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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팰럿Pallet Aug 21. 2018

성북동에서 을지로 4가까지 눈물을 찾습니다.

자작시#031011

성북동에서 을지로 4가까지 눈물을 찾습니다.


길거리에 바닥까지 깔린 어둠

그 사이를 헤쳐 을지로 4가 지하도까지 걸어온 노숙자 이순정 씨.

잠자리를 위해 신문을 찾던 순정씨는 우리 아버지를 만나셨습니다.

순정씨는 이름도 모르는 우리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우리 집까지 왔습니다.

인정 많은 아버지는 이순정 씨에게 옷을 주고 씻기도 권하였습니다.

순정씨는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보이며 을지로 4가 지하도로 돌아가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곳엔 순정씨를 기다리는 영호씨와 효길씨와 호철씨가 있다고 합니다.

순정씨는 아버지의 성화로 건너방 지글지글한 방바닥에 몸을 기대었습니다.

새벽까지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순정씨는 신발을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순정씨는 음주운전을 하던 택시에 치어 죽었습니다.


성북동에 사는 구진길 씨.

구진길 씨는 얼마 전에 친구 때문에 모든 걸 날려버렸습니다.

이제 와서 남은 것이라곤 운전대를 잡을 줄 아는 손뿐이었습니다.

하나뿐인 딸과 부인은 울며불며 성북동에 이삿짐을 옮겼답니다.

그래도 성북동입니다.

하지만 가진건 영업용 택시기사 허가증뿐입니다.

진길 씨는 운전을 합니다.

진길 씨는 꼭 바른 길로만 갑니다.

진길 씨는 규정 속도를 넘긴 적이 없습니다.

진길 씨는 영업용 택시기사 중에 제일 일을 못하기로 소문났습니다.

딸과 부인은 성북동 반지하 단칸방에서 꼭 껴안고 떨며 밤을 지새웁니다.

진길 씨는 술을 마셨습니다.

울컥해서 술을 마셨습니다.

진길 씨는 그날 순정씨를 만났습니다.

놀란 눈의 순정씨를 한 1초 정도 봤답니다.

자기와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을 보고 무척이나 반가웠다고 합니다.

새벽은 참 짧았습니다.

순정씨는 깨끗하게 씻었던 얼굴 위로 빨간 피를 적셨습니다.

진길 씨는 부인과 딸의 눈물을 피해서 달렸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엔 순정씨의 눈물이 있었습니다.

진길 씨 눈엔 눈물이 고입니다.

아버지 눈에도 눈물이 고입니다.

아직도 을지로 4가 지하도에는 순정씨를 기다리는 영호 씨와 효길 씨와 호철 씨가 있고

성북동에는 진길 씨를 기다리는 딸과 부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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