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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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사서삼경을 다 읽겠다는 목표를 세운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적 허영은 내 독서의 원동력이다. 논어로 시작해서 대학, 중용까지 순조롭게 독파해 나갔다. 이제 사서의 마지막인 맹자가 남았다. 맹자. 앞서 읽은 세 권의 책과 비교하면 일단 두껍다. 그리고 진도도 엄청 안 나갔다.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이나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처럼 난해하기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맹자는 일단 이야기 책에 가깝다. 무지무지 고생해서 완독을 했던 기억이 있다. (참고로 독일인들은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쓰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나는 앞 두 권의 책을 10페이지도 읽기전에 집어 던져 버렸다. 불면증이 있는 분들에게 북 테라피로 권할만한 책이다.)
40대가 되어 다시 사서를 읽으면서도 이때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맹자는 역시 제일 나중으로 미뤄놓을 수 밖에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20대의 나를 그렇게 괴롭혔던 맹자가 너무나도 쉽게 읽혀졌다는 것이다. 너무 지레 겁을 먹어서일 수도 있고 내 독서력이 증가해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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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우리는 사서를 철학서나 사상서로 생각 한다. 하지만 공자나 맹자 모두 당대에는 정치가 였다. 즉 현실 정치에 참여하여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어록인 논어나 맹자도 사실 당대 정치에 대한 정치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자와 맹자로 대표되는 유교 사상에 대해 우리가 갖는 인식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동아시아 국가들을 2천년가까이 지배해온 통치이념으로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지배이념으로써의 유교는 왕과 지배 계층의 통치를 위해 실제 사용되었던 법가 사상 위에 살짝 얹어 놓은 것이다. 약 본연의 쓴맛을 느끼지 못하게 코팅한 설탕처럼 법가의 잔혹함을 숨기기 위한 위장 수단이었다. 우리가 알고있던 통치이념 유교정치의 본질은 법가의 통치 체계였던 것이다. 사실 “맹자”는 다분히 지배계층에게 위험한 생각들을 담고 있다.
2천년 전 맹자는 인과 의를 저버리고 백성을 해치는 자는 더 이상 왕이 아닌 일개인(一夫, 한 사나이)일 뿐이니 죽여도 상관없다는 급진적인 발언을 왕 앞에서 서슴없이 말한다. 왕권이 신에게서 받은 신성한 권리가 아니라 왕 노릇 제대로 못하면 죽이고 바꿔도 되는 별 것 아닌 것이라고 현직 왕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좀 더 맹자의 말을 들어보자.
왕 따위는 사직 즉 영토보다도 못하고 사직은 백성보다 하위라는 것이다. 국가의 근본은 백성이고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왕 노릇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2천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국민이 주권을 가진다는 민주(民主)국가에 살고 있다. 헌법 1조 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고 명시되어 있음에도 우리는 진정 우리가 주인인지 공화국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맹자는 보수주의자다. 오래된 주(周)나라의 통치 이념과 시스템을 고수하고 복원하려 평생을 바쳤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당대에도 고루하고 진부하게 여겨졌다. 그럼에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꼬장꼬장함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수주의자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맹자는 이익을 쫓지도 타협을 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각오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왕 앞에서 역성혁명을 옹호하고 군주가 하찮다고 하겠는가?
맹자를 읽으면서 진정한 보수주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조선말 면암 최익현은 강화도조약에 반대해 지부상소 (持斧上疏 : 도끼 상소)를 올린다. 위정척사 (衛正斥邪) 성리학을 지키고 서양문물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면 차라리 도끼로 내 목을 치라는 것이다. 명성황후 시해 후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 머리카락을 자르려거든 차라리 내 목을 치라고 한다. 그리고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모아 저항하다 붙잡혀 쓰시마섬에서 병사한다. 얼핏 그는 구시대의 마지막 저항처럼 보인다. 그는 분명 보수주의자다. 그러나 그가 지키는 것은 자신이 몸담은 체제와 소신이지 이익이 아니었다. 우리 시대 보수주의가 과연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 그리고 그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걸 수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