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 보험 할머니네
능곡 사거리 건널목 지나기전, 석재에서 골목으로 솜틀집을 지나 파란 철 대문집
등나무 정자
라일락 나무
뒷산에 가득한 밤나무들
옆 마을 활터집 아이들
화단에 핀 붓꽃
이것이 나의 가장 오래된 공동체에 대한 기억.
생각해보면 내가 자란곳은 참 특별한 곳이었구나. 아파트도 아니고, 다세대 빌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독주택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후진 곳. 엄마네 가족은 서울에서 사셨다고 했다. 그러다가 능곡에 땅을 사게 되었고, 집을 짓게 되었다. 빨간색 벽돌과 시멘트로 지어진 집. 그 안에는 스트로폼으로 단열이 되어있고, 덧붙인 판자에 벽지로 장식 되어있는 집이다. 가족은 이쪽으로 이사올 때 주변에 집을 몇개 더 지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세를 놓고 지낸다. 아마 막 지어졌을 때는 나름 멋있는 신식 주택이아니었을까? 집들 중 어떤 곳은 화장실과 주방이 집 안에 있기도하지만 대부분의 집들은 공용 화장실을 사용 했다. 형형색색의 타일이 여기저기 붙어있고, 몇 번을 다시 발랐는지 모르는 벽지. 천장무늬와 벽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이곳에서 내가 살기 시작한건 3살 무렵인 것 같다. 아버지 사업에서 진 빚으로 서울에 살던 빌라는 팔고 이곳으로 이사게 되었다고 한다.
목재
솜틀집, 목재, 석재라는 지금 들으면 생소한 공간들이 근처에 있었다. 집에서 나와 10미터만 가면 목재(소)라고 부르는 곳이 있었다. 벽에는 늘 잘 켜진 기다란 나무들을 말려지고있었고, 톱이 돌아가는 소리, 기계소리, 타카를 박는 소리가 늘 끊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길에 스윽 돌아보면 뽀얀 먼지속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이 보였다. 나무 가루냄새가 늘 났다. 쇼파를 늘 제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천쪼가리와 나무 조가리가 나뒹 굴었다. 지나가며 눈이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한다. 그러면 나를 보며 웃어주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종종 그 안에까지 놀러가면 벽에 걸려있는 다마고치(!)를 꺼내서 주셨다. 쇼파에 앉아 다마고치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조금 무섭게 생긴 삐에로 모양 열쇠고리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길목 밖으로 나와 조금만 더 가면 목재소 정문이 나온다. 정문에는 나를 향해 짓는 강아지가 있었다. 어린이집 차는 정문 바로 전에서 탈 수 있기 때문에, 유치원에 다닐 적에는 그 앞을 지날일이 없었다. 근처만 가도 왕왕 짖어대는 강아지 턱에 늘 정문 저편은 바라만 보는 곳일 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시작되었다. 정문을 지나지 않으면 등교할 수가 없었다. 처음 등교하는날 엄마와 같이 그 길을 지나갔다. 엄마는 ‘봐바, 이젠 너가 저 강아지보다 크다. 너가 무서워하지 않으면 짖지 않는다. 처다보지 말고 무시하고 지나가라.'라고 하셨고, 정말로 쳐다보지 않고 지나가는데 짖지않고 따라오지도 않았다. 그 뒤로는 혼자서 그 길을 지날 수 있었다.
솜틀집
솜틀집은 예전에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 없어진 - 목화솜 이불을 트는 곳이다. 솜이 구겨지고 늘어지면 다시 기계에 넣어서 뽀송뽀송하게 만들어준다. 네모난 아저씨와 세모난 아줌마 부부가 살았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우리 가족들과 사이가 그렇게 좋진 않았던 것 같다.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불거지기도 했다. 아저씨는 고양이 고기가 허리에 좋다며 동네 고양이 사냥을 한적이 있다. 다른 고양이들을 유인하겠다고 검은색 고양이 한마리를 길가에 묶어놓았다. 몇 일간 학교에 갈때마나 목에 줄이 묶인 고양이가 울어대는 소리를 듣는 것은 끔직했다. 그리고 곧 그 고양이가 먹힐 상상도.
