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 엽전, 가공전을 만들어보자

못 말리는 부잡쟁이

by 팔레오

별전(別錢)에 대해 아시는가?


별전은 말 그대로 '특별한 돈'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에 법정 통화로 사용하기 위해 발행한 상평통보와는 달리 기념용, 장식용, 혹은 증정용으로 특별히 만든 오늘날의 '기념주화'와 같은 돈을 말한다. 당대의 동전 제조 기술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만든 행운의 메달이나 부적 같은 존재다. 종류가 매우 다양하지만 발행량이 적고 찾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희소성이 높다. 당연히 가격도 꽤 세다.



앞면

이 별전은 쌍동자가 모델로 나온 이른바 '쌍동자전'이다. 동전 좌우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목숨 수(壽)가 새겨져 있고, 상단엔 부부의 사랑을 상징하는 나비가 있으며, 하단에는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대나무잎이 있다. 쌍동자는 많은 자손(아들)을 의미하는데, 특히 손에 들고 있는 호리병은 넝쿨째 쭉쭉 뻗어 나가는 박으로 그 안에 수많은 씨앗을 품고 있어, 끊이지 않는 자손의 번성을 상징한다. 또한 동자는 도교의 마스코트 같은 것으로 여겨지며, 호리병은 신선의 영험한 약이나 복을 담아 가지고 다니는 그릇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고로 집안에 복을 불러들이고 재앙을 막아주기를 바라는 의미도 있다.



뒷면

뒷면에는 수복강녕 부귀다남(壽福康寧 富貴多男)이라는 글귀가 있다. 건강하고 마음 편히 오래도록 복을 누리며 살고, 부귀와 많은 자손을 두어 집안을 번창시키고픈 의미를 담았다.



붉은 채색의 흔적이 꽤 남아있는 꽃 모양 별전이다. 금슬우지 종고락지(琴瑟友之 鍾鼓樂之)라는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시경(詩經)의 관저(關雎) 편에 나온 말로서 거문고와 비파가 서로를 벗하고, 종과 북이 어울려 즐기다라는 뜻으로 부부 사이가 아주 다정하고 화목하며 가정에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기를 바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처럼 별전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기에 소중히 지니고 다니거나, 열쇠패에 달아놓는 등 양반가의 귀한 물건이었다. 고로 대부분의 일반 백성은 감히 넘보지 못할 사치품이었다.



조선시대 화형 가공전

그러나, 늘 사람들은 방법을 찾는다. 오리지널 별전이 없으면 짭별전이라도 만들어 소장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통용 화폐를 변태적으로 가공해 만든 이른바 '가공전'이다.



조선시대 박쥐형 가공전

만드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다양한 디자인의 가공전이 등장했다. 이것은 박쥐형 별전으로, 박쥐는 한자로 편복(蝙蝠)이라 하는데 이것이 복 복(福)자와 발음도 같고 모양도 비슷해 복을 불러오는 동물로 사랑을 받았다. 당대에 만든 가공전을 하나쯤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역시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개당 10만 원 이하로는 택도 없었다.


그럼 뭐다?

직접 만들면 됨. ㅎㅎㅎ



이 무모한 나의 도전에 세명의 용감한 자원자가 나섰다.



먼저 목욕재계 시킨 다음,



수술할 자리를 찾아 줄을 긋고, 기본적인 구멍을 드릴로 뚫어준다. 왠지 돌팔이 의사한테 성형수술받는 사람 같은 느낌이다. 조금만 참아보쇼! 예쁘게 해 줄게~



슥슥 슥슥~ 쇠 깎는 소리가 150 데시벨로 집안에 진동한다. 그러나 오늘은 마누라 외출 중, 안심이다.

첫 번째 환자의 수술을 마쳤다. 아직 마취가 덜 풀렸는지 축 늘어져 있다. 이어 두 번째 환자의 수술을 시작한다.



세 번째 환자까지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이렇게 해서 3개를 줄줄이 매달 작정이다.



나무망치와 집게를 이용해 조심스레 연결한다. 왠지 영화 인간지네가 떠오른다. 영화에 등장한 광기 어린 의사와 못 말리는 돌팔이 팔레오간의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잘 연결이 되었다. 위쪽 고리모양은 조선시대에 사용했던 전형적인 고리모양을 고증해 만들었다. 사실 엽전 깎는 것보다 저 고리 만드는 게 더 힘들었다. 박쥐형, 팔각형, 화형으로 성형 수술이 끝난 환자들이 안도하는 모습이다. 참고로 이 디자인도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던 가공전을 그대로 고증해 따라 만들었다.



