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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충격의 탐지물

애들은~ 가라!

by 팔레오

지난 회 이른 봄(혹은 늦겨울) 산행기에 이어 이번에는 봄 산행기입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접어들었네요.

살랑살랑한 봄바람, 온화한 날씨로 나들이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기입니다. 요즘 산을 다녀보면 그러한 날씨에 힘입은 풀과 나무들이 무서운 속도로 자라고 있음을 느낍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옻나무 꽃망울이 점점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면서 상반기 금속탐지 시즌이 끝자락에 이르렀음을 절감합니다. 마치 포도송이 같은 옻나무 꽃이 점점 커지면 보이지 않는 꽃가루가 날리기 시작합니다. 꽃가루에는 휘발성 강한 우루시올 성분이 들어있어 이를 접촉할 경우 사람에 따라 극심한 알레르기를 유발합니다.



목숨걸고 찍은 사진 ㅎㄷㄷ

꽃이 활짝 핀 옻나무의 모습입니다.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근처에 가면 바람에 날리는 꽃가루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옻독이 오르면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전신을 덮치는 극심한 가려움증을 유발하는데 최소 전치 2주~3주입니다. 필자의 몸뚱이에 옻독 오른 사진을 증거로 보여드리고는 싶으나 극혐이라 차마 올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장수말벌에 대여섯 방을 쏘이고도 이틀 만에 멀쩡해진 적이 있습니다만 옻독은 그야말로 노답입니다. 항히스타민제도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옻독에 대해 확실하게 면역된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산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전처럼 풀숲을 헤치고 다니지 못할 듯해서 정비된 등산로 주변으로만 다녀보기로 합니다.



처음 만난 탐지물입니다. 깔끔한 엽전 신호음이었는데 파보았더니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구리 재질의 금속이 나왔습니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가 없네요.



조금 더 올라가 보았습니다. '福(복)'자가 새겨진 옛날 밥그릇이 무덤 주변에 떨어져 있네요. 일제시대에서 60년대 정도까지 사용된 거라고 예전에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무덤에 묻힌 고인에게 제사를 지내고 버려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걸 주워다 잘 닦아서 밥그릇으로 쓰고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귀신 데리고 왔다고 등짝 맞을까 봐 무서워 눈물을 머금고 외면했습니다. 귀신이나 저주보다 마누라가 더 무섭습니다.



한참을 올라가니 묘한 장소가 나타났습니다. 큰 나무 주위로 동그랗게 돌이 쌓여있네요.



게다가 깨진 기왓장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 추정해 본 결과...



이런 형태의 서낭당 터로 짐작됩니다. 사진에 나온 건 비교적 근래에 만들어진 것으로 과거 조선시대 서낭당의 형태를 참조해 만든 것입니다. 조선시대엔 양철 지붕 대신 기와지붕을 썼을 테죠.



조선 서낭당 유리 건판 사진

서낭목 주변에 동그란 형태로 돌을 쌓는 이런 형태의 서낭당은 조선시대부터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제를 지내고 구석구석에 동전을 꽂아 넣으며 건강과 복을 기원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여기에 조선시대 엽전이 숨어있을까요? 오늘 탐지기는 이전보다 몰골이 한층 더 엘레강스해졌습니다. 기본 11인치 코일을 빼고 더 넓고 깊은 곳을 탐지할 수 있는 15인치 대형 코일을 장착하고 왔기 때문이죠. 명색이 커버인 샤워커버가 15인치를 코일을 커버하지 못해 천 쪼가리와 테이프로 커스터마이징 했습니다. 간지가 그냥 아주 그냥 철철 넘칩니다.



탐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엽전이 처음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서낭당 터가 조선시대에 만들어졌음을 인증받는 순간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나옵니다.



럭키럭키~ 대한제국 1전입니다. 전에도 이야기했듯 엽전보다는 대한제국 동전이 희소성이 높습니다. 사용 기간이 짧기도 했고, 널리 통용되지도 못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삼남 지방 쪽 금속탐지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엽전이 계속 이어집니다. 생각해 보면 몇백 년 전에 누군가 던져 놓은 동전이 산에 그대로 남아 6.25 전쟁을 겪고 산업화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게 소름이 돋기도 합니다. 그걸 '몇백 년 만에 금속탐지기로 내가 처음 발견했다'라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면서도 짜릿합니다.



