이라는 이도 있다. 태동이 처음 느껴지는 순간이라는 이나 산모의 자궁으로부터 태어나는 순간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첫번째는 수정설, 두번째는 잉태설, 세번째는 태동설, 네번째는 출산설이라고 한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잉태의 순간부터 보호해야 할 생명으로 보았다. 소위 말해 잉태설이다. 가톨릭에서는 수정설을 주장하며 법적으로의 정의는 태동설에 가깝고 일부 여성 단체는 출산설을 주장한다. 여하튼 어느 순간부터 생명으로 보든 가장 최초의 출발이 정자와 난자의 만남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둘의 결합이라는 장대한 드라마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의문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정자가 어떻게 난자를 찾아 가는지 하는 의문이다.


처음에 적은 글은 사정된 정자가 자궁 입구인 경관을 거쳐 난관에 있는 난자까지 도달하기 위한 여정을 그려 본 것이다. 정자는 자궁 입구부터 난관 중심까지 17cm 정도 되는 거리를 가야 한다. 이는 정자 전체 길이의 3000배에 해당하는 거리다. 1.7m 키의 인간으로 환산하면 5100m 즉 5km 정도의 깜깜한 바다나 강을 헤엄쳐 가는 셈이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가까운 마포대교의 한강 폭은 1km가 조금 넘는다. 정자가 수정 장소까지 가야 하는 거리는 내가 한강을 5번 헤엄쳐 건너는 것과 같다. 그것도 그냥 바다나 강이 아니다. 온갖 수초와 바위 덩어리같은 방해물이 있는 곳이다. 더군다나 나팔관은 양쪽으로 두 곳에 있는데 어느 쪽 나팔관에 있는지도 모르는 난자를 정자가 어떻게 찾아 가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이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몇개의 가설이 있다.


첫번째 가설은 수정소 가설이다.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여포 세포에서 정자를 유인하는 물질이 분비되어 정자를 유인하다는 가설이다. 즉 수정소라고 부르는 물질 때문이라는 것인데 수정소는 분자량이 약 30만 인 당단백질이라고 하며 정자는 이 물질에 대하여 이끌리는 현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물질은 동물의 종류에 따른 특이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 정자가 다른 동물의 난자에 의해 유인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의 문제는 그런 물질은 소량이며 난자의 아주 가까운 주변에만 분포할 뿐이기 때문에 자궁이나 질에까지 분비되어 정자를 유인하는 효과를 발휘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두번째 가설은 산성도 가설이다.

난자가 있는 곳의 산성도 차이에 의하여 정자가 난자를 찾아간다는 가설이다. 정자는 주변 환경이 알칼리성이 될수록 빨리 움직이는데 질은 산성이 강하고 난자가 있는 주변은 알칼리성이 강하기 때문에 난자에 가까워지면 빠르게 움직인다.

세번째 가설은 온도차 가설이다.

난자가 있는 곳은 주변보다 약 2도 정도 온도가 높다고 한다. 그리고 정자는 따뜻한 곳으로 향하는 특성이 있다. 이런 온도 차이를 감지할 수 있는 정자가 수정을 위하여 상대적으로 따뜻한 곳에 있는 난자를 찾아간다는 가설이다.

네번째 가설은 후각 가설이다.

정자는 후각 기능이 있다고 한다. 정자의 표면에는 콧속의 후각세포처럼 냄새 수용체가 있다. 정자의 냄새 수용체는 난자에서 나오는 냄새 분자를 찾아서 경로를 찾게 된다는 가설이다.


다 조금씩 근거가 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하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없다. 임신과 출산과 관련하여서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 임신의 시작이 정자와 난자의 만남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도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래전 과거에는 남자 여자가 같은 곳에 있으면 임신이 되는 줄로 안 적도 있었다. 지금도 많은 아이들은 뽀뽀만 해도 아기가 생기는 줄 안다.


