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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 회사원 김씨 Feb 12. 2024

사랑, 이제 우리 온전한 둘이 되어

철학, 삶을 만나다. -강신주

 나와 와이프는 친구로 시작하여 연인이 되었고 연인을 거쳐 부부가 되었다. 친구로 몇 년을 지내 보니 이 사람 괜찮구나 싶어 연인이 되었는데 연인이 된 후 내가 친구일 때 몰랐던 부분이 너무나 많아 당혹스러웠었다. 그런 부분들에 익숙해져서 이 사람과 부부가 되어 평생을 함께 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했더니 또 내가 모르던 부분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내 신혼 생활 반년은 전쟁의 연속이었다. 격렬했던 전쟁이 소강상태가 될 때까지 또 반년이 넘게 걸렸다. 남들은 깨가 쏟아지는 신혼이라고 하는데 왜 우리는 이리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힘들어 했을까?



사진출처 : 예스24

“타자란 우선 나와 다른 삶의 규칙을 가진 존재를 의미한다.”

철학, 삶을 만나다. -강신주 (p273) 

 

 우리는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한다. 많은 경우 사랑의 결실이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게 되면 둘이 하나가 되는 합일의 경험을 하게 된다. 결혼하게 되면 가족이라는 하나의 울타리에 묶이게 된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이 너와 내가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잠시 지간 합일의 ‘느낌’을 받았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번도 하나였던 적이 없다. 


“사랑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진리를 기억해야 유지될 수 있다.” 

철학, 삶을 만나다. -강신주


 나와 너는 다른 존재이다. 나에게는 나의 세계가 너에게는 너의 세계가 있다. 만약 우리가 하나라면 두 개의 세계가 아닌 하나의 세계만이 존재할 것이다. 결혼은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같은 방향을 보더라도 두 시선이 같을 수는 없다. 만약 하나의 세계로 합쳐졌다면 우리는 그 많은 다툼을 겪지도 않았으리라. 

 난 너를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너 또한 나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가 나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할 때 커다란 분노를 느꼈으리라. 만약 너가 나와 다르다고 너는 결코 나를 알지도 또 이해하지도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나는 너에게 분노하지도 싸우지도 않았으리라. 나의 순수한 착각으로 분노하고 슬퍼하고 좌절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그저 나 자신의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내 밖에서 그런 나를 보고 너 또한 슬퍼하고 좌절했을 테고. 




“만약 어떤 사람의 삶의 규칙이 나와 완전히 동일하다면 우리는 그를 사랑하거나 미워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의 힘이란 바로 ‘차이’의 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철학, 삶을 만나다. –강신주  (p273)


 사랑이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둘로 존재하는 것이다. 나와 다른 끝없는 너의 세계가 있고 너와 다른 끝없는 나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연히도 어느 순간 만난 것이고 기적같이 실낱 같은 연결점을 찾은 것이다. 

 우리가 하나가 되고자 서로의 세계를 침범한다면 각자의 세계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 나의 세계를 그리고 너의 세계를 부정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사랑하는 존재로 남아 갈 수 없으리라. 한 세계의 소멸로 이루어진 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사랑은 서로 다른 두 세계의 기적 같은 조우이다. 그리고 그 두 세계가 온전히 존재할 때 지속될 수 있는 아주 약한 연결이다. 그러니 나와 다름을, 나를 모름을 슬퍼하지 말라. 우리는 그저 가느다란 실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끈이 끊어지는 순간 두 세계는 실이 끊어진 풍선처럼 각자의 하늘 위로 날아갈 것이다. 




 네가 나와 합일되어 사랑한다는 것은 너와 나의 경계가 없어지고 내가 곧 너이고 네가 곧 내가 된다는 것이다.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되면 나는 너를 사랑하는 것일까 내가 된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그러한 것이 사랑이라면 즉 하나가 되어야 사랑이라면 이것은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너로서 존재하는 너가 아닌 나로서 존재하는 너를 사랑하는 것 이것이 자기애가 아니라 무엇이겠는가? 그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보는 것이 아닌 마주 앉아서 보는 것에 익숙해 져야 한다. 그래야 차이를 더 자세히 보고 친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철학, 삶을 만나다. –강신주


 지금 우리 부부는 각자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어디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 휴전 후 경계를 만든 것이다. 이 휴전이 유지되려면 경계와 경계 그 너머에 존재하는 타자가 나와 다른 존재임을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우리는 때때로 그 경계를 잊어버리고 무심코 넘어가고는 한다. 그리고 서로 화들짝 놀란다. 경계 너머에는 여전히 낯선 이가 살고 있고 나는 매일 그와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낯선 사람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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