갑자기 돈뭉치가 나옵니다.



처음엔 대한제국 근대전 혹은 일제시대 오동전이라고 생각했으나 구 10원짜리 동전이네요. 이걸 두고 금속탐지인들 사이에서는 10원 지옥에 빠졌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별로 가치는 없는데 계속 나오니 계속 꺼내는 수고로움, 아마 가성비가 좋지 않기 때문에 나온 말이겠죠. 하지만 돈 줍는 걸 좋아하는 저로서는 10원 짜리라도 끝없이 나와 좋았습니다. 또 얼마나 나올지도 궁금했구요.



중국 건륭통보도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중국어를 쓰지 않냐구요? 우리나라로 귀화한 동전이라 그렇습니다. "니하오, 중꿔 동전이다 해"



구멍 뚫린 일본 알루미늄 동전입니다. 순간 엽전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날카롭게 터진 구멍 자국을 보니 총알에 의해 관통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구요? 오래전 군대에서 동전을 과녁으로 두고 총을 쏴봤기 때문입니다. 드릴이나 송곳으로는 저런 구멍을 만들 수 없습니다.



기와도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이고 포인트도 커서 예감은 좋았지만, 주변에 옻나무가 복병처럼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어서 꼼꼼히 탐지를 못하고 철수했습니다. 엽전보다는 몸이 더 소중하니까요.



오전 탐사를 마치고 또 그 밥을 먹습니다. 오늘은 라면이 질려 쇠고기비빔밥으로 메뉴를 바꿔보았습니다.

매번 세차를 해놓아도 산에만 갔다 오면 흙탕물 범벅이 되어 돌아오니 등짝이 남아나지를 않네요.

"마눌님 제발 나 좀 살려주시게~"



임도를 한참 올라가 두 번째 포인트에 왔습니다. 임도를 이용하면 한참 올라가야 할 고갯길을 아주 쉽게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심지어 임도에 차를 대고 5m도 안 되는 곳에서 엽전 노다지를 만난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임도는 가다가 차를 맞닥뜨리면 둘 중 하나는 위태위태한 길을 한참 후진해야 한다는 맹점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좁은 임도를 주행할 때는 늘 긴장을 합니다.



임도 가까운 고갯길에서 이제나 저제나 자신을 데려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린 녀석입니다.



아유~ 귀여운 것들...^^

생긋 웃으며 엽전을 하나하나 챙겨 넣고 룰루랄라 하다가 충격과 공포의 물건을 만나게 됩니다.



---------- 2편에 계속 ------------







... 하려다가 이번에도 성질 급하신 분들이 있으실 듯해 바로 시작합니다. ㅎㅎㅎ



응??? 이거슨...!!!


꺄아악~~~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숭배와 신앙의 대상, 전설의 남근석인가 봅니다.

갑툭튀 해서 한 번 놀라고, 크기에 두 번 놀라고, 디테일에 세 번 놀랐습니다.


여자가 아이를 못 낳으면 사람취급도 못 받고 쫓겨나야 했던 시절, 고갯길 서낭신께 치성을 드리고 아들 하나 점지해 주십사 하는 간절한 마음이 높은 산 한 편에 이 크고 무거운 걸 가져다 놓게 했네요.



이 대단한 물건을 보니 온갖 드립이 떠오르는데 하나같이 아슬아슬 위험한 것들 뿐이네요.

바늘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드립 본능을 참아내는 제가 대견합니다.

한 없이 남자를 초라하게 만드는 大物(대물)이자 貴物(귀물)이네요.

오늘도 대자연에서 겸손이 무엇인지를 톡톡히 배웁니다.


민속학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남근석이 애 못 낳는 사람에게도 특효지만 음기가 세거나 터가 나쁜 곳을 다스리는데도 효과가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름 수요(?)가 높습니다.



어쨌든 오늘도 엽전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남근석 임팩트가 커서 그런지 귀염둥이 엽전조차 초라하게 느껴지네요. 오른쪽 위 쇳조각은 철마의 다리입니다. 아쉽게도 본체는 발견하지 못했네요.



파도가 아주 멋졌던 날, 금속탐지로 여러 엽전들을 만나고, 또 거대한 조선시대 유물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금속탐지를 몰랐다면 죽을 때까지도 영원히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금속 탐지의 치명적인 매력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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