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에는 모든 게 다 선명하다.
이제는 어스름한 회색이 섞인 하늘이 익숙하다. 축축하게 젖은 주제에 높아지는 하늘, 여름이 왔다는 말이다.
온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색을 세상에 가득 뿌려 놓고는 뜨끈한 공기를 두텁게 깔아둔다. 묵직하지만 힘없는 바람이 꽉 닫힌 창문 틈새로 매미 소리를 밀어넣는다. 맴맴거리고 찌르르거리는 제각각의 소리들이 더 듣고 싶어 창문을 살짝 열면 잠시 내린 비와 젖어든 흙의 냄새도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내리던 비가 그친 여름밤은 여름낮보다 모든 게 더 선명하다.
한 뼘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그렇다. 비가 오는 내내 들리지 않던 여름의 매미 소리, 눅눅한 냄새에 가려진 풀내음과 흙내음, 고인 빗물을 스치고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느즈막하게 찾아오는 어둠에 선명해지는 실루엣, 이슬에 넓게 퍼져나가는 도심의 불빛 같은 것들.
축축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면 살갗에 맺히는 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의 방울조차도.
여름밤에는 모든 게 다 선명하다.
어렴풋 떠오르는 과거의 것들이 그렇다. 누군가의 얼굴, 그와 땀을 식히며 넘기던 맥주의 청량감, 눅눅하게 젖어 붙어 짜증을 돋구던 담배 냄새, 청량한 세상 속에서 혼자만 새빨갛다며 깔깔 웃게 만든 장미의 향기 같은 것들.
마음을 저리게 떠오르는 과거의 것들이 그렇다. 누군가의 얼굴, 선풍기 바람에 덜덜 떨게 만들던 빙수의 시원함, 눅눅해진 바닥을 깔고 앉아 먹었던 수박의 단내, 깔깔해지는 입이 싫다는 투정에도 앞에 내밀어지던 고소한 콩국수 냄새 같은 것들.
새벽이 오고 여름밤이 색을 잃어가면 선명해진 것들도 흐릿해진다.
그러나 여름밤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스름조차 선명하게 새기고 싶어지는 여름,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