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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 회사원 김씨 Aug 06. 2023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징크스라는 것이 있다. 어떤 행동 등이 원인이 되어 안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또는 일어났거나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즉 어떤 행동과 안좋은 결과 사이에 모종의 인과관계가 있다는 믿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두가지 징크스를 가지고 있는데 특히 스포츠 선수들의 징크스 중 유명한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경기 시 마이클 조던은 유니폼아래 대학시절 반바지를 업었고 데이비드 베컴은 냉장고 음료수 병이 홀수면 짝수로 맞추었다고 한다.

 이런 행동을 하게 된 것에는 원인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승리를 했던 어떤 날에 음료수 병이 짝수였다든가 아니면 반대로 홀수였던 날에 어김없이 패했던 경험들에서 왔을 것이다. 


 심리학에 ‘조작적 조건형성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여러 가지 사례가 있지만 스키너의 비둘기 실험이라는 인상 깊은 실험을 소개해 볼까 한다. 

 

 비둘기를 상자에 가두고 일정한 시간마다 먹이가 나오게 조작해 놓고 비둘기를 관찰했다. 처음에는 그저 먹이가 나오면 먹기만 하던 비둘기가 시간이 지나며 점차 특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어떤 녀석은 벽을 쪼고 어떤 녀석은 발을 구르고 어떤 녀석은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비둘기들은 그냥 이리 저리 움직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특정 행동을 할 때 먹이가 툭 떨어졌으리라. 

 ‘어라? 이것 뭐지?’

 그리고 혹시나 해서 동일한 행동을 하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니 또 먹이가 나왔다. 

 ‘아하! 이렇게 하면 먹이가 나오나 보다.’

비둘기의 행동은 어떤 조건에 대해 더욱 강화되기 시작한다. 


 나에게도 징크스가 있다. 여러 개 있다. 예를 들어서 보고 시에 어떤 옷은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온다고 믿어 선호하고 어떤 옷은 안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피한다. 언제 부터인가 중요한 보고가 있는 날은 계란을 안 먹는다. 깨질까 봐. 그 외 잡다한 징크스가 있다. 


 심리학 책을 읽다 스키너의 비둘기 실험을 읽으며 웃음이 나왔다. 

‘이런. 내가 고작 조류 수준이었다니.’

우연히 떨어진 행운에 또는 불운에 열심히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니. 그럼 뭐 하는가? 지식을 얻은 것과는 상관없이 중요 보고가 있는 날이면 난 옷을 골라 입고 간다. 오늘 하루 깨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성 따위는 무시하고 미신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보고하다 심하게 깨졌다. 옷도 잘 맞추어 입고 행동도 조심했건만. 풀이 죽어서 집에 와 술 한잔하며 와이프에게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상사의 무책임과 무능을 탓하며 화를 삭이고 있는데 와이프가 툭 던진다. 


 “너는 잘못한게 없는거야?


 내 맘을 모르는 와이프에게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 없어서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상사가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와이프가 또 툭 던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겠지. 근데 뭐 변하는 것은 없잖아? 그리고 문제를 자꾸 밖에서 찾으면 화가 멈추지 않아. 생각하고 곱씹게 되고 그럴수록 분노는 더 커질거야. 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내가 잘한 것, 잘 못한 것만 집중해. 그 밖의 것은 내가 어쩔 수 없잖아? 그 어쩔 수 없는 것에서 원인을 찾으면 그냥 계속 그대로 변화 없이 일은 안되고 남게 되잖아.”


 그러게 내 삶은 내가 사는 것인데. 상사의 삶도 아니고 내 옷이 내 삶을 사는 것은 더 더욱 아닐텐데. 난 내 몸 밖의 것에 너무 깊은 의미를 두고 살았구나. 내 옷이 어찌 발표를 잘 할 수 있겠는가? 내 상사가 어찌 내 일을 해 줄 수 있겠는가? 그냥 안된 이유를 나에게서 찾는 것이 괴로웠던 것이다. 그래서 내 밖에 있는 무엇인가 때문에 일이 잘 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 나를 탓하지 않아도 되니까. 나를 보호할 수 있으니까. 내가 조류만도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나에게 상처 주는 것이 두려워서 내 잘못을 직시하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던 것이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그런 것이었구나. 내 마음은. 그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괜찮다고. 잘 못할 수도 있다고 미숙할 수 있다고. 꼭 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결정적으로 나는 그렇게 잘난 사람이 아니라고. 그러니 어께에 힘 좀 빼고 날세우지 말고 조금 여유있게 반응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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