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후회
우리가 자주하는 말이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수 많은 선택을 해 왔고 많은 경우 운이 좋아서 올바른 선택을 해 왔다. 뭐 그 중에 가슴을 치거나 이불킥을 날릴 만한 선택도 많았겠지만 다행히 나의 건강한 뇌는 과감히 delete 버튼을 사용할 줄 알아서 나름의 멘탈 관리를 잘 하고 있다. 망각이란 진정 신이 주신 축복일지니!
20대의 과감함에서 30대의 신중함으로 넘어가며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한 노력은 더욱 더 치밀해져 갔다. 뭐 아무리 그래도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하게 마련이다. 그때 마다 후회의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왔고 종종 친구들을 불러서 또는 와이프와 함께 술로 지새우며 반성을 했었다. 그러면서 다음에는 더욱 더 현명하리라 더욱 더 신중하리라 결심을 했다.
40대에 들어서도 한동안 그랬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도대체가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삶을 살아오며 무수히 많은 가보지 않은 길을 내 뒤에 남기고 왔다. 그 중 어느 것은 대박으로 판명이 나서 가슴을 치게 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너무 멀리 지나와서 어떻게 되었는지 알길이 없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길을 지나쳐 가야 할까? 매번 뒤돌아보며 조마조마해야 할까?
후회는 과거의 나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한다. 좋지 못한 선택을 한 나를 미워하는 것이다. 과연 그것이 현명한 행동일까? 우리가 아무리 신중하게 선택해도 피해갈 수 없는 선택이 무수히 많다. 그때마다 뒤돌아 보며 뒤에 남겨진 나를 미워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과거가 바뀌지도 않고 그런 과거의 나를 미워하는 현재의 나는 더욱 더 괴롭기만 하다.
“선택을 위해 신중하되 선택한 후에는 후회하지 않기.” 40대의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50대의 내가 60대의 내가 더 현명해 진다면 또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는 그렇다. 후회를 하지 않기. 과거의 나를 인정하고 보듬어주기.
첨언.
갑자기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나서 찾아보았다. 문득 한 구절이 눈에 와서 박힌다.
나는 그 전까지 다른 길을 택한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 “똑같이 아름다운” 이라는 수식어가 있었을 줄이야.
아! 프로스트도 알고 있었구나. 우리가 마주치는 많은 갈림길이 똑같이 아름다웠다는 것을. 어느 쪽이 더 아름답지도 덜하지도 않은 모두 매력적인 길들이었음을. 나는 왜 이 "똑같이 아름다웠다"는 구절을 잊고 있었을까? 마치 내 기억 속에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길들이 때로는 더 아름답게 때로는 더 못나게 기억되는 것처럼. 사실 매 순간 내가 선택에 고심했던 이유는 바로 두 길이 똑같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던 것을 왜 잊고 있었을까? 그렇기에 어느 길을 선택해도 난 충분히 만족스러웠을 텐데 한참이 지난 후 때때로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