철길
철도건널목은 우리집의 상징같은 것이었다. 집에서 50미터를 채 가지 않아서 철길이 있었다. 택배기사나 짜장면 아저씨에게, 혹은 집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능곡 사거리에서 철도건널목을 건너기 전에 향나무 오솔길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나는 철길을 평균대 삼아 걷고, 돌멩이들을 가지고 놀고, 기차를 기다리고, 철길에 귀를 대고 기차가 오는 소리를 듣곤했다. 내 어린 시절은 늘 기차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봄에는 철길을 개나리가 피어 노란색 길이, 가을에는 코스모스로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딩동댕동 - 기차가 온다는 소식이이 들리면 삐빅하고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하얀색 장갑을 낀 할아버지가 나와서 차들을 막아세운다. 기다란 막대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기차가 지나갈 길을 열어준다. 기차가 지나갈때면 동네 친구들하고 나와서 손을 흔든다. 기차가 멀리 사라질때까지. 뒷자리에 앉은 기장아저씨의 하얀손이 흔들리는 것이 안보일때까지.
마을 사람들
집 뒤쪽으로 가거나, 밭에 가까이 가면 사람들이 있다. 세를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집은 주인 할머니 댁이었고,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세든 사람들이었다. 매달 한번씩 엄마는 돌아다니면서 집집마다 미터기 사용량을 체크하고 엑셀을 이용해서 전기세를 나누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에별사람들이 다 있었다. 지금은 흔히 주변에서 만나기 힘든.....
어느 날은 젊은 부부가 이사왔다. 그들은 어쩌다가 이런 곳까지 왔을까? 아름다운 젊은 부부 중 아내는 특히 나에게 잘해줬다. 하지만 그들은 사이가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나보다. 집 뒤에서 큰 소리가 나거나 밤사이에 장독대가 깨져있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에 그 천사같은 아줌마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나에게 참 잘대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이뻐서가 아니라 주인 할머니 손녀니까 잘 해줄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꼬마할머니는 우리 할머니의 친구였다. 몸집이 작아서 꼬마 할머니었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그때는 뒷문으로 나가면 꼬마 할머니가 집앞에 앉아서 담배를 피고 계셨다. 꼬마할머니도 나를 이뻐했다. 종종 뒤로 나가서 강아지랑 놀거나. 낙서를 하거나, 지붕을 타고 다니거나, 산책을 다니거나 했다.
집 앞에는 등나무 정자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우체통이 있었는데, 매일 열시께쯤일까 우체부 아저씨가 오곤 했다.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나가서 우체부 아저씨가 가져온 편지 중에 우리집으로 온 편지가 있나 기다렸다. 김용은…강성봉…박영숙…그래봤자 전기세 고지서나 티비수신료 같은거였지만,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리는 것은 하나의 일상이였다. 가끔은 아저씨도 피곤한지 아니면 나랑 노는게 좋은지 등나무 정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냥 멍하니 앉아있는데, 아저씨가 이것보라며 가르킨 것은 커다란 거미줄이였다. 커다란 거미줄에는 커다란 거미가 있었고, 잠자리가 통재로 잡아먹히는 중이였다. 우리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그것을 지켜봤다. 거미가 요리조리 거미줄을 만들어서 잠자리를 휘감았고, 천천히 먹는 것을.
