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운동가들을 떠올리라고 하면 꼽을 수 있는 이름이 많지 않다. 여성학자들의 이름을 떠올리라고 하면 훨씬 쉬운데 말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현장보다 화면으로, 집회가 아닌 집구석에서 페미니즘을 배운 나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럽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성폭전문상담원 교육을 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여성인권영화제도 가게 되었다. 여전히 감춰진 여성폭력을 드러내는 섹션과 여성인권 투쟁의 섹션, 그리고 연대, 소통, 치유의 섹션으로 나눠진 영화제의 다채로운 작품들 중에서 무엇을 볼까 고민했다. 어떤 영화를 선택하더라도 좋을 것 같아 고민이 깊어가던(?) 중 장편일 것, GV나 피움톡톡(토크쇼)가 포함될 것, 시간이 맞을 것이라는 기준으로 추리고 나니 볼 영화가 짜잔 하고 나타났다! 아르헨티나의 할머니 투쟁가 노리타 코르티냐스의 이야기를 담은 <노리타>. 신나는 마음으로 영화제가 열리는 아트나인으로 향한다.
가끔 독립영화를 보러 가거나 비인기 영화를 보러 가면 영화관이 텅텅 비어있는 경우가 있는데, 영화제에 들어설 때부터 여성인권영화제의 위엄(?)을 볼 수 있었다. 피움톡톡이 있는 날이라서 그런지 영화관은 꽤나 꽉 차 있었다. 왠지 아는 사람 몇 명 즈음 있을 것 같은 영화관 자리에 앉아서 영화 시작되었다.
노티라는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여성이 아들을 국가 폭력에 의해서 잃고 파파할머니가 되도록 광장에서 함께 연대하는 이로서, '페미니스트의 대모'로 살아가기까지의 이야기이다. 그의 연대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시작에는 "5월 광장 어머니회"를 만날 수 있다. 7-80년대 아르헨티나 군사정권 시절 실종되었던 이들의 부모들이 모여서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이들 또한 심하게 탄압을 받거나 실종되기도 했다. 그 살아남은 이들이 아직까지도 수많은 곳에서 연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십 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수요시위가 떠올랐다. 강정에서 이뤄지고 있는 인간띠잇기도 떠올랐다. 참석한 적이 그리 많지 않지만 누군가를 그 자리를 지키기 때문에 이어져가고 있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정의'라고 부르고,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영화는 노리타에 대한 증언으로 시작된다. "야수 같았다." 그 말만으로도 나는 이미 그를 만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어쩌면 무척이나 다루기 어려운 동물처럼 괴짜 같고 무섭기도 하고 야성적이기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와 사회에 만연한 폭력에 대해서 날카롭게 깨어있고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은 그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감각이 살아있을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야생성은 어떻게 길러지고 있을까? 너무나 쉽게 길들여지고 있는 것만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노리타가 젊은 세대로부터 추앙받고 교류하는 모습이었다. 그간 한국에서 일어나는 기존의 운동권과 신세력 운동권들의 모습이 갈등하는 형태로 드러나는 모습에 더욱 주목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 교류하고 지지하고 영향을 주고받을 때 비로소 운동은 매너리즘에 빠지지도, 정체되지도, 그렇다고 뿌리를 잃고 헤매지도 않고 나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우리의 운동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