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길에 다다랐다고 생각되면

변화해야 할 때 - 주역

내가 주도하던 과제가 중단되고 새로운 과제를 찾고 있을 때였다. 거의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과제를 제안하고 가능성을 보는 것까지의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정체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사업본부 쪽에서 추진하다 중단된 연구과제를 우리 쪽에서 조금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추진해 주었으면 한다는 요청이 들어왔고, 연구소장님은 나의 경험이 그 과제와 맞는다고 생각해서 검토를 지시한 것이다.


과제 자체는 매우 매력적인 주제여서 모든 연구원이 해보고 싶어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연구 히스토리를 보며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무려 8년 가까이 연구를 진행해 왔고 두 번이나 과제화 되었다가 중단된 이력이 있었다. 한마디로 해볼만한 것은 다 해봤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선 무엇이 문제였는지부터 파악해 나갔다.

다양한 이슈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촉매에 있었다. 촉매는 쉽게 말해 화학 반응을 좀 더 쉽게 일어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소량이 들어가지만 결국 화학반응을 통해 원하는 물질을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우리는 기존 사업본부와 다른 회사, 대학 등의 연구기관의 사례들을 뒤졌다. 각각의 접근법에 장점과 단점이 있었지만 어떤 것도 모든 필요사항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 현존하는 물질로는 상업화에 도달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A라는 물질은 생산성이 월등하지만 불순물이 섞여 나온다. B라는 물질은 많은 양이 소모되지만 불순물이 생기지 않는다. C라는 물질은 생산성문제도 없고 불순물 문제도 없지만 터무니 없이 비싸다.


이미 알려진 방법들은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있었다. 결국 어떠한 방법도 해답을 주지 못하는 상황. 우리는 막다른 길에 몰려 있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서는 과제화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핵심 인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우리는 과거 사업본부가 했던 실패들 다른 회사가 했던 실패들 그리고 여러 연구기관에서 내놓은 각 물질들의 한계를 더 구체적으로 살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중요한 인자 즉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을 연구목표로 설정하였다. 이 때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두번의 실패와 다른 회사들의 실패 경험담이었다. 이들은 우리가 어떠한 변화를 주어야 할지 어떠한 것을 피해야 할지를 알려주었다.

주역(周易)의 계사전(繫辭傳)은 막다른 곳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易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역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역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 역, 위대한 미메시스 (글항아리, 황병기 지음, p80)


우리는 궁즉통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다. 궁은 끝이다. 궁극(窮極), 궁지(窮地) 등 끝, 막다른 곳 등을 뜻할 때 사용한다. 그러니까 궁즉통은 막다른 곳에 다다르면 다시 통하게 된다 그러니까 궁지에 몰렸을 때 뭔가 활로(活路)가 생긴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그런데 원전에는 한 단계가 더 들어가 있다. 궁지에 몰리면 바로 통하는 활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막다른 곳에 도달하면, 더 이상 나갈 곳이 없는 끝에 이르게 되었을 때, 변화해야 한다고 말해준다. 끝에 이르렀다는 것은 어떤 상태인가? 지금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봤는데 안됐다는 것이다. 더 이상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활로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인가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변화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궁지에 몰려서도 끝에 다다라서도 똑 같은 방법을 고수한다면 똑 같은 결과만 얻을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변화를 주어야 한다. 이렇게 변화를 주어 이것 저것 시도를 하다 보면 되는 방법 즉 통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반드시 찾을 수는 없지만 똑 같은 시도를 할 때보다 훨씬 더 높은 확률로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통하게 되면 (편안한 상태가) 오래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시도한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변화였다. 우리는 가장 핵심이 되는 물질을 변경하고 그곳에서부터 개선을 시작해 나갔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가망이 없다고 생각되지만 생산성만은 월등했던 물질을 기본으로 개선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들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기존에 과제가 실패했던 원인은 자신이 서있는 위치, 자신이 해왔던 방법을 고수하며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새로 시작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지키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이 행운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우리의 것이 없었기 때문에 지켜야 할 것도 없었다.


계속되는 실패를 맛보고 있다면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 한다. 나는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가? 내가 무엇인가를 지키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변화를 무서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여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앞에 벽이 있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지금까지의 방법과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 그런 변화에서 해결의 단서가 시작된다.


"Insanity is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짓이다.

- Albert Ei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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