신일슈퍼 아줌마. 언니가 500원을 주며 700원짜리 아이스크림 3개를 사오라고 명령을 하사하면, 신일슈퍼를 가야한다. 그 전에는 더 가까운 곳에 슈퍼가 있었는데, 어느샌가 사라지고 다른 가게로 바뀌어버렸다. 신일슈퍼 아줌마는 내가 가면 늘 ‘응, 왔니? 잘지냈지?’ 하고 늘 반갑게 맞아주신다. 과자 코너를 스윽 보고 아이스크림으로 다가가 한참을 고민하고 몇개를 집어 계산한다. 몇 백원씩 깍아주시거나, 많이 사면 아이스크림 하나를 더 고를수 있게 해주기도 하셨다. 가끔씩은 세일 때문인지, 종류 때문인지 바로 옆에 농협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지나가는게 늘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나무와 꽃
화단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있다. 꽃들과 이파리 들은 모두 우리의 장난감이다. 그중에는 먹을 수 없는 맛없는 배가 열리던 배나무가 있었다. 도대체 왜 먹을 수 없는걸까 의문이었다. 수국나무 흐드러지게 피는 수국. 가끔은 엄마가 수국을 잔뜩 끊어서 다발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한번은 내가 다니던 학원에 선물로 주어서 몇일간 수국이 학원 데스크 위에 올려져 있었다. 검정색 콩알같은 씨앗이 열리는 붓꽃은 소꿉장난의 하이라이트이다. 봉숭아물을 들이는 것은 연례행사이다. 큰길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는 향나무이 줄지어서 짧은 오솔길을 만들었다. 그 오솔길을 지나면 조금은 더 조용한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집앞에는 라일락나무가 한그루 있다. 여름이면 꽃이 잔뜩 열려서 벌소리가 들린다. 집앞 정자의 등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준다. 그 옆에는 앵두나무가 있고, 저기 뒷밭의 대추나무가 있다. 집 뒤에 언덕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사올 때 다 심으셨다는 십수그루의 밤나무가 있다. 가을만 되면 모두가 나서서 밤을 줍고 까고 찌고 말리고 하는것들이 연례행사였다. 스키장갑 같은것을 끼고 밤을 까거나 긴 쇠집개를 들고다니면서 동네에 떨어져있는 밤을 다 주어야했다. 할머니는 모르는 사람들이나 아는 사람들이 밤을 주어가면 화를 내셨다. 처음으로 심었던 씨앗을 기억한다. 아빠랑 씨앗 봉투를 열어서 한쪽에 쪼르르 뿌려놓았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날 가보니 내 키보다 크게 접시꽃이 자라있었다.
동물들
마을에는 고양이들이 많았다. 음식물쓰레기는 내놓으면 늘 봉지를 뜯어서 길을 더럽히곤했다. 쥐를 물고가는 고양이. 보스 고양이. 그중에 한마리 꼬리가 말린 검은 고양이 마야를 데려와서 기른다. 우리 가족 모두 부스럼이 생겼다. 동물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바르고 먹고 2주정도 하니 모두 사라졌다.
한번은 내가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500원주고 사온적이 있다. 엄마는 이걸 왜 사왔냐며 싫어했지만, 어느새 정을 주며 잘 자라고 말았다. 아파트로 팔려간 다른 병아리들이 죽어가는 사이 우리집 병아리는 닭병아리가 되었다. 나는 더이상 귀엽지 않은 병아리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렸다. 집안에서 자랄 수 없게된 병아리는 텃밭으로 옮겨졌고, 할머니는 친구가 필요하다며 시장에서 닭을 몇마리를 더 사오셨다.
광
집과 멀지 않은 곳에는 광이라고 부르는 공간이 있었다. 실내이지만 신발을 벗지 않아도 되는곳. 광에는 늘 특별한 냄새가 난다. 모레냄새 먼지냄새. 그리고 늘 물을 끌어당기는 펑프소리가 났다. 아주 일정한 간격으로 위잉…탁. 위잉….탁. 광은 언제나 신나는 놀이터다. 나중에 광은 두개 세개로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했는데, 광에는 늘 잡동사니 같은것들이 많았다. 소꿉장난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나. 별일 없어도 그냥 광에 들어가서 노는게 좋았다. 아무도 오지 않는 비어있는 우리들의 공간.
인사
나는 사람들 모두, 내가 가는 길에 있다면 그 누구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처다보고, 인사했다. 소리내어 인사하기도하고 목례하기도하고. 인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배웠다. 그냥 유치원을 가거나 학교를 다녀오는 건데도, 슈퍼를 가거나 친구를 만나러 갈때도, 몇 번이나 인사해야했는지 모른다. 그냥 좋았다. 내가 여기 있고, 그 사람이 있고, 눈을 마주치고 한마디 건네고, 돈도 들지 않고 힘들도 들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다. 머리가 크고, 나이가 들면서 인사하는 것이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인사하는 것이 싫어졌다. 촌스러웠다. 도시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인사하지 않는다. 서울가는 버스의 아저씨에게 신가했다가 답을 받지 못해서 무안해지기도 했다. 나는 서서히 인사하는 습관을 잃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