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도마뱀과 플라스틱 오징어 - 소어 핸슨
사진출처 : Image by Joshua Woroniecki from Pixabay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에 대한 뉴스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런 뉴스가 아니더라도 실제 생활에서 예전과는 다른 기상 이변으로 인해 정말 기후 변화를 넘어 기후 위기가 도래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음모론을 제기하며 지구온난화는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변화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고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데 공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그리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왜 그럴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 얼마나 문제인지 그리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 않고 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과학을 하는 입장에서 꽤 이 일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허리케인 도마뱀과 플라스틱 오징어’라는 매우 어그로성이 짙은 제목의 이 책을 읽고 나서 내 생각이 얼마나 얕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제목만 봐도 허리케인 도마뱀과 플라스틱 오징어가 무엇인지 매우 궁금해 지지 않는가?)
사진 출처 : 교보문고
이 책은 매우 쉽고 재미있다. 그렇지만 구성과 내용은 꽤 깊이가 있다. 아마 이 책 한 권을 읽는 것 만으로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생물종의 위기에 대해 꽤 깊은 지식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원인이 무엇인지, 2부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생물종에게 어떤 위협으로 다가오는지를 설명한다. 이어지는 3부에서는 이런 위협에 대해 생물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변화하는지 마지막 4부에서는 결론으로 실제 생물의 변화와 진화 그리고 과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한다.
1부를 읽으면 아마 이산화탄소가 왜 문제되는지 현재의 기후변화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에 대해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유명한 화학자 아레니우스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2배가 되면 지구 온도가 5~6도 상승할 것이라고 예견했다.그리고 지구의 이산화탄소가 2배가 되는데 3,000년 정도 걸릴 것으로 낙관했다. 그러나 지금 수준의 배출이 이어진다면 앞으로 30년 안에 그 수치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레니우스의 예상보다 20배는 빠른 듯하다.
2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생물이 기후변화로 인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풀어나간다.
예를 들어 두 생물종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게 진화했는데 기후변화에 서로 다르게 대응을 하게 된다면 두 생물종은 어떻게 될까? 여기 벌과 꽃이 있다. 벌은 해를 기준으로 계절의 변화를 읽는다. 매년 4월말의 해를 기준으로 활동을 시작한다고 하자. 이 벌에 의존하는 꽃이 있다. 이 꽃은 주변 온도에 따라 개화시기를 정한다. 기존보다 날이 따뜻해지며 꽃을 2~3주 먼저 피웠다고 하자. 그럼 벌은 꿀을 적게 모아 힘들어지고 꽃은 기껏 꽃을 피웠더니 수분이 안되어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된다. 두쪽 모두 자손을 늘릴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
생물이 기후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은 단순하다. MAD. Move 이동하거나, Adapt 적응하거나 이 둘 다 못한 경우는 결국 Die 죽게 된다는 것이다.
생물의 이주는 (예를 들어 펠리컨은 벌써 서식지가 북쪽으로 1400km나 이동했다고 한다) 지구 생물 이동의 극히 일부이다. 물론 기후 변화 전에도 때에 따라 이동하는 생물들 (예를 들어 철새처럼)이 존재했다. 그러나 현재 기후 변화로 인한 생물 종의 재배치는 우리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전체 생물 종의 25~85%가 이주 중인 것으로 측정되고 이는 마지막 빙하기 이후 최대 규모이다. 낮게 잡아도 25% 전체 생물 종의 1/4이 이동 중이라는 것이다.
동일한 환경에 속하는 생물종이 동시에 이동하면 그래도 문제가 덜 복잡해질 것이다 그러나 생물 종은 너무나 다양하고 이로 인해 개별 종들의 이동 속도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결국 기존에 공존하던 종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포식자, 경쟁자들과 공존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이는 각 생물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생물의 이동에 동물만 고려하는데 재미 이는 것은 식물도 이동을 한다. 그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미국의 학자들은 풍부한 미국 내 산림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나무의 이동 속도를 측정했다. 미국 참나무는 10년에 17km 이상 이동했고 정말 빠른 주엽나무는 무려 10년에 64km 이동했다. 재미 있는 것은 이들이 기후 변화에 의해 북쪽으로만 이동한 것이 아니다. 충분한 수분이 있는 서쪽으로도 이동했다는 것이다.
산림은 많은 생물의 거주 환경을 구성한다. 나무의 이동은 이들과 동반 관계인 생물의 이동을 촉진할 것이다. 기후의 변동은 동물(예를 들어 새들)의 이동을 야기하고 이는 나무의 이동(새나 다른 동물이 씨앗을 운반하여)을 촉진하며 나무의 이동은 다른 생물의 이동을 다시 촉진하는 식으로 이동은 가속화 된다.
