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tal pen으로 시작하기 위한 준비
숙제나 부탁을 제외하고, 내가 그림을 즐기며 그렸던 때는 언제였나. 낙서처럼 그리던 아주 어린 시절을 지나치니 중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 윈도 95 시절에 아주 단순한 드로잉 툴과 마우스로 책을 내도 될 만큼 참 여러 편의 그림을 그렸지만, 안타깝게도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리면서 그림 파일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남아 있는 건 그때의 집중의 카타르시스와 가장 맘에 들었던 그림 밑선 뿐.
오히려 나이가 좀 더 들었을 때, 펜으로 그림을 그리곤 했다. 대학생 때는 노트 한 권에 연필 한 자루를 들고, 인사동 벤치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한강 둔치길을 산책하다가도 쭈그려 앉아 한강가의 나무를 그리기도 했다.
그리고 사회에 나오기 직전에 마지막 자유로운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떠났던 유럽 배낭여행. 그때 스페인 바르셀로나 해변가 벤치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가 졸리면 자고, 햇살에 다시 일어나 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아. 참 눈부신 날이었다. 진짜 눈부시게 햇살이 내리기도 했지만, 내 젊음과 자유가 눈부시다고 느꼈던 때였다.
눈부신 자유고 젊음이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 삼십 대 전반전은 야근, 결혼, 육아와 함께 쾌속 질주해 왔다. 짧은 몇 년 동안 아이를 낳고, 집을 마련하고, 회사를 옮기고, 조금 더 도전적인 업무와 결정들을 하다 보니 서른일곱이라는 역에 도착해서 잠시 정차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참 아쉬웠다. 내 삼십 대. 그리고 내 가족의 그 시간들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사진으로만 남겨져 있다는 것이 참 아쉬웠다. 그래서 다시 글 쓰고 그림을 시작한다.
다시 그림을 그리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시작한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나와 같이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분들께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며 가며, 펜으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고 그게 더 정감 있겠지만, 다양한 기법을 써보며 나에게 맞는 그림 재료를 찾기 위해서는 디지털이 경제적이고 편리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준비물부터 간단히 소개한다.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정리한 것이므로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디지털 일러스트 도구의 대명사이자, 거의 유일한 제품군인 것 같다. 알리익스프레스와 같은 오픈마켓에서 검색을 해 보면 중국산 저렴한 다른 제품들도 있지만, 후기를 보면 구매욕이 사라진다. 와콤 태블릿과 와콤 펜을 사용하여 그려보면 필압이나 펜의 기울기에 따라 선의 농담과 굵기가 달라져서 진짜 펜이나 붓으로 그리는 느낌을 준다. 비싼 제품도 있지만 초심자는 Intuos Draw 제품이면 충분한 것 같다.
(제품 정보 : http://www.wacom.com/ko-kr/products/pen-tablets/intuos-draw )
화면을 보고 펜을 태블릿 위에서 움직여야 하니,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필자도 처음 써 봤지만 익숙해지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림 툴로 몇 차례 모작을 하거나, 스케치를 해 보면 금세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Wacom 태블릿을 구매하면 번들로 Ambient Design사의 Artrage LITE 버전을 제공한다. Artrage LITE 버전은 무료로 제공되는 수준에서도 웬만한 그림을 그리는 데는 문제가 없다. 사용하면서 익숙해진다면, 더 많은 기능과 효과를 제공하는 Artrage 5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것도 추천한다. 추천 이유 1번은 바로 가격이다. Artrage 5는 약 97,000원 의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그리고 유튜브에서도 짤막한 강좌를 제공하고 있으니, 동영상 강좌를 보며 사용법을 간단히 익히고 시작하면 꽤 도움이 된다.
(제품 정보 : https://www.artrage.com/)
Corel 사에서 나온 Painter는 꽤 역사가 있는 그림 도구다. Adobe사의 illustrator와 달리 진짜 그림을 그리기 위한 용도에 최적화되어 있다. Artrage는 처음부터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그림 도구라면, Painter는 보다는 더 전문적인 느낌이다. 이용하려면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거나, 책으로라도 독학이 필요하니 참고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 녀석은 무료가 아니다. 2017년 버전을 설치하려면 50만 원 정도의 비용을 치러야 한다. 50만 원의 비용이 아깝지 않게 활용하려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길 권장한다.
(제품 정보 : http://www.painterartist.com/en/all-products/)
필자는 현재 Painter를 활용하여 그림을 그리고 있다. 물론, Painter를 활용하는 일러스트 강좌를 들었기 때문에 그런 면도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태블릿으로 자주 그림을 그리다 보면 실제 펜이나 붓으로 그림을 그릴 때의 효과나 과정을 만들어 가는 것이 Painter가 더 쉽다.
그 밖에 앞서 언급한 Adobe사의 illustrator도 있지만, 그림을 그리는데 최적화되어 있다기보다는 디자인 작업에 더 충실히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이다.
그래픽 사항이 보통 또는 보통 이상의 컴퓨터와 Wacom 태블릿, 그리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준비가 되었다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본적인 준비는 된 것이다.
언급하진 않았지만, 마음가짐과 실행력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어떤 작가가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에는 핑계가 보인다.
나와 같이 시작하고 있다면, 방법을 찾고 있는지 핑계를 찾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