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세상에 홀로 서 있기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어려서는 부모에 의지한다. 나이를 먹어가며 더 많은 곳 친구, 지인, 선생님, 부모님, 연인에게 때로는 동시에 때로는 오롯이 한곳에. 하지만 언젠가 문득 깨닫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불안한 모습인지. 무엇인가에 의지해 있는 것은 의지하던 것이 사라지는 순간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의지하던 것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함께 무너진다. 그래서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의지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것은 순수한 깨달음 후의 결심일 수도 있고 세월이 흘러 차차 그런 모습이 되어가는 것일 때도 있다. 어떤 경로를 거치든 결국 우리는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의지하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의 두발로 서게 된다. 그 때 우리는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뭐 대단한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오롯이 혼자 설 수 있는 것 그것이 어른이다. 그러니 아직 누군가의 도움을 갈구하고 의존하고 있다면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면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아직 아이인가?
물론 한번에 어른이 될 수는 없다. 종종 어린아이로 돌아갔다 다시 어른이 되었다가를 한동안 반복할 것이다. 그러다 차츰 혼자만의 힘으로 서 있는 날이 점점 길어지다 어느 순간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고 온전히 나의 생각 나의 의지로 세상을 살아가는 그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난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을 해도 마찬가지이다. 부부가 서로 의지할 수 있다. 힘들 때 잠시 기댈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은 스스로 서 있어야 한다. 오직 혼자만의 힘으로. 온전히 내가 의지한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두 사람 몫을 짊어지고 서있어야 하는데. 잠시가 아닌 몇 달, 몇 년이 된다면 지치지 않겠는가? 이런 관계는 정상적인 어른들의 관계가 아니다.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에 더 가깝다.
혼자 선다는 것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는 다는 것은 단지 도움을 받지 않는 다는 것 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갖는다. 의지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면 경제적인 의존을 먼저 떠올리고 다음으로 정서적으로 기대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직접적인 의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누군가의 인정을 갈구하는 것이다. 어려서는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학교에 가서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직장에 가서는 상사와 동료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결혼을 해서는 배우자와 자식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인정을 갈구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인정을 갈구하는 순간 우리는 그들에게 의지한다. 그들의 인정이 있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다. 인정이 철회되는 순간 의기소침해 지고 낙담을 한다. 우리는 이미 타인의 인정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자신을 믿고 자신을 인정하며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누구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가고 싶어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그쪽이기 때문에 나아가야 한다. 그 때 내 인생을 살 수 있고 비로소 어른이 된다.
마흔의 끝자락에 이르러 생각해 본다. 나는 어른인가? 서른을 혼자 당당히 세상에 선다하여 '이립(而立)'이라 부른다. 혼자 당당히 서있으니 서른이면 어른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립을 한참 지나 의혹됨이 없어야 할 나이(不惑)이고 조만간 하늘이 내게 내려준 명을 알고 받아들여야 할 나이(知天命)지만 아직도 내 다리는 굳건하게 세상 위에 서있지 못하다. 나는 수시로 흔들리고 수시로 미혹되며 수시로 낙담하고 때로는 쓰러져 울먹인다. 난 많은 시간 어른이지만 때때로 아이가 되고 싶고 아이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럴 때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감사한다.
이과생의 관점으로 변명하자면 난 생활의 80% 이상은 어른으로 살고 있으니 어른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아마 더 나이가 들면 언젠가는 90%가 되고 100%에 가까워 질 수도 있다. 그러나 거북이를 뒤쫓는 아킬레우스처럼 완전한 어른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완전한 존재가 아니듯이 어른도 완전함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세상 어딘가에는 어른의 이데아가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난 아직까지 그런 사람을 본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