한번 재미를 봤으니 또 시작해 본다. 이번엔 뭘 만들려는 걸까?



이번엔 톱날 모양과 글자 사이에 구멍을 크게 뚫어 시원한 모습으로 만들어볼 생각이다.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생각하며~



톱날 모양



시원스러운 모양



완성된 모습이다.



조금 사포로 문질러 주고 열쇠고리를 달았다. 오른쪽 엽전은 사포질이 과하게 들어갔다. 후회막심... 이래서 돌팔이에게 수술을 받으면 위험하다. 그래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상처가 아물듯 자연스럽게 구리에 산화 피막이 생겨 봐줄 만한 모습이 될 것이다. 라고 돌팔이 의사가 말한다.



생각나는대로 모양을 막 만들어본다. 하트 모양이 예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완성품을 보니 정말 에러였다. 하긴 조선시대에 하트 모양이 있었을 리가 없지. 조상의 선견지명에 무릎을 탁~ 친다.



왼쪽 엽전꾸러미는 수술 대기자들이다. 어느새 예뻐진다는 소문을 듣고 줄을 섰다. 여기는 팔레오 성형외과!



인간지네 1편과 2편, 아니 엽전지네 1편 2편의 모습이다.



한번 발동하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머리에서 또 재미있는 디자인이 떠올랐다. 이번엔 또 무슨 짓을 할지 밑그림을 보고 상상해 보자.



변태형 박쥐 가공전이다.



쓸데도 없는데 열쇠고리만 계속 생산하고 있다. 사실 요즘엔 열쇠고리가 딱히 필요 없는 시대라...



결국 PC옆에 매달려 장식품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가공전이 참 재미있는 것이, 디자인하기 나름에 따라 원본 화폐의 못난 부분을 제거하며 새로 거듭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흠이 있는 부분을 깎아내면 이처럼 깔끔한 모습이 되니 말이다.



6개의 다리와 더듬이가 있는 곤충의 모양을 컨셉으로 만들어 보았다. 왠지 바선생 같은 비주얼이다. 그래도 흔들면 6개의 다리가 찰랑찰랑 움직여 생동감은 있다.



고리가 많이 사용되므로 틈틈이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물고기 모양이 귀여워 친구들을 더 만들어 주기로 했다.



오옷~ 창의적 디자인, 내가 생각해도 참 기특하다. 조선시대엔 이런 모양이 없었으므로, 조선시대로 가서 만들어 팔면 금세 기와집 한 채 올릴 수 있을 법하다.



지느러미에 구멍을 살살 내고 있다. 왠지 물고기가 간지러워 웃고 있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



뽀글뽀글 공기방울과 함께 물속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 떼를 보는 듯하다.



만나서 방가방가~



방가는 무슨, 굴비마냥 줄줄이 꿰어져 열쇠고리행~



하루가 다르게 숫자가 늘고 있다.



앞서 별전을 보면 채색이 되어 있다. 단색의 밋밋함에 변화를 주기 위해 화려한 색상의 물감을 사용해 채색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엔 일반적인 화학 물감이 아니라 광물성 물감(돌가루)인 천연 석채를 사용했다. 따라서 흉내를 내 보기 위해 석채를 구입했다. 이를 아교에 개어 바르면 된다.



이렇게 컬러가 들어가니 좀 더 화려하고 예쁘다. 그 와중에 중앙에 있는 별전은 19금 춘화 별전이다. 시집가는 딸에게 성교육용으로 사용했다나 뭐라나. 시대를 앞서간 다양한 자세가 압권이다. 선비의 나라 조선을 다시는 무시하지 마랏!



시간 날 때마다 하나씩 만드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것은 여러 장의 상평통보를 겹쳐 만든 것으로 '겹전'이라 한다. 구멍을 뚫고 황동이나 구리로 심을 관통시킨 다음 여러 장을 하나로 고정해 완성한다. 여러장의 엽전이 더해진 것이라 확실히 묵직하다. 앞뒷면을 제외하고 가운데 들어가는 애들은 눈 뜨고 못 봐줄 만큼 못생긴 엽전을 넣으면 된다. 이래서 사람이든 엽전이든 일단 잘생기고 볼 일이다.



구리로 된 고리가 있는 겹전



백동으로 된 고리가 있는 겹전



일 년 동안 사부작사부작 만들다 보니 결국 이지경에 이르렀다.

"어서 와~ 열쇠보다 열쇠고리가 많은 집은 처음이지?"



이건 내가 봐도 선을 넘은 듯하다. 하지만 PC앞에 앉을 때면 먼저 눈이 즐겁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 누가 뭐라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게 후회가 없지 않을까?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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