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커피를 마셨던 것은 아니 맛보았던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어린이들의 기억이 다 그렇듯 대부분은 빈공간으로 남아있지만 강렬했던 몇몇 부분은 매우 상세하게 남아있다. 그날 손님이 왔다. 피아노 조율을 해주시는 분인데 어머니는 여느 때처럼 손님을 위해 커피를 내오셨다. 일명 다방커피라 불리는 레시피인데 이 커피의 달달한 향은 어린 나에게 이런 저런 상상력과 함께 꼭 맛보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손님이 커피를 마시고 간단한 대화 후 나가셨고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커피잔 바닥에 있는 커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먹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어머니가 봐버렸다. 매우 혼났다. 커피를 먹어서인지 아니면 남이 먹던 남은 것을 먹어서인지 아님 둘 다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혼났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일까 나는 그날의 커피 맛을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진짜 커피를 마신 것은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난다. 중학생 때였던 것 같은데 그리 인상 깊지는 않았던 듯 하다. 아마도 커피 둘, 크림 둘, 설탕 둘의 다방커피 정석 레시피였으리라.
내가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부터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남고였고 (그때는 남녀공학이 거의 없었다.) 대학 진학율이 꽤 높은 나름 좋은 학교였다. 아침에 한 시간 자율학습을 빙자한 수업이 있었고 저녁에도 물론 야간 자율학습이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만 하는 것은 재밌지도 않고 젊은 몸도 갉아먹을 정도로 고된 일이다. 아무리 어린 나이지만 저녁 식사 후 자율학습 시간에는 졸기 마련이었고 순찰을 돌던 선생님께 발각되면 한소리 듣거나 심하면 두들겨 맞기도 했다. 저녁 잠이 많았던 내가 생각해낸 해결책은 저녁을 굶고 커피를 마시는 것이었다. 당시 캔 커피는 맥스웰 밖에 없었는데 이즈음에 레쓰비라는 커피가 나와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난 이 레쓰비를 저녁 대신 먹으며 야간 자율학습을 버텨냈다. 일종의 카페인 버프로 긴긴 수험생활을 버텨냈던 것이다.
나의 달달 커피 사랑은 죽을 때까지 계속 될 줄 알았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자판기 커피 한잔이었고 쉬는 시간 공강시간 시시때때로 커피를 마셔댔다. 물론 시험기간에는 더욱 더 커피를 마셔댔다. 시험은 카페인과 당 모두를 요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다 나의 커피 사랑에 시련이 찾아온다. 대학 2학년 1학기 중간 고사 기간에 점심 식사를 하러 가다가 엄청난 복통에 길거리에 주저앉는 일이 발생했다. 정말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땅바닥을 짚고 헉헉대는데 주변 친구들이 뭐라하는데도 하나도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삼십초 정도의 고통의 시간이 지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멀쩡해졌다. 병원에 찾아갔더니 위경련이란다. 술, 커피, 스트레스 등등 의사가 말한 원인은 평범했다. 뭐 당연하지 않을까? 병이 생기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고 그런데 생겼으니 제일 만만한 것이 위의 세가지 아닐까? 뭐 다른 것도 이야기 했던 듯 한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결국 나는 특단의 조치로 커피를 끊었다. 대학 생활에 술과 스트레스를 어떻게 끊을 수 있겠는가? 다행히도 위경련은 조금씩 나아졌다. 그게 커피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몇 년간 끊었던 커피를 대학 4학년때 즈음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마셨더니 심장이 크게 뛰고 정신이 번쩍드는 기적을 맛보았다. 이렇게 강렬한데 왜 내가 처음 커피를 마신 중학교 어느 날이 내 기억속에서 삭제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의 커피 사랑은 계속되었다. 어느 순간 모카커피에 빠졌다가 아메리카노로 갈아탔다가 다시 카푸치노와 라떼로 갈아타는 등 취향은 조금씩 변했지만 커피에 대한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아니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랑에는 항상 위기가 오게 마련이다. 30대에 조금씩 저하되던 체력이 40대로 접어드니 본격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침 출근할 때 진하게 마신 커피가 점심 먹기도 전에 약발이 다 떨어진다. 결국 점심을 먹고 나면 또 한잔 진하게 마셔야 오후를 버틸 수 있다. 그도 모자라서 어떤 날은 3잔을 마시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커피를 먹고 효과가 떨어질 때 피로감이 두 배로 밀려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저녁에 자다가 자주 깨어나고 잠을 자도 푹 잔 것 같지 않았다. 어떤 날은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도 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몸이 말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떤 의사가 쓴 컬럼을 읽게 되었다. 이 의사 분은 커피를 너무 사랑하는데 그래서 아껴 마신다고 했다. 커피를 마시다 보면 몸에 카페인 내성이 생겨서 더 많이 마시게 되고 그로 인해 숙면을 취할 수 없다고 그래서 건강하게 마시기 위해 커피를 자제한다고 했다. 커피를 오후에 마시면 그 여파가 꽤 오래가서 저녁에 잘 때도 숙면을 취하기 어렵다고 한다.
