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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팰럿Pallet Nov 24. 2020

농막의 소소한 월동 #3

봄 같기도 겨울 같기도 한 주말

올해 여름은 전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이 많았다. 그래서 북극의 빙산이 크게 줄었다는 뉴스들이 줄을 이었다. 그래서 이번 겨울이 2012년 이후 가장 심한 추위가 올 가능성이 높다고 기상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나 역시 이번 겨울이 영화 투모로우 같은 한파가 찾아올까 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웬걸.. 기상청과 기상전문가들이 항상 그렇게 말하듯이, 날씨란 예측할 수가 없다.


요즘 보면 지금이 봄인가 싶다가, 또 어떤 하루는 '와 진짜 한겨울이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또 하루 이틀 지나면, '아, 속았네. 그냥 예년과 비슷한 추위인데.' 하게 된다.

갈팡질팡하는 날씨 속에 며칠 전에는 폭우와 큰 바람이 불었다. 그 영향으로 우리 농막의 타프와 지주목도 일부 파손되는 슬픈 일도 벌어졌다.

하지만, 비 온 뒤 방문한 농막과 텃밭은 정말 봄과 같았다. 풍경은 늦가을의 풍경이지만, 바람과 햇살은 온기로 가득했고, 봄보다 더 말랑한 흙이 우리 부부의 두 손에 농기구를 들게 했다. 무엇에 홀린 듯이 우린 오전 내내 잡초 뽑기와 텃밭 정리, 감자 자라듯 자라나는 돌멩이 정리를 했다.


금세 점심시간이 찾아왔고, 아내가 야심 차게 준비한 비장의 요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솥뚜껑으로 지글지글 주꾸미 삼겹살


이번 점심에는 아내가 벼르고 벼르다가 구입한 솥뚜껑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맛깔난 요리를 하기로 했다.

지난번에 뒷산에 쓰러진 나무들을 주워와서 잘 말려두었는데, 오늘 도끼질을 해서 적당한 장작을 만들어 불을 피웠다. 탁탁탁 마른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에 각종 채소가 먼저 볶아지고, 이어서 주꾸미가 고추장 양념을 뒤집어쓰고 군침을 자극하면 그 주변으로 삼겹살들이 강강술래를 하며 하나가 된다.

진짜 인생 최고의 쭈삼(주꾸미 삼겹살)을 영접했던 시간.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감동의 맛이었다.

배도 채웠으니, 다시 일을 해볼까?



나무 월동을 어떻게 할까?


다른 농막들은 이미 지난주에 월동 준비를 거의 마쳤다. 우리도 거의 했지만 나무 월동 준비는 좀 늦은 편이다.

나무 월동 준비는 11월 초가 적절하다고 한다. 뭐, 지금도 11월 초 같은 날씨이니 늦지 않았다고 스스로 타협을 하며 시작한다.

겨울옷을 입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 농가에서 받아온 볏짚을 활용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흰색 수성페인트를 바르는 경우도 있고, 부직포나 스티로폼, 우리처럼 녹화마대(코이어 네트)를 활용하기도 했다. 우리가 녹화마대를 고른 것은 여름에 사용하고 남은 재고가 있었기 때문이지 별다른 이유는 없다.


겨울 옷을 입히는 가장 큰 이유는 2가지 정도 있다.

첫 번째는 보온의 기능. 말 그대로 추위에 얼어 죽지 않게 옷을 입혀주는 것

두 번째는 해충 포집의 기능. 보통 이를 '잠복소'라고 한다. 나무에 사는 해충들이 겨울이 되면 흙 속으로 이동하는데, 이렇게 잠복소를 감싸 두면, 여기가 흙과 별반 다르지 않네 생각하고 이 잠복소 속에서 겨울을 난다. 그러면 봄에 이 잠복소를 벗겨내 태워 잠들어 있던 해충도 하늘로 같이 보낼 수 있단다.

하지만, 우린 첫 번째 보온 기능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아래와 같다.

