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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 회사원 김씨 Sep 10. 2023

불행의 이유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내가 되었으면 하고원하는 나의 모습이 현실의 나와 같다면 불만도 없고 불행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내가 아닌 나를 꿈꾼다면 그리고 내 꿈속의 그가 나보다 훨씬 우월한 누군가 라면, 심지어 아무리 노력해도 될 수 없는 존재라면 실망은 훨씬 크다. 아니 대부분의 경우 절망할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하나는 안될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내가 아닌 그 무엇이 되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현재의 나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불행해 지는 진짜 이유는 이 두 가지 길 사이에서 이도 저도 아닌 길을 찾아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분명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했는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에 내가 아닌 그 무엇이 되기 위해 나아가라니 모순된 것 아닌가 의문이 들 것이다. 

 우리가 불행을 느끼는 지점이 약간 다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방안은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만 내가 정말 좋아서 않되어도 상관없다 도달하지 못해도 좋다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러나 내 실력이 등단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좋은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나는 작가라는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라는 결론에 이르렀지만. "그럼에도 나는 작가가 되고 싶고 그래서 다른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계속해서 글을 쓰겠다."라고 결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사람은 등단하지 못해도 작가로 밥벌이를 하지 못해도 지금의 직업이 만족스럽지 못해도 결코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안될 것을 뻔히 알지만 나는 가겠다. 그것이 내 길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할 일이 없다. 자신과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이미 분리해 놓았고 별개의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설픈 희망과 만약이라는 마법의 단어를 써가며 최면을 걸고 그 최면에서 깰 때마다 절망하는 것과는 아주 많이 다른 것이다. 내가 원한다면 온 세상이 나를 도울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 따위에 기대지 않고 어떠한 희망도 모두 버린 채로 당당히 나가는 주체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어떤 면에서는 두 번째 경우 즉 '내가 원하는 모습은 현재의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현재의 나'로 살아가는 것과 조금 더 닮았다. 둘 사이의 공통점은 둘 다 현실의 나와 내가 되고자 하는 희망 속 나를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현재 여기 있는 내가 전부이고 그것이 충분히 온전하다는 믿음 속에 산다. 그리고 차이점은 하나는 '그럼에도 안되는 길로 가기로 마음먹은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래서 안가기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두 경우의 공통점 즉 현재의 내가 명확히 어디에 있는가를 인식하고 있는 것, 현실에 두 발을 굳게 올리고 서 있는 것 이것이 불행에서 빠져 나오는 비결인 것이다.  


 현실의 나를 부정하고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어딘가에 내가 있다고 착각하고 사는 것 그러다 문득 문득 자신의 발 밑을 확인하고 꿈속이 아닌 현실의 자신을 확인하고 좌절하는 것 이것이 바로 불행인 것이다. 

그러니 하나만 명심하자.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계속 확인해라. 내 발 밑의 굳건한 현실에 서있자. 

그러기 위해 꼭 깨어 있어라. 항상 깨어 있어라. 


 나에게 선택하라고 하면 아마도 두 번째 경우 즉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쪽을 택할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멋모르고 좌절과 불행을 반복했지만 지금의 나는 안될 것을 알면서도 나가기에는 너무 나이 들었고 속물이 된 것 같다. “꿈 따위는 필요 없다니까?” 라는 자세라고나 할까? 아니 더 정확히는 “더 이상 이곳 저곳에 에너지를 분산시킬 만큼 힘이 넘치지 못해서”라는 것이 더 정확할 듯 하다. 물론 그럼에도 내 머리 속 나는 가끔 탈선을 시도한다. 내 안에는 너무나 많은 내가 있어서 시시때때로 다른 쪽으로 한눈을 팔아대고 있으니까. 그래서 수시로 내가 서 있는 곳 그곳에서의 내가 진짜 나라는 것을 상기하며 쓸데없는 심력의 낭비를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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