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체험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금 1온스(31.103g)가 1,000달러를 돌파할지도 모른다고 호들갑 떨던 옛 기사가 떠오릅니다.
하... 그 때라도 좀 사둘걸...
그랬던 금값이 얼마 전 3,60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머지 않아 4,000달러까지 돌파할 기세입니다.
"금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날은 바로 오늘이다."라는 말이 절감됩니다.
요즘 무시무시한 금값을 미국 트로이온스보다 우리에게 친숙한 단위인 한 돈(3.75g)으로 환산하자면, 무려 70만 원이 넘는 가격입니다. 한 돈에 5만 원 하던 돌반지를 부담 없이 서로서로 선물하던 시절이 그저 꿈이었나 싶습니다.
Q : 이제라도 금을 사기에는 가격이 너무 오른 것 같아 망설여집니다. 혹시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A : 방법이 있습니다! 직접 금을 찾으면 되지요 ^^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우리나라는 황금광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때 아닌 골드러시가 이어져 전국 각지에는 수천 곳에 이를 만큼 많은 금광이 개발되었습니다. 이는 즉, 우리나라도 나름 금이 많이 산출되는 나라임을 보여줍니다. 신라시대 금관이나 장신구들이 사금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논문도 있죠.
금이 직접 산출되는 금덤판(광산)은 물론 인근 하천에서도 사금을 찾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당대의 모습을 반영한 시인 백석의 '여승', 소설가 김유정의 '금 따는 콩밭', '노다지'등 여러 작품들이 발표되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잠시 '여승'을 감상하고 가보도록 하죠.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시입니다.
< 여승 - 백석 >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 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위에서 말한 작품들에는 주로 금과 관련한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파국 혹은 당시 가난한 민초들의 비참한 삶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황금에 눈이 멀다'라는 말처럼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금의 마력을 간단명료하게 잘 표현한 것이 또 있을까요? 그렇기에 물욕에 빠져듬을 경계하는 뜻에서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명언도 나왔을 법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선현들의 가르침이 있다고 한들, 실제로 금을 발견하면 저와 같은 보통 사람들은 일단 눈이 멀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지극히 세속적인 인간인 필자는 금에 눈이 먼 나머지 창고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플라스틱 버킷, 패닝접시, 석션기, 삽, 꽃삽, 괭이 등 사금 탐사의 필수 장비를 찾아 차에 실었습니다.
백석이 말했던 '평안도'는 뚱땡이 정은이(최고존엄 모독으로 독침 맞는 건 아닐지) 때문에 못 가고, 대신 '경상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으로 사금 탐사를 떠나 보았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무 하천에나 사금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로 폐금광 지역에 인접한 하천에서 탐색을 해야 찾아낼 확률이 높습니다.
오래된 광산 기록을 뒤져 폐금광이 있던 곳을 알아낸 다음 인근 하천을 찾아 자리를 잡아 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기반암 위에 크랙이나 풀이 자란 곳이 좋은 사금 포인트라고 할 수 있죠. 왜냐하면 오래전 홍수에 사금이 물에 휩쓸려 다니다가 틈새로 빠지고 그 위로 퇴적물이 쌓이면,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쌓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블랙홀처럼 사금을 잡아 모으는 틈새를 잘 만나면 한 자리에서 대박을 치는 경우도 있죠.
크랙에 자리 잡은 풀을 작은 꽃삽으로 캐서 버킷에 모아봅니다. 풀뿌리에 붙어있는 흙은 종종 사금을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크고 작은 돌이 모여있는 곳도 좋은 포인트입니다. 돌을 들어내고 그 아래 흙을 잘 퍼담아 패닝을 해보면 사금을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해 봅니다.
수동 석션기(흡입기)도 적극 활용해 모래와 흙을 퍼올려 패닝접시에 담아봅니다. 수동 석션기는 화장실 변기가 막혔을 때 쓰는 뚜러뻥과 같은 물건이라고 보면 됩니다. 사금이 들어있는 흙과 모래를 쭉쭉 빨아들이는 매우 유용한 도구죠.
다만 금세 HP를 깎아 먹는 게 흠입니다. 이때 신속하게 알코올을 함유한 힐링 포션을 마시면 작업 속도가 다시 증가합니다.