마치 미이라처럼 꽁꽁 싸맨 자두나무. 아랫쪽만 옷을 잘 입힌 소나무.
지주대와 함께 겨울을 잘 보낼 포도나무

좀 무식하게 싸놨는데, 양평이 겨울이 많이 춥다니 왠지 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잡초가 많이 자랐다


겨울에도 잡초는 자란다. 그리고 이미 죽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잡초들도 무성하다.

이번 주말의 비는 묵은 잡초들과 풀을 뽑는데 더없이 좋은 여건이 되었다. 땅이 촉촉해져서 손으로 잡아 뽑아도 쉽게 쉽게 뽑힌다.

법면에 잡초를 뽑고 있다.

나는 잡초들 그대로 두는 것도 딱히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긴 하지만, 농작물에 주는 피해나 관리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점을 생각하면 뽑을 수 밖에는 없다.

잡초를 걷어내니 좀 깔끔해 보인다

전후를 잘 비교해 찍은 사진이 없어 아쉽긴 하지만, 나름 수월하게 잡초 정리도 끝냈다.


잡초 정리를 끝내고 나서는 정원에서 키우던 스피아민트 잎을 따다가 허브차를 내렸다.

스피아민트 차. 상큼하고 훈훈한 맛이다

오후 2시만 지나도 해가 가려져 추워지기 시작하는 양평의 시골. 이런 차 한 잔이 주는 따뜻한 휴식은 정말 꿀맛 같다.



농막 안은 안 추워요?


안 춥다 안 춥다 해도, 여긴 시골이다. 해가 지면 무척 춥다. 특히, 전기 패널로만 난방이 가능한 농막 안은 더욱 그렇다. 전기 패널은 레벨 1로만 세팅을 해도 바닥은 금방 따뜻해지지만, 공기는 차다.

나야 뭐 추위를 많이 타지는 않는 편이라 크게 문제가 없는데, 우리 아내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래서 예전에 빙어 낚시할 때 사 둔 미니 가스스토브를 꺼냈다.

생긴 모양이나 크기는 이 정도 된다.

부탄가스로 열을 내는 미니 스토브

부탄가스로 쓰는 스토브라, 간편하기도 하지만 정말 빨리 닳기도 한다. 그래도 사용해보니, 1단으로 설정해두고 저녁나절을 쓰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다. 부탄가스 하나에 하루 정도 아껴 쓰면 쓸 수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이렇게 주변에 두고 몸을 덥히는데 쓴다

한 시간 정도 켜 두면 얼굴까지 뜨근뜨근 해 져서 켜다 끄다를 반복해가며 적절하게 사용하면 겨울에 가끔 농막 방문해서 사용하는 데는 크게 문제없을 것 같다.

예전에는 화목난로, 팰럿 난로, 등유난로, 전기 라디에이터 다 고민해 봤는데, 6평 농막에서 뭐 그렇게까지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이 작은 스토브 하나로 만족하며 지낸다.  



그 밖에도 정원의 모양 틀도 다시 잡고, 겨울을 날 시금치와 돌산갓, 비트 등의 일부 채소도 비닐하우스도 해 주었다. 흙이 꺼진 자리에는 돌멩이를 모아 채우고, 석축 사이 구멍 메우기도 했다. 피트모스 거름 작업도 했고, 웃자란 뒷산 나무들도 잘라주고, 뒷마당의 바닥 블록 깔기도 딸내미와 마무리했다.


이렇게 주말을 순식간에 일로 채웠지만, 사진으로 찍고 보면 크게 변화를 느끼기 어렵다. 근데, 그게 참 좋다. 많은 일을 해도 크게 변하지 않는 풍경들이 좋다. 그저 자연스럽게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우리의 작은 변화가 마음에 든다.

노동 후에 아내와 딸과 함께 돌아보는 시골길 산책이 좋고, 산책하다가 차들이 오면 비켜주며 일렬로 줄 서는 우리의 모습이 정겹다. 그 정겨운 모습을 휴대폰 사진으로 남기고 잘 나왔다며 함께 보며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 다시 직장과 집을 오가는 일상으로 돌아와 꿈같았던 주말을 사진으로 돌이켜보는 시간이 좋다. 그렇게 다 좋다는 게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코로나19로 평범한 일상을 즐기는 게 큰 혜택같은 요즘. 모두에게 평범한 순간이 선물로 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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