정재승 박사가 방송에서 커피의 효용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카페인은 아데노신 수용체를 막는다고 한다. 아데노신은 우리 몸에 에너지가 떨어졌을 때 이제 그만 쉬라고 뇌에 신호를 주는 물질인데 카페인이 들어가면 아데노신이 수용체에 붙을 수 없어서 우리 뇌는 에너지가 부족한지 모르게 된다. 결국 에너지도 없는데 뇌를 혹사시키게 된다는 뜻이다. 커피를 먹고 일을 하다가 약발이 떨어지면 더 피로감을 느꼈던 것이 과학적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또 다시 결단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커피를 끊자.
효과는 탁월했다. 일단 숙면을 취하게 되었다. 아침이 개운했다. 이것만으로도 피로감 없이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약간 아침에 멍한 느낌이 있었지만 이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저녁에 잠만 잘 자면 한 주를 무사히 잘 버틸 수 있었다. 건강해 진 것은 좋은데 인생의 낙이 하나 줄어들었다. 술은 의사의 협박 때문에 그전에 끊었다. 담배는 애초에 피지도 않았고. 하나 남은 낙이 사라져 버렸다. 누군가 그러던데 술을 마시고 수명이 줄어드는 것이랑 술을 안마셔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수명이 줄어드는 것이랑 어느 것이 더 클까라고. 내가 귀신도 아닌데 커피 향만 맡고 있다니 정말 짜증나는 나날이었다. 몇몇 분말 커피에 디카페인 커피가 있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를 살린 것은 네스프레소 디카페인 캡슐들과 스타벅스 디카페인 메뉴였다. 스타벅스에서 디카페인 메뉴를 팔기 시작했을 때의 감동이란. 그런데 내가 해외에 나가서 놀란 것은 해외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예전부터 디카페인 메뉴가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학회에 갔는데 커다란 커피통 3개 중 한 개가 디카페인이었다. 커피를 사랑하는 만큼 더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대응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최근에는 한국에도 웬만한 카페에서는 다 디카페인 메뉴가 있다. 물론 편차가 심해서 어떤 곳은 원두가 훌륭하고 어떤 곳은 이것을 돈주고 사먹어야 하나 하는 수준이지만 일단 메뉴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만해도 장족의 발전이다. 이렇게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 언젠가 디카페인 커피도 높은 수준의 원두를 취급하지 않겠는가?
어찌 되었든 두번의 이별을 겪으면서도 나와 커피의 사랑은 끝나지 않고 결국 이어졌다. 아마 죽을 때까지 평생 가지 않을까 한다. 오히려 반대가 심하면 더 애뜻해지듯 나의 커피 사랑은 더욱 커진 것 같다. 요즘 추세로 보아 울 아들램이 제사상을 차릴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내 기일에 나를 기리면서 좋은 커피 한잔 준비하면 고마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