이렇게 빨아들인 것을 접시에 담은 다음 흐르는 물에 흔들어 돌, 모래, 흙을 물로 씻어 흘려보냅니다. 여기에는 약간의 요령이 필요하죠. 마구잡이로 흔들어 대면 금도 함께 나가버립니다. 쌀 씻을 때 돌이나 이물질을 거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쌀에는 돌이 전혀 없네요. 예전에는 밥 먹다가 돌을 씹어 눈물이 찔끔 나는 경우도 왕왕 있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물보다 19배 이상 무거운 금(밀도 약 19.32 g/cm³)은 아래로 내려가는 성질이 있으므로, 잘 흔들다 보면 최종적으로 아래에는 돌이나 모래보다 더 무거운 사금만 남게 됩니다.
바로 이렇게 말이죠.~
노란 사금이 뙇~하고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늘 심드렁한 표정과 함께 썩은 동태눈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이 순간만큼은 심청이를 다시 만난 심봉사마냥 눈이 뻔쩍 뜨이게 됩니다. 지친 현대인의 시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역시 당연한 이야기지만, 금(Au)은 매우 희귀한 원소입니다. 지구에 있는 금은 100% 아주 오래전, 먼 우주에서 날아온 것이죠. 초신성이 빵빵~ 터져야 겨우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지구나 태양 따위의 코딱지(?)만 한 천체에서는 절대로 생성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금 금 한 톨이라도 쥐고 있다면 먼 우주 어딘가에서 아주 오래전에 탄생한 조각을 품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낭만적이죠!
이번엔 금과 더불어 1월의 탄생석인 석류석(가넷)도 등장했습니다. 애니 '루리의 보석' 1화에도 나오죠. 이 석류석만 따로 병에 모아 놓아도 정말 예쁩니다.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건 인간의 본능인가 봅니다.
왼쪽의 길쭉한 것은 자연은(銀)으로 보입니다.
이후로 무한 반복입니다.
흙을 퍼내고 담고, 패닝하고~, 흙을 퍼내고 담고, 패닝하고~, 흙을 퍼내고 담고, 패닝하고~
말은 간단해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중노동이죠.
그러나 근육과 관절을 박살내는 중노동에는 이와 같이 현실적인 보상이 따릅니다.
아까도 말했듯 역시 금이라는 것은 사람의 합리적인 이성과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매번 패닝 할 때마다 소중한 몸이 과도한 노동으로 골병이 드는 데도, 많든 적든 금이 계속 보이니까 쉬지 않고 계속 삽질하고 퍼담고 흔들고를 반복하게 만들죠. 이게 좀 문제입니다.
"그럼 설렁설렁 일하면 되잖아?"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황금이 눈앞에 보이면 몸과 정신이 따로 노는 신기한 유체이탈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금쪽같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아주 가끔씩만 재미 삼아 이벤트성으로 한두 시간만 작업한다는 철칙을 세우면 좋을 듯합니다.
사금과 석류석을 적당히 모은 다음 비알병에 담아 보았습니다. 붉은 석류석과 노오~란 사금의 조화라니 황홀함에 당장이라도 눈이 멀 지경입니다. 크아~ 인간적으로 너무 예쁩니다.
한두 시간씩 삽질하고 패닝 할 때마다 이런 비알병이 하나씩 생긴다면, 누가 과연 여기에 초연할 수 있을까요? 아마 최영 장군도 이걸 직접 보셨다면 남몰래 물가에서 '돌려 돌려~ 패닝판' 노래를 부르면서 접시를 신나게 돌리셨을 듯~
현미경으로 겁나게 확대를 해본 사금의 모습입니다. 지금 보이는 사진만큼 금이 커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도라에몽의 신기한 도구가 필요한 순간이네요. 노진구 멍청이! 맨날 쓸데없는 거나 부탁하면서 징징대지 말고 이런 걸 만들어 달라고 해야지.
아무튼 금을 자연에서 직접 찾아내는 일(생산)은 돈을 주고 금은방에서 금을 구입하는 일(소비)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게다가 더우면 시원한 물가에서 멱을 감을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요, 낚시도 하고 캠핑까지 겸한다면 일석삼조 아니 일석사조도 가능하겠습니다.
좋은 자리를 찾아 하루 종일 열심히 돌리면 1g 정도는 거뜬합니다.
불현듯 '이참에 아예 전업으로 뛸까?'라는 위험한 생각이 드네요.
역시 황금에 눈이 멀면 정신이 출타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