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사실 너머의 기억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은 단순히 메시지의 훌륭함을 넘어서 3시간이라는 극악의 러닝타임과 흑백, 고전 영화라는 것이 무색하게 너무나 흥미로운 영화다. 살인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재판하기 위해서 증인 및 용의자들을 불러내어 이야기를 듣는데 모두 다 너무나 상이한 이야기를 한다. 심지어 죽은 영혼까지 굿을 통해서 물어보았는데도 불구하고 진실은 여러 개다. 진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드러나는데, 웃음이 나올 정도로 사실과 각자의 진실은 동떨어져 있었다. 어떤 상황을 마주했을 때 이 영화, <라쇼몽>이 떠오르는 일이 자주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꿰뚫고 있는 이 영화는 만 번 인용돼도 부족하다. <평화로 가는 길>을 보고 나오는 길 또다시 라쇼몽을 떠올렸다. 그리고 진실과 사실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을 기억하고 다루면서 살아갈 것인가. 그런 고민을 해보고자 한다.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이길보라 감독의 영화 <기억의 전쟁(2018)>이었다. 참전용사인 할아버지를 통해서 자랑스러운 줄 만 알았던 '한국군'이 저지른 참혹한 역사를 알게 된 이길보라 감독이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퐁니, 퐁넛 마을의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이다. 한국인이 저질렀지만 한국 사람에 의해서 철저하게 숨겨진 사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는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그야말로 전쟁이다. 그들의 기억은 전쟁을 통해서만 진실이 될 수 있다.
종종 SNS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에 대한 증오 섞인 코멘트를 남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가 보다 싶었지만 깊이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문제에 <기억의 전쟁>을 본 이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집단의 일원이며 증오와 고통의 전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성장신화와 내가 누리고 있는 지금의 삶 이면에는 베트남 사람들의 참혹한 죽음이 숨겨져 있었다.
<평화로 가는 길>은 기억의 전쟁에 나오는 퐁니마을의 응우옌티탄님과 그와 함께하는 한베평화재단의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영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베트남 감독 도안홍레 님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영화에서는 응우옌티탄님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투쟁, 그중에서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을 주로 다룬다.
피해의 증거는 사진으로도 남아있고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으로도 남아있지만, 가해집단은 그것을 부정한다. 피해자들은 극심한 고통과 피로감에도 여러 번 자신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 증언해야 하고 증명해야 하고 투쟁해야 한다. 처음으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기사를 발행한 한겨레 사무실에는 '참전용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난폭한 폭동을 일으킨다. 그들은 생존자들을 '베트콩'이라고 주장한다. 진실을 덮으려는 자들을 새로운 주장을 가져오고 폭력적으로 피해자들을 지우고 또 지운다. 드러내지 않으면 사라지는 피해는 언제까지 증언되어야 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피해와 가해라는 문제에 매몰되어 있는 나로서는 가장 흥미로운 장면 중에 하나가 그 '참전용사'들이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게는 나에게 괴로움을 안겨주었는데, 첫째로 그들이 주장하는 다른 진실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며 그것이 나로 하여금 이 사건을 다채롭고 고민스럽게 만든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그들도 가부장제와 전쟁의 피해자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폭력이 일어났는데 내가 주목하는 장면이 피해자가 아니고 가해자라는 그 사실 자체. 그리고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내가 저지르고 있는 일종의 백래시 혹은 2차 가해로 느껴졌다. 가해자들에게도 주목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피해자 다음이어야 한다는 생각과, 가해자 집단에게 눈길이 가는 나를 멈출 수 없는 것. 두 마음 사이에 딜레마가 생겨났다.
두 번째는 이 장면이 다른 한편으로 가해와 나 자신을 분리시켰다는 점이다. 그들이 더 폭력적으로 묘사될수록 내가 이 사건으로부터 유리되는 기분이었다. 피해자들을 괴롭히고 '진실'을 감추려는 저들은 못된 사람들이고, 그들만 제대로 성찰하고 인정하면 피해자들의 고통이 끝날 것만 같은 착각을 내게 선사해 주었다. 계속해서 국가가, 우리가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배상하지 못하는 이유가 마치 그들 인 것만 같은 착각이다. 그곳에서 내 자신이 어떤 책임이 있으며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고 그들만이 가해자이며, 그 가해자 집단을 의식, 무의식적으로 옹호하고 있으며, 그곳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기분이 들었다.
