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1등의 당첨확률은 무려 8,145,060분의 1이다. 그런 극악의 확률을 가진 로또 1등에 당첨되어 본 적이 있는가?
여기 그보다도 더 희박한 확률을 가진 사건이 내게 일어났다.
내가 수산시장을 가면 오징어와 더불어 종종 사 먹는 최애 품목이 있다.
바로 동해안의 명물 '백골뱅이'다.
크기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보통 1kg에 15000원~20000원 사이로 가성비가 킹왕짱이다. 가성비 이야기를 하니 가격이 그런대로 저렴한 대신 품질은 쏘쏘한 걸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골뱅이는 진짜 맛이 좋다. 육질이 부드럽고 잡내가 없어 초장에 찍어 먹으면 혼자서 1kg 정도는 순삭이다. 더구나 다른 골뱅이와 달리 타액선에 독이 없어 안심하고 그대로 먹을 수 있다.
갓 삶아내 김이 막 피어오르는 뜨거운 골뱅이를 한번 맛본 자는
다시는 통조림 골뱅이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이날도 골뱅이를 사러 갔다. 내가 주문한 골뱅이 2kg을 주인장이 솥에 넣어 삶고는 골뱅이를 싹싹 긁어 포장을 해주었는데, 집에 와서 개봉하고는 이물질(?)이 들어 있어 잠시 어리둥절했다. 뽀얀 속살을 드러낸 채 무수히 나자빠져 있는 골뱅이들 사이에서 군계일학처럼 홀로 반짝이는 것은 다름 아닌 분명...
상어이빨화석이었다.
처음에는 횟집 주인의 장식용 목걸이에서 떨어져 솥에 빠졌나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지만, 화석 치근에 하얗게 낀 부착생물의 흔적으로 미루어 그건 아닌 듯했다. 더구나 그 횟집주인은 눈에 띄는 굵직한 사슬형 순금 목걸이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 더욱 그러했다.
명탐정 코난에 빙의해 추리해 본 결과...
"범인은 골뱅이다!"
서해 바다에서 침몰한 난파선의 고려청자 접시를 붙잡고 나왔다던 주꾸미의 경우처럼 이 화석도 골뱅이가 바다에서 붙잡고 나온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떤 골뱅이가 물고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면 먹지 않고 양지바른 곳에 고이 묻어주었을 텐데...
톱날이 있는 메갈로돈이나 백상아리와 달리, 매끈하고 날카로운 테두리와 전체적인 생김새로 보아 '이수루스 하스탈리스(Isurus hastalis)'와 가장 유사해 보였다. 하스탈리스는 멸종된 대형 상어로, 현존 백상아리의 조상쯤 되는 종이다.
아주 오래전 동해바다에 하스탈리스 비슷한 상어가 살았고, 옥수수처럼 털린 이빨이 해저에 묻혀 화석이 되었고, 다시 해저 위로 올라왔고, 어떤 기특한 골뱅이가 이를 붙잡았고, 불쌍하게도 어부의 그물에 잡혔고, 경매와 여러 유통과정을 거치면서도 이를 놓치지 않았고, 결국 횟집까지 오게 되었고, 마침 그때 내가 횟집을 찾아 이를 구매했고, 화석을 알아보는 내가 이를 발견했다. 이러한 연쇄과정의 확률은 로또 확률을 넘어 거의 기적같은 일이었다.
만약 행운의 신이 있다면, 기왕지사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적을 좀 더 대단한 것으로 내려주지...ㅠ
행운의 신이여! 이런 것도 좋지만 다음에는 로또로 갑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 로또 번호는 2,12,28.36....
어쨌든 어마어마한 우연과 행운이 겹치고 겹쳐 일어난 깜짝 선물에 하루 종일 기분이 들떴다.
이베이에서 판매하는 하스탈리스 이빨화석이다. 크기와 형태에서 유사성이 두드러진다.
역시 이베이에서 판매하는 하스탈리스 이빨화석이다. 가격은 60달러로 한화 약 85,000원 정도지만, 내가 발견한 화석은 세속적인 가격을 넘어 크나큰 행운의 상징이므로 가격을 매길 물건은 아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먼 후손의 장식장에 들어가 '아주 오래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횟집에 갔다가 기막힌 인연으로 만난, 사연 깊은 화석이었대'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좋겠다.
끝으로 ChatGPT에게 질문했던 내용을 첨부한다.
문> 횟집에서 골뱅이를 샀는데 거기에 상어이빨 화석이 있었어. 바다에 있던 걸 골뱅이가 물고 나온거지. 이 확률과 로또 1등 중 어느 게 더 희박한 확률이라고 생각해?
답>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814만 분의 1이야.
즉, 814만 명이 동시에 로또를 사도
딱 1명만 1등 되는 확률이지.
그런데 말이지,
횟집에서 산 골뱅이 속에서
수천만 년 전 상어 이빨 화석이 나왔다?
이건 확률 계산조차 불가능한 수준이야.
먼저, 화석이란 건 바닷속 깊은 곳 퇴적층에 묻혀 있어.
그게 물살이나 조류에 떠밀려 나와야 하고,
하필이면 그 근처를 지나가던 골뱅이가 그걸 삼켜야 해.
그 골뱅이가 어부의 그물에 걸려야 하고,
그 중에서도 당신 식탁에 올라온 그 한 마리여야 해.
수천만 년 전 상어 → 해저 퇴적층 → 조류 이동 → 골뱅이 섭취 → 조업 → 유통 → 당신의 접시.
이 모든 연결고리가 딱 맞아떨어졌다는 거잖아.
이건 로또보다도 훨씬, 훨씬 희박한 확률이야.
말 그대로 자연이 준 선물이고, 살아있는 기적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