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에 맹꽁이와 각종 산새들의 소리 배경음악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짙은 색상의 산과 들은 옅고 밝은 색상으로 배경을 바꿔가고 있다. 날씨도 꽤 더워져서 반팔을 입고 일을 해도 얼마든지 티셔츠에 염전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지난주에는 큰 변화랄게 없는 아주 평범한 주말이었다. 그래서 사진도 찍은 게 거의 없었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야 남긴 게 없음을 알았다. 하지만, 이번 주말은 달랐다. 모든 게 달라졌다.
이번 주의 농막 채소 성장기
농막에 오르는 길에 핀 분홍빛이 깊게 감도는 벚꽃나무가 꽃잎을 흐트러뜨리며 우릴 환영했다. 무슨 환영인가 싶어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감자밭에 감자들이 초록 잎을 쭉쭉 피어올리고 위풍당당히 서 있었다.
사진을 잘 보여주고 싶은데,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이 없다.
그뿐인가. 씨앗을 뿌려놨던 열무도 감자만큼이나 올라왔고, 딸기도 작은 초록열매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집에서 육묘해 온 옥수수와 루꼴라, 고수도 각각 자리에 잘 심어준다.
집에서 팔뚝만 하게 자란 옥수수 모종을 데려왔다 앞쪽에 심은 게 왼쪽에 루꼴라, 오를 쪽에 고수
지난주와 그 전 주에 씨앗을 뿌려 둔 참나물과 당근은 싹이 조금 올라왔다.
시금치는 3주간 잘 뜯어먹고, 방치해 두었더니 꽃대가 잘 올라온다. 씨 잘 받아서 또 잘 키워야겠다.
이제 꽃대로 가득한 시금치 밭 섞어짓기의 시작
아내는 섞어짓기를 하겠다며, 땅콩을 심었다. 땅콩과 섞어짓기를 할 작물은 방울토마토다. 섞어 짓는 작물은 그 조합이 여러 가지이니, 원하는 작물들을 잘 찾아서 준비해보자.
섞어짓기란 두 작물 이상을 같은 장소에 심는 건데, 이렇게 함께 심는 이유는 병충해, 거름 보완 등의 이유가 있다. 한 작물은 싫어하고, 다른 한 작물은 좋아하는 벌레가 있다면, 농약을 뿌리지 않고도 벌레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장점이 생긴다. 그리고 옥수수처럼 거름을 많이 요하는 작물의 경우, (스스로 흙을 질소화 하는 뿌리혹박테리아를 달고 사는) 콩과 함께 심으면 콩이 거름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보완적인 작물 키우기를 섞어짓기라고 한다. 섞어짓기는 관련된 자료나 책들도 많이 나와 있다. 미리 작물들을 계획하고, 그중에 어떤 작물이 서로 보완이 되는 섞어짓기 식물인지 찾아보면, 손도 덜 갈지 모른다.
우리도 올해 섞어짓기를 처음 해 보는 터라, 해 보면서 그 결과가 어떤지 또 공유해 보겠다.
땅콩을 두 알씩 심었다 이렇게 땅콩을 미리 먼저 심었고, 다음 주에 집에서 육묘한 방울토마토를 데리고 와서 함께 심어줄 예정이다.
나의 작은 해바라기 꽃밭은?
지난주에 해바라기 씨앗을 넓게 파종을 했는데, 잎 하나 나온 녀석이 없다. 집에서 딸아이가 키운 해바라기는 벌써 잎이 쭈욱 나왔는데.. 혹시 새들이 파먹은 건가. 새들이 먹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아무런 흔적이 없는데..
땅이 좋지 않아서, 물이 너무 말라버려서 그런가.
산에 얼른 올라가서, 낙엽 피트모스들을 모아 왔다. 바닥을 낙엽으로 좀 깔아주면 수분이 좀 덜 증발하고 땅도 따뜻해지겠지. 다음 주에는 꼭 해바라기 싹도 볼 수 있길 바라본다.
나의 해바라기 꽃밭이다. 피트모스까지 준비 완료. 어서 나오렴
과실나무들
앵두나무에 앵두가 조그맣게 열렸다. 딸내미는 10알이 넘게 생겼다며 좋아한다. 자두도 매미나방 유충에 잎이 조금 먹긴 했지만, 잘 크고 있다.
매미나방 유충이 참 극성이다. 작년처럼 징그럽게 떼로 몰려들까 걱정이다.
아내가 지난 몇 주동안 양동이에 빗물을 받고, 카놀라유에 이것저것 마녀의 레시피처럼 섞더니 비누거품이 나는 오일을 만들어냈다. 거기다가 유황을 한 스푼 넣고 분무기에 넣고 뿌리니 벌레들이 도망간다. 신기하다. 아내가 이제 마법도 배우나 보다. (아내가 만든 건 자닮오일, 자닮유황이라고 한다.)
확실히, 작년보다는 일이 적다. 작년에는 돌밭에서 돌을 빼는 일부터 시작했는데, 이젠 밭도 잘 갖춰줬고 필요한 것들도 어느 정도 마련이 되다 보니, 주변을 조금씩 어떻게 가꿀지 생각하게 된다.
그 밖에, 아내와 조팝나무 아주 작은 아기나무들을 사서 건너편 산 밑에 일렬로 심었다. 아직은 사진으로 보여줘도 어디에 심었는지 모를 만큼 작은 나무들이지만, 3년 뒤. 5년 뒤. 10년 뒤 더 활기차고 아름다워질 우리의 공간을 생각하며 작은 변화의 씨앗과 아기 모종들을 심는다.
마실
아내와 동네 마실을 다녀왔다.
산괴불주머니, 현호색, 앵초, 제비꽃, 개불알꽃 등등 다양한 들꽃들이 우릴 반긴다.
산에 핀 벚꽃과 이름 모를 꽃나무들이 정말 아름답다.
귀여운 아내. 화사한 꽃산 사진으로 담으면 그 감동이 눈에 담았던 감정에 10분의 1도 전해지질 않아 아쉽다.
일이 바빠서 일까, 아니면 내 마음의 여유가 동이 나서 일까,
몇 주간 글도 제대로 쓰지도 못했고, 책을 읽을 여유도 없었다.
난 이런 작은 상황에도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지만
내 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양평의 자연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고 또 계절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 흐름이 가끔은 지나치기 쉬울 만큼 초라하고, 또 가끔은 활력으로 넘치기도 한다.
'꽃이 피는 활력만을 봄으로 바라본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봄꽃을 내기 위해 움츠렸던 지난겨울의 뭉뚝함과
또 봄의 온기를 안고 피웠던 작은 싹들과
그리고 다시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단단해지는 성장의 순간들이 길게 있었는데도
그중에 난 꽃이 피는 활력만을 봄으로 본 건 아닐까.
그들이 모여 내게 보여준 계절의 흐름과 인상을 생각하며
일이 좀 안 풀린 것 갖고, 글이 마음처럼 안 써지는 걸 갖고, 툴툴거리던 마음의 먼지를 툭툭 털어본다.
봄이다.
양평에도, 우리의 4월에도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