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 실패해도 10번째 길을 찾으라 – 맹자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하면 왠지 등산을 떠올리고는 한다. 많은 시련과 역경을 견뎌내고 드디어 정상에 올라서 저 운해가 낀 세상을 내려다보는 이미지와 같은 것 말이다. 이를 통해 성공에 이르는 길은 단선적이고 수직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갖기 쉽다. 그러나 연구개발에 있어 실패와 성공은 조금 다를 듯 하다. 앞으로 하는 이야기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연구개발에 몸담아 왔던 내가 연구원으로서 느낀 점이니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다.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 보겠다. 당신이 심시티와 같은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당신은 어떤 도시의 시장이다. 도시의 발전을 위해 A라는 도시와 교역을 하고 싶다. 문제는 A도시가 있는 방향은 알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A 도시와의 교역로 확보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제 당신에게 몇 가지 가능한 선택지가 주어진다. 첫번째 이미 길을 아는 사람을 동업자 삼아 길잡이로 세우는 방법, 두번째 이미 길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지도를 구하는 방법, 세번째 당신의 시민 중 길찾기에 대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여 이들에게 임무를 맡기는 방법이 있다.
첫번째 방법은 사업에 있어 조인트벤처 (JV)와 비슷할 것이다. 두번째는 라이센싱과 유사할 것이다. 세번째 방법이 자체 연구개발의 방식이다.
연구라는 것은 개척로를 만드는 작업과 비슷하다. 연구원의 임무는 path finder다. (pathfinder는 개척자, 선도자라는 뜻의 단어인데 이는 path (길)과 finder (찾는 사람)이 합쳐진 말로 직관적으로도 '길을 여는 사람' 즉 '개척자'라는 의미가 떠오른다. 나는 개척자, 연구원의 임무가 길을 찾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두 단어를 따로 분리해서 썼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찾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한다. 문제는 가는 길의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큰 강이 가로막고 어떤 때는 절벽이 기다린다. 늪을 우회하기도 하고 커다란 산맥을 만나 가장 오르기 쉬운 길을 찾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경로 중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매 순간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현재 기술로 강을 가로지를 다리를 만들 수 없다면 강폭이 가장 좁은 곳을 찾거나 강을 건너지 않을 우회로를 찾아야 한다. 절벽 사이를 겨우 줄 하나에 매달려 건넌 후 좁디 좁은 다리를 건설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나 하나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다양한 루트를 개척한다. 그럼에도 아직 어떤 길로 가야 A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니 A까지 가는 최적의 루트가 어디인지 어떤 길이 가장 효율적인 길인지 등은 아직 논의하는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이 길을 찾아 가다 잘못된 길에 들어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보고 각각의 시도를 실패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분명 성공은 아니다 그러나 실패도 아니다. 아직 어떤 길이 진짜 길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 시장이 ‘시간과 돈을 이만큼 투자 했는데 제대로된 길을 찾지 못하다니 정말 형편없군.’ 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A까지 가는 개척로 확보는 진행 될 수 없을 것이다.
가끔 연구 개발 과제의 효율화라는 말을 듣고는 한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 마다 도대체 어떻게 효율화 할 수 있다는 말이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내세우는 효율화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연구 개발의 성공 확률을 높이자라는 것을 성과 지표로 삼는다. 성공확률을 높인다는 말은 그만큼 적은 시도로 빠르게 길을 찾으라는 말과 같다. 이건 우리가 연구(Research)와 개발(Development)을 연구개발(R&D)로 묶어 쓰면서 생긴 오류다.
다시 한번 앞서 들은 A시까지의 개척로 확보로 돌아가 보자. Path finder인 연구원들이 드디어 A시까지 가는 길을 찾았다. 그러면 연구원의 일을 개발자가 받아서 이어 한다. 개발자들은 연구원들이 찾은 경로를 최적화 한다. 굽어있는 길은 곧게 연결하고 산으로 가는 길은 고개를 넘는 대신 터널을 파는 방식으로 가장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경로로 수정한다. 이것이 개발자들이 하는 일이다. 그 다음은? 이제 사업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사업 주체들이 개발자가 설계한 루트를 검토하고 이를 실제로 갈수 있는 길로 만드는 것이다. 이 때도 많은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길은 몇 차선으로 할 것인지. 자원은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또 A시까지의 길을 만들면 ‘실제로’ 얼마나 이익이 될지 등등. 그리고 개발자가 설계한 길을 실제 길에 맞게 다시 손본다. 이렇게 해서 A시까지의 길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개발자가 하는 일이나 사업주체가 하는 일은 효율성을 찾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정량적 지표로 만들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거리 23% 단축이라든지 공기 3개월 단축 등등. 그러나 연구원들이 하는 것을 어떻게 효율화 할 수 있을까? 연구원들의 목표는 A시까지 가는 길 자체를 찾는 것이다. 아무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길을 찾는데 몇%의 개선이 가능한 일인가? A시까지의 거리를 알아야 몇% 개선이 되었다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좋다. 다 떠나서 그러면 시간을 단축한 다든지 시도하는 횟수를 줄인다든지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누가 알겠는가? 몇번의 시도를 더하는 것으로 길을 찾을 수 있을지. 누가 있어 몇 번을 하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계속 시도를 하는 것이다. 물론 다양한 경험을 가진 연구자라면 시도 후 잘못된 길에 이르렀을 때 더 빨리 경로를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 없이 한번에 길을 찾아 가는 것은 그 누가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맹자 진심 상편에는 인의를 대하는 자세에 대한 글이 나온다. 이는 모든 연구 과제를 대하는 것에 똑 같이 적용 될 수 있을 것이다.
맹자의 말씀은 비단 인의에 도달하는 것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은 결국 끝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연구 과제만큼 이 비유가 잘 맞는 것도 없으리라. 왜냐하면 다른 과제들과 달리 연구는 우물을 파는 것처럼 현재 어디쯤 도달했는지 얼마나 더 가야 목적지에 이를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제가 실패했다고 이제 그만하겠다고 하는 그 지점이 목적지에서 한참 멀리 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바로 지척인 경우도 있다. 그 목적지가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 많은 시도를 하는 것이다. 중구난방으로 헤매어 다니기 일수이지만 그 모든 시도들이 목적지에 다가가는데 의미 있는 시도들이다. 그래서 연구과제의 실패는 다양한 시도들이 오답이었다고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과제 자체를 포기하는데 있는 것이다. 반대로 연구과제의 성공은 9번 시도해서 못 찾았다고 포기하지 않는 것 그 모든 시도를 실패로 생각하지 않고 10번째 시도를 하는 것 그래서 결국 길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연구 과제의 성공이다.
마지막으로 슬램덩크에 나오는 안선생님의 명언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