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해외 구직자의 슬픔
30대 해외 구직자의 슬픔.
군중 속에 외로움. (1)
어릴 적 화양리란 이름의 산골 마을에 살았다. 합천이란 시골 도시에서도, 차를 타고 1시간을 더 들어가야지 나오는 합천댐 위의 작은마을이다. 자다가 오줌을 싸서 집에서 쫓겨나면, 동네 어르신들이 소금을 챙겨주던 정겨운 마을이었다. 그 마을에는 범죄가 없고, 비밀도 없다. 옆집에서 부부싸움이 일어나면, 몇 시간 뒤에는 옆집이 왜 부부싸움을 했는지, 그리고 결판이 어떻게 났는지를 동네 꼬마 아이까지 아는 그런 동네였다. 말레이시아 한인사회가 딱 화양리 같았다.
말레이시아에서 일해본 결과, 해외 한인사회는 매우 좁다는 사실을 배웠다. 한인사회 밖에 있으면 들리지 않지만, 한인사회 안쪽으로 들어가면 온갖 정보가 들린다. 새로 한식당이 오픈하는데 사장이 한국에서 오는 사람인지, 아니면 교민인지. 식당 내부 인테리어 비용은 얼마인지 등 민감한 내용도 별거 아니라는 듯 공유가 된다. 그걸 알기에 취업 프로그램에 진심이 된 나는 꼰대 마인드로 무장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간략히 내가 생각하는 꼰대란 단어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면, 우리는 과거에 잔재 중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을 꼰대 문화란 말로 싸잡아서 매도한다. 하지만, 난 꼰대 문화중에서 나한테 도움 되는 건 받아들이자는 생각을 갖고 산다. 내게 도움이 되는 꼰대 문화는 뭐가 있을까?
여러 개 있지만, 당장에 말하고 싶은 건 근면 성실을 강조하는 문화다. 회사에 10분 일찍 출근해서 일 할 준비를 해라, 야근은 당연하다. 주말 출근 하는 것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 하지 마라. 등 회사에서 몸 바쳐 일하는 걸 말한다. 왜 내가 이런 말을 할까? 나는 내 주제를 알기 때문이다. 능력이 없으면 가장 비싼 시간을 소모하며 몸으로 때워야 한다.
인도네시아어를 잘하지도 않고 사회 경력도 짧다. 심지어 나이도 많다. 내가 사장이라도 젊고 인도네시아어 잘하는 사람을 뽑지, 나를 뽑지는 않을 것 같다.
즉, 뭐라도 장점이 있어야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두 달간 진행된 취업 프로그램에 참여한 11명 중 7명이 인도네시아어 전공자, 그리고 나를 비롯한 4명이 비전공자였다.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같은 선상에 놓인 건 아니다.
언어 전공자들은 그들의 선배 그들의 친구 심지어 그들의 후배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일하고 있으며,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고 정보도 공유한다. 그에 반해 나머지 4명은 아무런 연줄도 없고 심지어 인도네시아어도 할 줄 모른다.
인도네시아에 취업하는데, 인도네시아어를 못한다는 크나큰 결점을 감추기 위해선 특별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일하며 쌓은 빛나는 경력 또는 같이 일하는 현지인들이 오히려 한국말을 배우고 싶게 만드는 업무 지식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프로그램 참가자 중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은 없었다. 언어도 안되고 능력도 안 된다. 그렇다면 남은 건 단 한 가지, 인간적인 매력뿐이다.
그럼 해외 취업에 도움이 되는 인간적인 매력은 뭘까? 뭐든지 해보려 하는 도전의식,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교성, 무리를 이끄는 리더쉽까지 다양한 것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누가 뭐라 해도 근면과 성실 단 두 가지다.
왜 그럴까? 잘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친구 도전정신이 있어’란 말이 나올 경우가 흔치 않다. 보통 ‘그 친구 지각은 안 해’ ‘일 시켜 놓으면 열심히 하더라’ 와 같은 말이 나온다. 왜냐, 도전정신, 사교성은 객관화된 지표가 없지만, 근면 성실은 객관화된 지표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때문에, 능력이 없는 나는 근면 성실한 꼰대가 되어 취업 프로그램에 진심을 담아 참여했다. 그래야지 지나가는 누군가가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면접 기회라도 한번 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