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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팰럿Pallet Apr 05. 2021

장마 같은 봄비가 지나간 청명

봄을 담을 가래질을 시작하다

청명한 청명

4월 3일 토요일. 

오늘이 '장마'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 그리고 맑게 갠 일요일 아침. 오랜만에 화창한 공기. '날'그대로 청명한 '청명'의 아침이다.


4월 4일은 청명(淸明)이다.

하늘이 맑아진다는 절기. 조상님들은 대단하다. 이 절기를 어떻게 깨우치신 걸까.

옛날에는 청명의 날씨로 그 해 농사를 점쳤다고 한다. 이번처럼 좋은 날씨면 풍년이 했다니, 올해는 시작이 좋다.

청명의 아침

이번 주의 작물 일지



시금치

지난주만 해도 겨울을 이겨낸 시금치가 단단하게 굳은 밭에서 작게 움츠려 있었다. 그래서 김매기를 해 주었다. '김매기'는 작물 주변의 흙을 호미질을 해서 속의 흙이 겉으로 드러나게끔 하는 것인데, 땅이 숨을 쉴 수 있게 해 준다. 그리니 자연히 작물의 뿌리에도 산소가 닿을 수 있게 되고, 작물이 쑥쑥 자라난다.

사실, 김매기는 책에서만 읽었지 제대로 알고 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긴 했는데, 효과는 정말 컸다. 지난 주만 해도 시금치가 잡초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작고 보잘것없었는데, 이번 주에는 '여보시오 초보 농부 양반. 내가 시금치요, 시금치 여기 있소!'라고 말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초록을 내뿜고 있었다.

시금치가 단숨에 커버렸다.

대파

시금치가 기운차게 자란 것과는 달리, 파는 옮겨 심어서 인지 몸살을 앓고 있었다. 비실비실 잘 크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작년보다는 좀 더 비옥한 흙을 만들었으니, 나아지길 바란다.

몸살을 앓고 있는 대파들

감자

감자는 지난주에 덮어 놓은 야자메트 그대로 큰 변화는 없었다.

이런 걸로는 전혀 보온이 되지 않는다. 비닐로 멀칭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또 어디선가 들었지만, 초보 농부는 고집 세고 실험적이지 않은가. 아내와 나는 이 실험을 지속해보기로 했다. 비록 땅의 보온을 잘 돕지 못해서 감자는 늦게 나올지 모르지만, 요즘처럼 변덕스러운 날씨에 일찍 나왔다가 냉해를 입는 것보다는, 따뜻한 봄의 기운이 지속될 때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이게 뭐냐고요? 감자밭입니다.

도전 새로운 감자밭

옛날의 농부님들은 청명에 논밭에 가래질을 하셨단다. 그래서, 나도 감자밭을 위한 가래질을 했다.

딱 봐도 작물이 잘 안 자랄 것 같은 쟁기바닥층 땅

여기는 '쟁기바닥층' 땅이다.

쉽게 말해서, 이쪽 땅은 이 토지를 분양받고, 포클레인과 트럭에 의해 흙이 옮겨지고 밟힌 후 가장 오래 그대로 유지된 딱딱한 땅이다. (이런 땅을 쟁기바닥층이라고 한다.) 이런 땅은 물을 뿌려도 잘 스미질 못하고, 흙이 쉽게 차가워지고 빗물도 이 층을 쉽게 통과하질 못한다. 즉, 식물의 뿌리가 살기 어려운 땅이다.

그래서, 이 땅엔 꽃이나 심을까 했지, 딱히 밭으로 활용할 생각이 없었다. 근데, 씨감자가 너무 많이 남았다. 남은 씨감자를 버릴 수도 없고. 이미 주변 이웃들은 감자 심기를 끝낸 상태. 그러니 어쩌나. 더 심어야지.


이런 쟁기 바닥층을 살릴 방법은 없나? 있지. 노동을 하면 되지. 일단 흙을 잘게 부수어야 한다. 그리고, 뒤집어엎어 줘야 한다. 하지만 진흙이나 다름없는 흙을 뒤집어엎는다고 확 좋아지긴 어렵다. 그래서, 산에 가서 바닥을 덮고 있는 낙엽더미를 비료포대에 한가득 긁어모아 와서, 잘게 부수고, 뒤집은 흙과 섞어줬다. 이제 높은 이랑을 만들어준다. 높은 이랑을 만드는 이유는 감자가 물을 싫어하니까 물이 쉽게 빠지라고 만들어 주는 거다. 참고로, 물을 싫어하는 대표 작물로는 토마토와 감자가 있다. 이런 작물은 장마가 오기 전 끝을 봐야 한다.

이것도 감자래요

토요일 비가 온 뒤에 이랑을 보니, 배수가 잘 되지 않는다.

이렇게 식물이 자라기에 혹독한 땅에 과연 감자가 잘 자랄 수 있을까?

단번에 좋은 흙이 되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물이 잘 빠지게끔 배수로를 다시 정비했다. 그리고 감자를 심었다. 이 실험의 성공은 3개월 뒤에 공개된다.



