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저금통
대학을 졸업 한 지도 15년쯤 지났는데 아직도 대학 친구들이 모이면 한 번씩 꺼내게 되는 에피소드가 있다.
대학생으로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신입생 O.T 일정에 앞서 거리가 멀어 당일 아침까지 오지 못하는 학우들을 위해 서로의 얼굴도 익힐 겸 하루 일찍 모여 진행하는 앞풀이 날. 처음 가보는 학교에 건물 이정표를 찾아가며 더듬더듬 걷던 걸음에는 앞서는 설렘과 꼬리 물며 따라오는 두려움이 함께 있었다.
떨리는 마음을 숨기고 선배들이 있다는 학회실 문을 열었다. 처음 시작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근거림을 준다. 삐걱대지 않고 원활히 흘러가주길 하는 바람도 똑같을 것이다. 그때 진짜 대학생으로서 첫 시작도 열렸다.
학회실 안에는 환하게 웃어주는 선배님들이 계셨고, 나는 꾸벅꾸벅 인사했다. 지금은 어색하고 조금 뚝딱거리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러워질 거라는 걸 생각하면 참을만한 어색함. 관계란 늘 그렇게 시작되는 거니까.
선배님들은 눈을 반짝이며 하나 둘 모이는 새내기들을 향해 관심의 물음표와 환영의 인사를 건네주었다. 나로서는 같이 공부하게 될 동기들을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이미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트나 메신저 등을 통해 서로 대화는 나누어봤지만 실제로 보니 또 새로웠다.
그렇게 새내기들이 조금 더 모였고, 앞풀이 시작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다며 선배님들이 간식을 사주겠다고 했다. 인문대를 나가 조금 내려가면 있는 토스트 가게가 맛있다며 우리를 데려갔다. 메뉴를 고르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새내기들은 보통 가장 무난한 기본 토스트를 골랐고 선배님들은 각자 좋아하는 취향껏 고르고 있었다. 흔하게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화제의 인물이 도착했다. 그는 새내기로 우리 동기였다. 학회실로 갔더니 친구들은 간식을 먹으러 갔으니 얼른 따라가라는 말을 듣고 가게로 왔다.
가게에 있던 선배님은 "니가 ㅁㅁ이구나?, 오느라 고생했네. 너는 토스트 뭐 먹을래?"라고 질문했고
그는
"뭐가 맛있을까요?"
라고 했다.
나는 굉장히 놀랐다. 눈알을 굴리며 선배님들의 눈치를 살폈고 다른 동기들과도 눈을 마주쳤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는 그때 선배님들은 서로를 보다가 크게 웃었고, 나는 은은하게 미소만 지었었다. 아마 선배님들도 생각지 못한 답변이었다고 생각한다.
보통. 보통은 안 그러니까.
나중에 그 친구에게 그때 왜 그랬어?라고 물어봤을 때. 그게 왜?라는 답을 했었다. 하지만 친구도 그때 상황을 떠올리며 민망해하긴 한다. 친구도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긴 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가 틀린 것은 하나도 없다. 나 또한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진 않는다. 그러면서도 나는 직장 상사가 무엇을 먹겠냐는 질문에 보통. 보통은 아메리카노, 짜장면, 기본 등등만 선택한다. 내 취향보다는 상대를 걱정하고 신경 쓸 때가 많다.
본인의 생각과 취향을 마음껏 말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틀에 박혀 나가려 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는다. 자신감과 이유 있는 자기애 등은 부러워하고 존경스러우면서도 나 스스로는 고개 숙이고 겸손을 떨기도 한다.
난 둘 중에 무엇이 더 나은 태도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건 부럽다. 이리저리 재지 않고 똑 부러지는 사람들이 부럽다.
나는 비슷한 상황을 겪을 때마다 가끔은 원하는 걸 똑 부러지게 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내 친구의 이 에피소드를 떠올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