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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 회사원 김씨 Feb 26. 2024

왜 미국이 먼저 핵폭탄을 쥐게 되었을까?

원자스파이 - 샘 킨

 20세기 초 현대 과학 특히 물리학과 화학의 중요한 발견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던 시기였고 우리가 잘 아는 스타 과학자들이 활동하던 시기였다. 이들은 그간 우리가 몰랐던 미시세계를 탐구했고 그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규명했다. 그 안에서 그간 알고 있던 사실들과 모순된 점을 발견했으며 마침내 양자역학의 문을 열었다. 


 이중 화학자 오토 한은 핵분열이라는 현상을 발견했고 그의 연구 파트너 리제 마이트너는 혼란스럽기만 한 핵분열 현상을 아름답게 정리하였다. 이들은 그저 새로운 것들을 연구하고 발견하고자 했을 뿐이다. 새로 발견한 자연현상을 해석했을 뿐이다. 그들의 발견은 연속적인 핵분열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했고 이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원자력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 사람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기술로 알려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혁명적인 과학이 꽃피는 시절에서 점점 위험하고 암울한 전쟁의 시절로 넘어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과학적 발견은 더 확실하고 파괴적인 무기의 가능성 또한 암시했다. 연속적인 핵분열에 의한 핵무기, 원자무기의 가능성이 그것이었다. 


 2차세계대전이 시작되며 그간 교류했던 동료 과학자들은 각기 소속된 자신의 조국과 인종에 의해 나뉘게 된다. 일부 과학자는 프랑스에 있었고 어떤 과학자는 덴마크에 살고 있었고 많은 과학자들이 추축국의 중심 독일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이제 이 과학자 동지들은 서로 다른 정치적 상황에서 그에 맞는 연구를 해야만 했다. 


 원자 스파이는 어느 날 날아든 한편의 논문에 의해 촉발된다. 앞서 말한 오토 한과 리제 마이트너의 그 논문 말이다. 핵분열은 많은 과학자들에게 충격과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다. 정치적 식견이 있는 과학자라면 이 발견이 전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유럽에서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견 있는 사람 중 이 논문을 발간한 “자연과학”의 편집자 파울 로스바우트도 있었다. 이미 나치 천하가 된 독일에서 이 발견을 독점하게 된다면 한참 후에 이 연구에 뛰어든 다른 나라들은 불의의 일격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나치는 이 논문을 출판한 오토 한과 로스바우트가 반역에 가까운 행위를 했다고 비난했는데 오토 한은 몰라도 로스바우트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한 것이 확실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지속적으로 연합군을 위해 정보를 모으고 넘겨줬으니까. 아무튼 이 논문으로 인해 전세계 과학자들은 핵분열 연구에 뛰어들었고 전세계 정치인들은 이 새로운 기술로 만들어질 무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미국 또한 진주만 공습으로 불의의 일격을 받고 2차 대전에 참전하기 전부터 이 기술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데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이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했고 나치가 이 기술을 갖게 되었을 때 발생할 힘의 불균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견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독일은 이미 ‘우라늄 클럽’을 조직하여 급격한 연쇄 핵분열을 통해 막대한 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는 폭탄에 대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 유명한 양자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있었다. 


 미국을 포함한 연합국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를 대응하고자 했다. 첫번째는 독일보다 더 빠르게 핵무기를 손에 쥐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독일의 핵개발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첫번째가 그 유명한 맨하턴 프로젝트이다. 워낙에 유명한 과학 프로젝트이기도 하고 최근 오펜하이머가 영화로 개봉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받게 되었다. 그리고 두번째가 바로 이 책 "원자 스파이"의 주된 이야기 이다. 재미있는 것은 맨하턴 프로젝트를 총괄했던 그로브스 장군이 이 방해공작도 지휘했다는 것이다. 이분은 미국의 핵무기에 대한 모든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 출처 : 예스24