포대 감자 화분

이 실험은 한 번 더 이뤄졌다. 마지막 실험은 산에서 퍼 온 흙이 담긴 비료 포대다. 포대 절반 정도에 산에서 퍼 온 흙을 담고, 씨감자를 한 알씩 넣어줬다. 그리고 포대 하단에 구멍을 충분히 뚫어서 배수가 잘 되게끔 만들어 줬다.

산에서 퍼 온 흙으로 만든 감자 화분 포대

이렇게 제대로 가꾼 나무 틀밭의 감자, 쟁기 바닥층으로 된 거친 땅의 감자, 그리고 오랜 기간 산이 만들어준 부엽토 포대 속의 감자. 어떤 감자가 가장 잘 자라고, 알찬 결실을 줄지 3개월 뒤에 다시 써 보겠다.

지난주에 심은 감자가 싹이 올라왔다! (가운데 빨간 싹. 착한 사람만 보인다)

완두

지난주에 심어둔 완두는 큰 문제없이 잘 자라고 있다. 갸륵한 완두에게는 썩지 않을 동아줄을 내려주었다.

완두야 어서 동아줄을 타고 올라가렴

딸기

슬슬 욕심이 과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딸기도 심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베리류를 좀 더 시도해 보기 위해 복분자도 심었다. (나무들은 차주 글에서 좀 더 다뤄보겠다)

딸기를 과연 새들에게 안 뺏길 수 있을까



꽃들

비가 내린 뒤 꽃밭에는 이름을 다 잊어버린 각가지 꽃들이 초록 잎을 펼치고 있다.

겨울을 잘 이겨내주다니, 참 대단하다 너희들.

지난주에 뿌려놓은 수레국화 씨앗은 어떻게 되었을까?

잘 자라려나 걱정했는데, 단단한 땅을 뚫고 싹이 잘 나오고 있었다.

수레국화 싹이 귀엽다

작년에 심었던 앵두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앵두꽃이 너무 예쁘다

앵두꽃. 정말 오랜만이다. 여덟 살 때 집 뒷동산에 있던 앵두나무가 새록새록 생각난다. 그 앵두나무에 앵두가 가득 열리면, 형이랑 같이 나무 옆에 서서 앵두 계속 따먹었는데. 그 앵두 맛이 다시 돌아올까. 기분이 묘하다. 몽글몽글 하다.




농막은 평화롭다

비 온 다음날의 농막은 평화롭다. 오랜만에 맑고 따뜻한 날씨.

아직 가꾸지 않은 사방지 건너편 땅은 어떨까.

건너편 쑥밭이 쑥밭이 되었다?

사방지 건너편에는 쑥 군락지가 있는데, 비가 한 번 오고 나니 더욱 잘 자랐다. 여기 쑥을 뜯어다가 가자미 쑥국을 끓여 먹었는데!! 정말 환상적이었다. 야들야들한 쑥의 식감과 향, 그리고 적당히 담백한 가자미가 잘 어우러져서 정말 맛있었다. 특히, 어린 쑥은 쑥이 줄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향을 내주었다. 엄지가 자동으로 올라가고, '음'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끌어올려졌다.

그래서 이번 주에도 잊지 않고, 쑥을 잔뜩 캐냈다. 이 쑥으로 아내는 쑥카스테라 빵을 도전해보겠다고 한다.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새로 만든 옥수수를 심을 밭

아주 척박한 땅이지만, 돌을 골라내고 퇴비를 부어놨다. 옥수수는 아직 심으려면 멀었다. 그래서 이제야 밭을 준비해 두었다.

퇴비에서 가스가 좀 빠질 때 즈음이면, 집에서 키운 옥수수 모종을 가져와야지. 옥수수는 4월  이후에 심는 게 좋다.


집에 육묘 상황은?

파릇파릇 잘도 자란다
옥수수와 방울토마토, 뒤로 보이는 단호박

놀랍게도 정말 하루가 다르게 엄청나게 자라고 있다.

4월 중순까지는 어떻게든 집에서 더 키워야 하는데, 지금 상황으로 보면 다음 주면 육묘 트레이를 뚫고 나올 기세다.


평일은 회사 일이 분주하게 돌아가 여유가 없다. 집의 육묘 트레이에 아기 작물들도 분주하게 자라고 있다. 주말에 양평엔 분주하게 새로운 농막과 집들이 지어지고 있다.

어디 하나 바쁘지 않은 곳이 없다. 다들 자기 나름대로 정신없이 바쁜 하루들을 보내고 있는데, 그 분주함에 소리는 없다. 마음속으로는 다들 바빠, 정신없어를 연신 외치고 있을지 모르지만, 지켜보는 풍경은 시끄러울지언정, 그 모습은 평온하다.

아마 하늘 저 높이서 바라보는 우리들의 삶 역시 평온해 보이겠지.

멀리서 보면,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삶이란 평온 그 자체다.

내 안의 분주함으로 잠깐 지칠 때, 잠시 주변을 돌아다보자. 아마 그 평온함에 피로가 씻겨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여유를 잃지 않길 바라며, 자기 삶의 갑이 되길 바라며. 또 한 주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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