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래된 검은 차

by 샴스 Shams


눈이 많이 온 날,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검은색 낡은 차에 쌓인 눈을 털고 성에를 긁어냈다. 대충 앞은 보일 정도가 되었을 때 얼음들과 싸우는 것을 그만두기로했다. '결국 사라질 것들인데'. 가루가 된 눈 부스러기들이 닿은 손은 끝에서부터 아려진다. 그 사이 조금은 데워진 차안으로 들어와서 몸을 녹인다. 여전히 검은 차는 눈과 얼음에 뒤덮혀있다.


아버지는 자존심이 센 사람이라 (누군가는 이것을 '철학'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 직장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덕에 어머니는 여러가지 고생을 할수 밖에 없었는데 한겨울에 물이 나오지 않아 걸어서 5분거리에 공원에서 물을 길러다 쓰기도 하고, 고장 난 세탁기를 대신 가족들의 모든 옷가지를 손빨래하기도 했다. 여기저기 낡았지만 나름 깔끔하게 관리된 이 차도 차 없이 몇년을 지내다가 겨우 구하게된 차였다. 아버지의 자존심(혹은 '멋'이라도고 부르기도 한다)은 실용적인 차보다는 낡더라도 검은색 세단만을 허락했고 어머니의 중형차를 향한 로망은 또 한참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살때도 이미 새것은 아니었음에도 이 차를 10년을 넘게 몰았다. 그 사이에 누적주행거리는 30만km를 넘었다. 2002년에 세상에 나온 차라고 하니 이 차의 나이도 이제 20년이나 되었다. 라디오를 틀면 안테나가 신호를 잡는데, 여기에서 늘 미묘한 소음이 난다. 브레이크와 엑셀은 조금 천천히 작동해서 운전자는 다른차에 비해 약간씩 서둘러서 반응해야한다. 도색은 차례차례 벗겨지고 있어 미처 다시 칠하지 못한 부분은 사막이 갈라지듯 갈라져있다. 멈춰있으면 움직일까? 싶기도 한 이 차가 거리에 놓여져 있으면 때로는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차 덕분에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도 가고, 가족들을 보러 다른 지역에도 가고, 강아지 데리고 산책하기 좋은 곳도 다녀오고, 장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작년에는 내가 마침내 운전을 배웠고, 그뒤로 엄마를 모시고 여행도 다녀오기도 했다. 가족들을 돌보느라 바쁜 엄마에게는 톡톡한 도우미가. 여기저기 다닐일이 많은 아빠에게는 발이 되어주었다. 물건에도 영이 있다고 하는데, 만약 이 차에도 영이 있다면 그건 필시 따듯한 할아버지와 같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차를 종종 할아버지 차라고 불렀다. 같이 했던 시간들을 더듬어보면, 도움을 받은 일 밖에는 없었다. 딱히 돌려줄 일이라고는 가끔 눈을 쓸어주거나 청소를 하는 일 밖에 없다.


이번달만 차를 고치러 세 번을 다녀왔다. 많이 힘든가보다. 차는 차일뿐인데, 그래야하는데 헤어지려고 하니 섭섭한 마음이 앞선다. 아침부터 웬 차 생각을 하면서 눈사울을 붉힌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산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되는 것들까지도 사랑해버리면서. 어쩌면 이건 아버지에게 배운 일종의 자존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노력해봐도 새차를 구하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새 것에게는 이야기가 없다. 대신 그것으로 나은 삶이 되리라는 환상이 있다. 우린 삶을 새 집, 새 옷, 새 물건으로 채우며 나은 존재가 되고자 했다. 그렇게 세상은 진보했다. 많은 것들이 갖춰지고 편해졌다. 그러나 남은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와 망가진 세상이었다. 그러나 가난하고 소박하게 살아온, 그럴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시절들은 대신 낡고 오래되었지만 이야기가 있었다. 이야기가 많았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글썽일수 있는 신파적이고 뻔한 이야기들, 그럼에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 그런 이야기들.


검은색 할아버지 자동차는 20년을 살았고, 앞으로 몇년을 더 살지 모르겠지만 그 역시도 언젠가 수명을 다한 차들이 산을 이루고 쌓여있는 곳에 일부가 될 것이다. 그 무거운 동산에 이야기를 얹어 본다. 차는 쓰레기가 되겠지만 대신 이야기를 남겨주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저 차에 쌓인 눈처럼 찰나를 스치고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부디 우리 차가 아니고 이야기를 만들면서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기를. 어느 겨울 날 눈덮힌 자동차를 운전하며 그렇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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