그런데 모든 생물이 적응에 능한 것은 아니다. 어떤 종은 매우 유연하게 적응하지만 어떤 종은 현 상황에 최적화 되어 있다. 유연성, 가소성이 모든 생물의 생존에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최적화된 상태가 꽤 오래 유지 된다면 불필요한 가소성의 옵션을 들고 있는 것 보다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지난 긴 시간 동안 동일한 기후 조건이 유지되었다면 어떤 생물종은 그 상황을 기본값으로 놓고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을 포기하고 그 대신 그 조건에서 좀더 최적화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 이런 전문화는 기후가 안정된 동안은 생물종의 번성에 유리하지만 빠른 변화에는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어떤 것이 더 좋다 하는 판단은 접어두자. 어제 옳던 것이 오늘은 옳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 생물은 선택을 하고 선택에 따른 이점으로 인해 살아 남았다. 그 이점이 내일의 생존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고 해서 가치 절하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변화가 찾아오고 위기가 시작되면 생물도 변화한다. 그것이 느리기도 하고 빠르기도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상상했던 것 보다는 더 빠른 듯 하다.
카리브해의 작은 섬에서 이루어진 아놀도마뱀에 대한 조사는 생물종이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빠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강력한 허리케인이 두 번 연속 휩쓸고 간 후 이 도마뱀 종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조사했다. 허리케인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는 형질이 있는지 허리케인으로 인해 이 형질이 확산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연구진들은 바람에 버티는데 발가락의 둥근 패드가 앞다리가 길수록 유리하다는 것, 반대로 뒷다리가 짧아야 바람의 저항이 줄어든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실험 장면은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있다. 가느다란 막대 끝에 매달린 도마뱀이 강풍에 펄럭이는데 안타까우면서도 귀엽다.)
사짙출처 : 하버드대학교
그리고 두번의 허리케인 후 남은 도마뱀들은 기존에 측정했던 도마뱀들 대비 이런 특징이 더 도드라짐을 확인했다. 단 6주만에 자연 선택이 일어난 것이다. 그럼 이런 선택이 과연 후대에 까지 이어질까? 1년 후 그들의 후손을 조사 했을 때 허리케인에 적합한 형질이 유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생물은 우리의 생각보다 빠르게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다.
북미지역의 풍부한 조류분포 데이터와 기후 데이터는 기후 변화에 의해 새들의 서식지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보여준다. 새들은 습도도 기온도 기록하지 않지만 이미 그 변화에 맞추어 살 곳을 옮기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이제 어느 지역의 텃새가 더 이상 텃새가 아니게 되는 날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전체 지구의 역사를 놓고 보면 온난화와 빙하기 등 전지구적 온도 변화는 항상 있어왔다. 팔레오세-에오세 극열기에는 전지구가 지금보다 훨씬 뜨거웠다. 이런 온도 변화는 생물 종의 멸절을 수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원인과 속도 면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
저자는 마지막에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지금의 변화는 인류활동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 이야기는 인류가 방향을 바꾸면 이런 기후 변화도 방향을 틀 수 있다는 것이다. 미약해도 개개인이 깨어나서 행동해야 한다고. 그래야 정책이 바뀌고 전지구적 인류의 행동이 바뀔 수 있다고. 이미 배출된 이산화탄소 농도만으로도 앞으로 기후 변화는 한동안 가속화 되겠지만 그 속도를 늦추고 반대 방향으로 가게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실제 현재 과학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라고 알려진 기술은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하고, 전환하여 사용하고, 저장하는 활동이다. 공기 중 이산화탄소는 점점 농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산소나 질소 대비해서는 매우 낮은 농도이기 때문에 이들만 따로 포집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한 매우 안정한 물질이라서 다른 물질로 전환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이 어려운 일을 우리 식물 친구들은 광합성이라는 매우 효율적인 방식으로 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장하는 것도 아직까지는 꽤 돈이 드는 작업이다.
이들 기술은 꽤 오래 전부터 연구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서야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렵고 비효율적이라는 말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의미고 결국 경제성이 안 나오는 공정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돈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기업이 돈이 안 되는 것을 연구하겠는가? 결국 생물이 변화에 의해 선택압을 받듯이 기업이나 정부도 기후변화라는 선택압을 받아 정책과 규제라는 변화에 대한 압력 요인을 만들어야 한다. 저자가 말한 깨어있는 개개인이 있을 때 이런 정책과 규제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새로운 규제로 이산화탄소를 줄이지 않으면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면 예를 들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같은 정책과 규제가 생긴다면 어떻게든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기술을 개발해서 사용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 더 싸게 먹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공기 중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감속시키고 더 나아가 감소시키는 것까지 가능하게 할 것이다. 지금 이런 활동을 시작한다고 해도 이미 시작된 온난화는 일정 기간 가속될 것이다. 자연은 그렇게 쉽게 방향을 틀지 않는다. 우리가 온난화의 가속을 밟는데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듯이 브레이크를 밟는 것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우리 인류처럼 적응할 수 없는 많은 생물 종들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살려낼 수 있을지 그들이 그 변화의 변곡점을 넘을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게 할지는 또 다른 숙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