이 복잡 다난한 감정과 생각들을 어떻게 소화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복잡한 그대로 솔직하게 적어보는 것으로 한번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여 적어보았다. 얼마 전 보았던 영화 <신성한 탈환>에서는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학살하는 가해자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서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내가 감히 '악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전쟁범죄를 '정의로운'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쩌면 자신들의 정의를 위해서 헌신하는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정의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과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 소름 끼치게 무섭기도 했다. (겉으로 비슷하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정의롭다'라고 생각하는 일들에 대해서 사유하지 않는 순간 무서운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박원순의 성폭력이 없었던 일이며 모함이라는 주장을 하는 영화 '첫 변론'이 만들어져서 1억 원 이상의 후원을 받고 1300명 이상의 상영객이 모이기도 했단다. 성폭력 지우기가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에는 상영중지가 되었다지만.. 박원순 성폭력 피해자의 변호자였던 김재련 님이 돌연 김문수를 지지하기 시작하지를 앉나, 내가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뭔가 잘 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꾸만 의심이 되고 혼란스러운 시간들이 계속된다.
그런 와중에 내친김에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이라는 참전군인들의 구술생애를 아카이빙 한 북토크에 다녀왔다. 엄청나게 큰 수확이 있진 않았지만, 자신이 가해자라는 사실에 괴롭고, 계속해서 그것을 증언하고 발언하는 자리에 있음으로써 전쟁에 대한 책임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한 참전 군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담해졌다. 그는 전쟁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전쟁에 가해자였고, 그리고 전쟁 피-가해자를 사회에서 소외시켜 버린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피해자이기도 했다. 결국에는 사회가 져야 하는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함으로써 퐁니, 하미마을의 탄 님들과 참전용사들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증언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이 거대한 피-가해의 고통을 오롯이 경험해야 한다. 그것을 목격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날의 기억들을 브런치에 적어 내려가는 것 말고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이 혼란스러운 진실과 사실의 세계에서 계속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진실이 되는가?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 되는가? 살아남는 것이 진실이 되는가? 정의로운 것이 진실이 되는가? 언젠가 수많은 진실(이라는 주장)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말해주었다. "진실을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진실보다 더 중요한 건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오늘은 이만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만이 사실이라는 것을,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선택하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을 수 있기를. 언제나 나는 잘 모르고, 그러기 때문에 틀릴 수 있음을 잊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ps 1. 다 적고 보니 <평화로 가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좀 놓쳤다. 영화는 때때로 화질이나 퀄리티가 좋진 않지만 무척이나 짜임새 있게 만들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피해자의 감정과 시선을 따라서 만들어졌다. 진실과 사실을 추적하고 가르는 것을 넘어 주목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집중하는 점에서 이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다.
ps 2. 잠깐 <기억의 전쟁>으로 돌아와서, 상영회를 열었었는데 그때의 제목은 <어쩌면 우리는 매일 전쟁을 겪고 있을지도 몰라>였다. 그때는 이 제목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또 공감이 되기도 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좀 더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내가 매일 겪고 있는 폭력과 전쟁의 폭력은 연결될 수 있다. 가부장제-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폭력은 인간들의 생명력을 짓밟고 억압과 착취를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마을이 불타고 가족들의 시체들이 트랙터에 짓밟힌 그들의 전쟁과 나의 전쟁이 같을 수는 없다. 그것을 어떻게 같지도 다르지도 않게 연결하고 또 공감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든다. 너무나 빠르게 나의 서사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건을 바라보는 것부터 충분히 하고 싶다. '같다' '비슷하다'라고 말하기 전에 무엇이 일어났는지,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먼저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