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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팰럿Pallet Mar 02. 2020

욕실에 창문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

욕실 창문에 대한 묘한 욕심

난 여름을 참 싫어한다. 그중에서 장마가 진 여름의 날들을 특히나 싫어한다.

그 습습하고, 눅눅한 느낌이 싫다.

그래서일까, 사우나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샤워는 좋아하지만 샤워 후 뭉개뭉개한 욕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그렇게 습해진 욕실 문이 닫혀있다가 열렸을 때 느껴지는 습하고 퀴퀴한 공기 역시 매우 별로이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건, 습한 공기와 창문에 관한 이야기다


서울로 이사 와서 처음 살았던 집은 반지하 2칸 방이었는데, 수압이 약해서 화장실은 두 계단을 올라야 하는 신기한 구조였다. 그래도 그곳이 좋았던 것은 욕실이었다. 창문이 있는 욕실. 창문은 꽤 컸기에, 가끔 집 열쇠를 잊고 집에 돌아왔을 때 화장실 창문은 참 요긴했고, (욕실 창문을 문처럼 드나들었음) 단 한 번도 습한 화장실의 공기를 나에게 준 적이 없었다.

두 번째로 이사 간 집 역시 화장실에 큰 창문이 있었다. 하지만 그 집은 물탱크도 있었고,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화장실은 동네 귀뚜라미들의 클럽과 같았다. 밤새 불러대는 귀뚜라미들의 떼창 소리가 고개를 젖게 만들었다.

이때까지의 집들은 내 기억 속에는 어른들 기준으로 쾌적하지 않은 집이었다. 하지만 그다음 이사 간 집은 쾌적한 새 빌라였는데, 이 집은 요즘 집처럼 욕실에 환풍기만 있을 뿐 창문이 없다. 그다음 이사 간 집도. 결혼해서 새로 장만한 집도. 그리고 지금의 집도.

더 좋은 아파트를 못 가봐서일지는 모르겠지만, 아파트들은 대부분 욕실에 창문이 없는 듯하다. 그리고 안방에 딸려있는 욕실은 드레스룸을 거쳐가야 있는 구조다 보니, 집의 모든 창을 열어 환기를 해도 습기가 쉬이 빠지지 않았다.


시대가 변해서 욕실의 환경도 좋아지고 있는데, 왜 창문은 작아지다 작아지다 못해 없어져버리고 환풍기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언제부터 화장실과 욕실에는 창문이 사치가 되고, 비효율적인 요소가 되었을까. 

욕실의 문을 열었을 때 눅눅하지 않으려고, 제습기를 사다가 돌리는 집도 있다고 들었다. 

이젠 쾌적한 욕실을 위해 창문이 아니라 전자제품을 들여놔야 한다니..


필요한 건 그저 모든 방에 창문이 있길 바라는 것이고

그 방 중에서 욕실도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인데, 이건 너무 욕심인가


욕조에 앉아 있다가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욕실에 창문이 있는 집에 살고 싶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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