 책에는 다양한 스파이들과 그들이 어떤 일들을 시도했는지 나온다. 그런데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멋진 스파이 활동은 없다. 재미있는 캐렉터를 가졌지만 어설프기 짝이 없는 스파이들이 나올 뿐이다. 제대로 된 파괴 공작은 핵분열 제어에 필요한 중수를 유일하게 생산하는 노르웨이의 베모르크 생산시설을 파괴한 것 밖에는 없다. 물론 이 파괴가 나치를 짜증나게 만들었지만 몇 주 만에 설비를 복구하고 연합국이 핵개발을 주시하고 있다는 경각심만 불러일으켰다. 그 외 요인 납치나 암살 같은 것은 전쟁이 거의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 진전되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게 진행된다. 그로 인해 연합국 수뇌부는 언제 독일이 그 무시무시한 무기를 사용해서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할까 걱정을 놓지 못하고 불안에 빠져 살아야 했다. 


 걱정과는 달리 초반의 연구 인프라와 연구 인력들이 우세했음에도 결국 미국이 먼저 원자폭탄을 손에 쥐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 후반에 독일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나치에 반대해 살짝 태업했다거나 물자가 막혀서 연구가 원활하지 않았다는 변명거리를 만들지만 어찌 되었든 독일 과학자들 특히 하이젠베르크는 히로시마에 폭탄이 터지기 전까지 미국이 절대로 자신들 보다 앞서 있을 거라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내 개인적인 견해이기는 하지만 미국이 앞선 이유는 오펜하이머의 방침이 컸다고 생각한다.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면 과학자들을 전문 분야에 따라 그룹을 나누어 연구하게 하지만 그 중 일부가 모두 모여 전체 연구에 대해 열린 논의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로브스 장군을 비롯한 정부 당국은 정보 보안을 이유로 이를 거부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이를 끝까지 밀어 붙인다. 20세기 초 미국은 과학의 변방이었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알려진 오펜하이머는 유럽에서 공부하고 미국에 양자역학을 소개한 선구적인 과학자로 묘사되지만 그가 노벨상에 이를 만한 연구업적을 남긴 탑급의 과학자는 아니었다. 반면 독일의 우라늄 클럽에는 하이젠베르크, 오토 한 등 당대에 이미 유명한 과학자들이 즐비했다. 미국은 다양한 나라가 다닥다닥 붙어서 서로 교류하고 있던 유럽과 동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유럽 과학자들은 자신의 국가를 위해 연구했고 서로의 연구를 공개하고 교류하길 거부했다. 더 심한 경우에는 서로 방해하기 까지 했다. 반면 미국은 배척되거나 쫓겨난 유럽출신의 과학자들 특히 유대인 출신의 과학자들을 받아들이며 인재를 확보하고 이들을 한곳에 모아 활발하게 논의하게 만들었다. 과학자들은 먼저 새로운 발견을 하기 위해 경쟁하지만 서로의 발견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들이다. 과학자들은 창조적인 사람들이지만 그것이 무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는 아니다. 창의성은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난무할 때 발현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미국은 이러한 방식으로 핵폭탄 개발에 훨씬 빠른 진전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많은 유럽 과학자들 특히 독일 과학자들을 흡수하여 자신의 역량을 크게 상승시킨다. 대표적인 사람이 이 책에도 언급된 베르너 폰 브라운이다. 그는 20대에 독일의 로켓 무기 개발을 담당했을 정도로 유능한 로켓 개발자로 그가 만든 V1과 V2는 2차대전 후반에 영국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와 그의 연구조직 100여명은 2차 대전 후 미국으로 이주하여 로켓 무기 개발과 미국 NASA의 설립에 절대적인 기여를 한다. 나치 V 로켓의 아버지이자 NASA의 아버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원자 스파이들이 원자 무기 개발을 방해하는데 한 기여는 미미했지만 전쟁 막바지에 다양한 연구 자료와 사람을 수집한 것은 미국의 과학역량을 높이는데 지대한 기여를 한 것이 확실하다. 


 이 책의 미덕은 확실하다. 긴 여운을 남기는 감동스러운 이야기도 아니고 무언가 새로운 정보 다발을 안겨주지는 않지만 독서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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