그러나 지금은 수정이 어려운 난임 부부에서 정자 한마리만 골라 난자에 직접 넣어주는 미세 수정 시험관 시술까지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다. 말하자면 어두운 강 앞에서 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훌쩍 목적지로 바로 가는 셈이다. 자연적인 것이 좋으냐 인공적인 것이 좋으냐는 논쟁을 벌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자연적인 것이 좋다. 간혹 임신을 빨리 하기 위해 배란 유도제를 사용하는 분들이 있다. 배란 유도제란 먹는 약이나 주사약을 이용해서 배란을 시켜주는 의료 행위다. 보통 배란 유도제를 쓰면 여러개의 난포가 자라서 배란이 되기 때문에 쌍둥이등 다태 임신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배란 유도제의 단점은 그것만은 아니다. 자연적인 배란과 다르게 배란 유도제를 사용한 배란에서는 호르몬 부족으로 인하여 정자의 경관 통과가 어려워지는 수가 많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호르몬제를 추가로 투여하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자연적인 배란시의 임신 확률이 더 높다는 이야기다. 물론 자연적인 배란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배란 유도제의 도움을 빌려야 한다.

여하튼 인공적인 것이 아닌 자연적 과정에서 정자와 난자의 만남은 단순하지가 않다. 그 과정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과정들이 있다. 한 사람의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도 인과를 알기 어려운 많은 사건들이 숨어 있다. 분명한 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사람이 갈등의 순간에도 부딪히고 고난의 시기도 만난다는 점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 이루어낸 사랑의 결실로 한 아이가 잉태되고 태어난다. 비록 키스만으로 아이가 태어나지는 않으며 성관계를 통하여야만 잉태가 되지만 그 전에 사랑이 있고 키스와 같은 스킨쉽도 거치게 된다. 그러므로 "뽀뽀하면 아기 생기는거야?" 라는 질문은 아주 엉뚱한 질문은 아니다. 또한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 하는 아이의 질문에 "엄마 아빠가 사랑하고 성관계를 해서 태어 났어"라고 말해 주어야 하고 성관계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설명을 해 주어야 하는 때가 오지만 "이 세상에서 엄마 아빠하고 즐겁게 살려고 태어났어."라고 대답해 준다고 해서 잘못된 대답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관계를 언급한 설명은 How 즉 과학적 방법이라는 측면에서의 설명이라면 즐겁게 살려고 혹은 행복하게 살려고 태어났다고 하는 대답은 What 즉 철학적 목적에 따른 설명이니 틀린 설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과학자의 옷을 입은 철학자들이다.


"엄마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

이런 질문은 아이들을 둔 부모라면 아마 한번쯤은 들어 봤을 질문일 것이다. 크면 알게 되긴 하지만 어린아이 때는 엄마 아빠가 사랑하면 아기가 저절로 생긴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서로 손을 잡거나 키스만 해도 아기가 생기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림 중에는 성관계를 하는 것을 직접 묘사한 그림은 거의 없다. 아무래도 그런 정도의 노출은 예술 작품으로 취급받기가 어렵고 논란에 휩싸일 것이 뻔한 탓이다. 성관계 모습이 아닌 그저 보통의 여성이 나체로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인 마네의 "올랭피아"도 당시에 천박하다고 수많은 욕을 먹었다. 그러므로 예술 작품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으로는 포옹이나 키스 정도가 최대한의 허용 범위다. 그래서 키스하는 장면을 그린 화가나 조각을 한 조각가는 많다.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키스 장면은 마리 로랑생의 작품인 "키스"다. 그녀는 그림에 특별히 설명을 붙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 그림도 별다른 해석이나 설명이 없다. 사실 키스라고 하면 로댕의 "키스" 정도는 되어야 키스답다고 할 수 있을 듯한데 로랑생의 키스 그림은 키스라기보다는 뽀뽀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그림에서는 성적인 분위기는 느낄 수 없고 대신 풋풋하고 포근한 사랑만이 느껴진다. 물론 꼭 입에 맞추는 키스가 아니라서 그런 느낌을 주는 건 아니다. 클림트의 작품 "키스"는 직접 입에 하는 것도 아니라 여자의 뺨에 하는 키스임에도 불구하고 로랑생의 키스와는 상당히 다르게 에로틱한 느낌을 준다.



—여기 실은 그림

마리 로랑생의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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