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화 시작 or 여행의 시작
현지화 시작 or 여행의 시작
유명한 회사 광고문구에 이런 말이 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나는 거기에 한가지 단어를 더 추가하려 한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현지인처럼’ 현지인의 첫 조건은 현지인 복장이라고도 하지만, 전통복장을 입는 것도 아니고, 공장에서 찍어내는 옷을 입으면서, 나라별 차이가 점점 사라지는 시대에 의복보다는 스타일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남자는 헤어, 여자는 화장법. 그래서 나는 항상 여행을 갈 때 여행가는 나라에서 머리를 깎는 습관이 있다.
이발소는 매표소에서 10분 거리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하지만, 이발소 안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고, 내 티셔츠는 여전히 젖어있다. 축축한 옷을 입고 이발소에 들어가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아있는 건 심각한 민폐다. 마른 목에 단비도 뿌리고 땀도 식힐 겸 근처 카페에 들어간다.
카페는 골목에서 제일 장사가 안되는 집을 골라서 들어갔다. 손님이 없어 시무룩한 카페 사장님의 표정이 얼마 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비싼 걸 팔아주고 싶었다.
교통비를 아낀 만큼 메뉴 중에 제일 비싼 망고 스무디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주문과 동시에 음료수가 빠르게 나왔지만, 기분은 썩 좋지 못하다. 내가 한국에서 팔았던 간절함을 이국만리 떨어져 있는 나트랑에서 다시 봐서 그런 것 같다.
스무디와 커피는 맛있었다. 사장님이 나를 위해 에어컨을 켜려기에 에어컨 바람이 싫다고 말하며 선풍기를 틀어 달라고 했다. 장사가 안될 때 전기세 한 푼이 아쉽던 순간이 떠오른다. 고통스럽다. 빈 컵을 계산대 옆에 올려놓고 쓸쓸히 카페를 빠져나온다.
티셔츠도 거의 다 말랐고 이발소에 손님도 없다. 지금이 기회다. 이발소에 들어가 헤어컷을 외친다. 구글 번역기로 검색해보니 커트만 하면 4만 5천 동이고 귀 청소까지 세트로 하면 6만 동이다. 뒤쪽을 보니 모녀가 와서 나란히 누워 귀를 파고 있다. 6만 동을 내고 헤어컷 귀파기 세트로 주문한다.
사진을 보여주며 원하는 손짓 발짓으로 설명하니 이발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가위로 빗을 툭툭 치며 착착 소리를 내며 이발을 시작한다. 하지만 시작과 동시에 앞머리가 싹둑 날려버린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떴다. 언어에만 통역이 필요한 게 아닌가 보다. 분명 투블럭 사진을 보여줬는데, 그리고 이발사가 알겠다며 고개까지 끄덕였는데. 전혀 다르게 자르고 있다. 사진이라 통역이 제대로 안 된 걸까.
속에서 욱하며 화가 올라온다. 화를 삭히기 위한 주문을 외운다. ‘화내봤자, 이발사는 알아듣지 못한다‘. ’머리카락은 또 자란다‘. ’이미 잘린 머리카락을 붙이는 기술 같은 건 없다‘. 주문을 외우니 마음이 진정된다.
헤어스타일만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아저씨는 귀 청소를 받는다. 청소해 주는 분이 베트남어로 뭐라 뭐라 하더니 내 손등 위에 귓밥을 올려놓는다. 아마도 나중에 확인해보란 말을 했었던 듯하다. 귀 청소는 약 20분간 진행됐다.
다 끝내고 6 만 동을 주고 나오는데, 너무 저렴해서 이게 맞나 싶다. 팁을 줄까 하다가, 어설픈 팁이 좋은 가게를 망칠까 봐 참았다. 아니 어쩌면, 거울 속에 비치는 헤어스타일 때문에 참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 시간이 많이 흘렀다. 숙소로 가는 길에 한글로 반미라고 적힌 반미 집이 보인다. 저건 먹어야 한다. 3만 5천 동짜리 치킨 반미를 사서 숙소로 가는 길에 해치워 버린다. 기억에 남지 않는 무난하고 평범한 맛이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반미를 먹은 걸 땅을 치며 후회했다.
'공복에 맥주를 마셔야 했는데!'