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대 오르도비스기 직운산층
삼엽충이 나타나 활짝 인사를 했다.
책이나 박물관 유리 진열장 너머로만 보던 삼엽충이 나의 손으로 세상에 다시 태어난 순간이었다.
이 깊은 산속에서 무려 4억 6천만 년을 잠들어 있다가,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처음 모습을 드러낸 큼직한 삼엽충을 보자 그만 온몸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나는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한참을 들여다보고 쓰다듬었다.
'내가 이 삼엽충을 손에 쥐고 있는 건,
지구의 아주 오래된 기억을 만지고 있다는 거야.'
그러나 여기서 그칠 수는 없었다. 주변은 여전히 잡풀과 나무로 뒤덮인 곳으로 내가 찾는 산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전석이 여러개 있는 것으로 보아 본 지층이 가까워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시 급경사 길을 한참 오르자 베일에 가려진 화석산지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무릉도원의 설화처럼 시공을 초월해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무수히 많은 전석과 발에 채이는 화석들...정말 쇼킹한 광경이었다.
이곳은 21세기 영월의 산이면서, 동시에 고생대 오르도비스기에는 적도의 얕고 따뜻한 바닷속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바위에 완족류가 붙어있고 삼엽충이 기어다니며, 두족류가 헤엄치는 고대의 바다로 풍덩 뛰어드는 상상을 했다.
그러고 눈을 뜨자 나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더 이상 상상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화석에 매료된 후부터 돌마다 화석이 박혀있는 거짓말 같은 꿈을 자주 꾸곤 했다.
드디어, 오늘 그 꿈이 이루어졌다.
어디를 둘러봐도 화석이었기에, 굳이 돌을 깨뜨리지 않아도 되었다. 찬찬히 돌을 하나씩 들춰보며 탐색해보니 삼엽충이 가장 많았는데 완전한 것은 거의 없었고 파편의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주로 머리나 몸통 보다는 미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만만해보이는 돌을 살짝 두드리니 아까와는 다른 형태의 삼엽충의 꼬리가 나왔다. 돌레로바실리쿠스 요쿠센시스는 먼저 발견했던 바실리엘라 티피칼리스와 달리 꼬리가 길쭉하고 주름이 깊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완족류도 나왔다. 완족류는 조개류와 비슷하지만 2장의 패각이 비대칭이다. 끈과 같은 팔을 이용해 바위에 붙어 사는 원시적 형태의 동물인데, 삼엽충처럼 완전히 멸종되지 않고 일부 종은 지금까지도 살아 남아있다.
두족류도 나온다. 두족류는 오늘날 문어나 오징어에 해당하는 동물로서 고생대에는 고깔모양의 껍데기를 가지고 있었다. 화석으로 남는 건 주로 부드러운 살이 아니라 단단한 껍데기다.
꿈과 같은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그림자가 길어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너무나 아쉬웠지만 금세 어두워질 것이기에 서둘러 하산 준비를 했다. 불타는 단풍에 피어오른 연기처럼 산자락에 사뿐히 내려앉은 구름을 완상하며 수억년 전 고생대로의 시간여행을 마치고 내가 살던 세상으로 귀환했다.
그곳에서 나는 타임머신을 탄 시간여행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